FLY 다시 날다, 영화부산

FLY는 아시아 영화인의 영화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작품을 발굴해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하는 행사가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젊은 영화학도들이 제작과정 전반을 함께 경험하며 영화적으로 교감하는 일종의 인력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지난 5월, 제30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는 열 한 명의 젊은 다국적 영화인들이 합심해 만들어 낸 특별한 작품이 상영되었다. 한순간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스마트폰 때문에 멋진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서도 서로 대화 한마디 없는 가족들이 우연한 사건을 통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비로소 소통의 물꼬를 튼다는 내용이다. 7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에 재치 있는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바로 <이스케이프Escape>, 지난해 부산영상위원회를 중심으로 필리핀영화개발위원회와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가 공동 주최한 단편영화제작 워크숍, 한-ASEAN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ASEAN-ROK Film Leaders Incubator: FLY, 이하 FLY)을 통해 제작된 두 편의 단편영화 중 한 편이다. FLY는 아시아 영화인의 영화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작품을 발굴해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하는 행사가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젊은 영화학도들이 제작과정 전반을 함께 경험하며 영화적으로 교감하는 일종의 인력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지난 8월 말, 서류와 면접심사를 통해 올해 FLY에 참가할 총 스물여덟 명의 교육생이 확정되었다. 학교 워크숍 작품으로 공익캠페인 광고를 찍어 본 것이 영화 경력의 전부인 학생부터 제법 이름난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참가자까지, 다양한 재능과 독특한 이력을 가진 지원자들이 서류를 제출했지만, 그들의 자기소개서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문구가 있었으니 ‘아시아 각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소통하며 나의 정체성과 시야를 넓히고, 함께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시작 전부터 참가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FLY는 올해 2 회째를 맞이하며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꾀했다. 2013년 버전 FLY의 이모저모를 톺아본다.

 제작 팀

<그녀의 생일Piece of Paper> 제작 팀

움직이는 영화학교’ 올해는 태국이다

FLY의 콘셉트는 매년 동남아시아 10개국 중 1개 국가를 선정해 그곳에서 FLY를 진행하는 ‘움직이는 영화학교’다. 올해는 미얀마와 태국의 경쟁 끝에 태국 방콕 인근의 후아힌이 행사 장소로 결정되어, 타일랜드필름 오피스가 부산영상위원회와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의 파트너로 FLY2013을 공동주최한다. 태국은 아시아 작가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전통적인 영화 강국으로, 90년대에 뉴웨이브 3인방 위시트 사사나티 앵, 논지 니미부트르, 펜엑 라타나루앙을 비롯, 오늘까지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감독 및 편집감 독, 촬영감독 등이 꾸준히 배출되는 국가 중 하나다. 또한, 할리우드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영화 제작 시스템으로, 후반작업기술이나 장비 수준은 아시아에서 손꼽을 정도다. 불교 유적지와 건축양식 등 매우 아시아적인 풍경과 동시에 마치 뉴욕이나 LA를 연상케 하는 세계화된 도시의 모습을 갖춤으로써 해외 작품의 로케이션촬영을 다수 유치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Platoon>(1986)이 나 뤽 베송 감독의 <더 레이디The Lady>(2011)도 태국에서 촬영된 영화다. FLY 교육생들은 FLY 시작 전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거의 마치고, 태국에서 직접 로케이션 스카우팅과 배우 오디션, 시나리오 및 콘티 작성 등 실제 촬영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진행하며, 촬영과 후반작업 단계에서도 역할을 나누어 두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후텁지근한 날씨와 다채로운 이미지의 공간,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국가 출신의 동료들과 함께 만들게 될 짧은 두 편의 영화가 훗날, 아시아영화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데뷔작으로 회자되기를 기대한다.

3일이라는 짧은 촬영기간으로 교육생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지만, 항상 활기가 넘쳤다.

3일이라는 짧은 촬영기간으로 교육생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지만, 항상 활기가 넘쳤다.

11개국 22명에서 14개국 28명으로 더 넓은 아시아로 확대

동남아시아 10개국(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브루나이,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가나다 순)과 한국에서 선발된 스물 두 명의 교육생이 참가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부터는 비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 아시아 국가연합) 국가인 대만, 요르단, 일본까지 참가 범위를 확대해 더 넓은 아시아 영화 인재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바로 지난해 첫 번째 FLY를 개최하며 목표로 했던 ‘영화로 하나 되는 아시아, 참가국 수 확대’가 일 년 만에 나름의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내에서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처럼 국경 및 역사 분쟁 등 민감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AFCNet에 함께 가입해 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말 한 마디에 예민한 반응으로 응수할지 몰라도, 문화 사업에는 기꺼이 손을 잡고 나선다. FLY를 통해 또 다른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FLY는 연출 방식이나 제작 과정에 있어 현대 세계영화산업 부동의 리더인 할리우드 스타일을 따르지 않는다. 세계 영화가 지나치게 획일화되고 있는 요즘의 경향을 경계해서다. 지난해 싱가포르에 소재한 한 미국계 영화학교에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던 단편 영화 여러 편이 모두 ‘너무나 미국적’이라는 이유로 단 한 편도 초청받지 못했던 것도 자극이 되었다. 또한, 가린 누그로호(인도네시아)나 브릴랸테 멘도자(필리핀), 펜엑 라타나루앙 (태국), 챠이밍량(대만) 등 ‘아시아영화’로써 세계의 주목을 이끌어낸 거장들이 시대의 주류영화와 완전히 차별화되는 각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을 무기로 삼았던 점에 기대어, 앞으로 아시아영화가 이미 기형적 산업 구조가 정착된 세계영화계에 단순히 ‘또 다른 할리우드 영화’를 보태기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만의 미학적 파이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 역시 FLY의 주요 방향 중 하나다.

아시아적 정서와 미학 한국-태국 연출강사

지난 해 제1회 FLY에는 <복수는 나의 것><공동경비구역 JSA><소년, 천국에 가다> 등의 각본을 쓰고 <휴머니스트><아버지와 마리와 나> 등을 연출한 한국의 이무영 감독과 <돈솔Donsol><트럭 밑의 삶Chassis>< 이스다-물고기 이야기Isda, Fable of the Fish> 등을 연출하고 <죽음의 행군Death March>으로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 초청받은 필리핀 독립영화의 차세대 리더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 감독이 연출강사로서 FLY 교육생들과 함께 했다. 그렇다면 올해는? <꼬방동네 사람들><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안녕하세요 하나님><정 (情)> 등을 발표하며 8-90년대 ‘한국영화의 스티븐 스필버그’라 불렸던 배창호 감독이 한국 측 연출강사로, 겨우 두 편의 장편 <원더풀 타운Wonderful Town>과 <하이-소Hi-So>만으로 태국영화의 신(新)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아딧야 아사랏 감독이 태국 측 연출강사로 참여한다.

배창호 감독의 <정(情)>과 <길>은 잊혀지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한국적인 헌사다. 정인의 얼굴이 그려진 옹기, 쉴 새 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산업화 시대에 직접 연장을 다져 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 그야말로 로컬리티가 살아 있는 독립영화적 미학, <정(情)>과 <길>은 작가감독으로서 배창호 감독의 전작을 통틀어 FLY가 추구하는 아시아적 ‘영화만들기’에 가장 어울리는 두 작품이 아닐지. 반면, 아딧야 아사랏의 ‘아시아성(性)’은 배창호 감독의 그것보다 모던 하다. 그의 두 장편, <원더풀 타운>과 <하이-소>에서 주인공 커플은 태국 구석의

FLY 강사의 역할은 일방적인 강의나 현장 실무 지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기획·개발 과정에서의 고민, 팀 스태프 간의 의견 충돌 등 영화인으로서 겪어 본 제작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선배’로서의 영역까지 확대된다.

FLY 강사의 역할은 일방적인 강의나 현장 실무 지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기획·개발 과정에서의 고민, 팀 스태프 간의 의견 충돌 등
영화인으로서 겪어 본 제작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선배’로서의 영역까지 확대된다.

작은 마을이나 수도 방콕 등 아시아의 ‘공간’ 속에서 그 존재를 형성하고, 또한 어그러뜨린다.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아시아적인 것들을 재현하는 대신 자신의 영화에서 방콕으로 대표된 현대 아시아 도시들의 ‘미국화’라는 정서를 채워 넣는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담담하게 오버랩되는 두 존재가 외려 동시대의 의식을 깨워 진지한 고민을 환기시키는 모양이, 참으로 작가적이다. (7월, FLY 개최 준비를 위한 방콕 출장 중 아딧야 아사랏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기사는 32p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감독은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Pre-FLY(FLY의 프리프로덕션 과정)와 11월 태국 후아힌에서 2주 간 진행되는 FLY를 통해 교육생들의 단편영화 제작 전 과정을 멘토링한다. FLY는 상대적으로 영화교육의 기회가 적은 동남아시아 지역 교육생들에게 영화제작의 현장 경험을 제공하지만, 기술워크숍은 아니다. 오히려 아시아 출신 거장 감독과 신진 영화인, 아마추어 교육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시아에서 영화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경험, 비전을 공유하며 영화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때문에 FLY 강사의 역할도 일방적인 강의나 현장 실무 지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기획·개발 과정에서의 고민, 팀 스태프 간의 의견 충돌 등 영화인으로서 겪어 본 제작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선배’로서의 영역까지 확대된다. FLY를 통해 교육생들이 앞으로 영화인의 꿈을 키워가는 데 있어 또 하나의 든든한 지원군을 얻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4_9프리프로덕션 강화 Pre-FLY

9월에 선발 완료된 교육생들이 온라인에서 기획·개발 등 프리프로덕션 단계의 작업을 진행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 제작을 위한 체계적인 프리프로덕션 환경을 제공하고자 10월 부산 국제영화제 기간 중 FLY교육생 전원을 부산에 초청해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 Pre-FLY를 개최한다. 선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한 사전 온라인 프리프로덕션을 진행하고, 부산에서 최종 기획·개발서 작성 및 피칭까지 완료 한 후, 약 한 달간의 시나리오 개발 기간을 거쳐 11월 FLY 기간 중에는 실제 촬영 등 프로덕션 단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만족도 높은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첫 막을 올리는 Pre-FLY는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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