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황시의 아이들

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황시의 아이들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제어하기 위해 소위 ‘소프트 파워’ 전략을 통해 중국의 이미지를 재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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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는 난징대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실화이다. 1937년 일제에 의한 난징대학살이 벌어지자 이를 취재하기 위해 적십자 요원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잠입해 들어간 AP 통신의 프리랜서 기자였던 영국인 저널리스트 조지 호그(George Hogg, 1915~1945)의 역정을 감명 깊게 그려내고 있다(그는 중국 취재 이전까지는 <맨체스터 가디언>지의 기자였다). 그가 중국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로운데, 1937년 영국에서 퀸 메리호를 몰래 타고 먼저 뉴욕으로 가서 그의 이모인 뮤리엘 레스터(Muriel Lester)를 만나 함께 일본으로 다시 건너간다. 그의 이모는 당시 영국의 저명한 평화주의자이기도 했고 간디와는 친구였다. 중국에 도착한 때는 1938년 1월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제의 만행을 직접 겪으며 이곳에 머물면서 그 참상을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 장군이었던 니롱젠과 깊은 교류를 맺기도 하고, 급기야는 일본에 대항한 팔로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담은 그의 책이 <I See a New China>이다.

(2008)

<황시The Children of Huang Shi>(2008)

난징대학살 속 푸른 눈동자 이 영화를 연출한 로저 스포티스우드(Roger Spottiswoode)는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6번째 날The 6th Day>(2000),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007 네버 다이Tomorrow Never Dies>(1997)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도 화려하다. 카리스마와 연기력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량쯔충(양 자경)과 저우룬파(주윤발), 그리고 <튜더스The Tudors>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백악관 최후의 날Olympus Has Fallen>(2013), <프로즌 그라운드 The Frozen Ground>(2013) 등에서 열연한 라다 미첼 등이 그들이다. 이 영화에서 호그 역을 맡은 배우는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이다. 호그는 일제의 난징대학살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 적십자 요원으로 위장해 난징에 잠입한다. 그러나 자신이 찍은 학살 장면의 사진이 일제에 발각되는 바람에 참수를 당할 지경에 이른다. 이때 천(주윤발 분) 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 일을 겪은 후 여러 곡절 끝에 호그는 중국 후베이성(호북성)의 황시(黃石)마을에서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게 된다(사족이지만 지금도 황시까지 갈려면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서 후베이성 성도인 우한(무한)까지 비행기로 1시간 30분, 다시 여기서 택시로 2시간 30분이 걸리는 먼 곳이다.
1930년대 모든 교통이 불편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상하이에서 이곳까지 갔다고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 호그는 취재를 위해 전선으로 다시 가려 하였으나, 리(라다 미첼 분)가 남긴 도덕경의 한 구절을 보고 눌러앉게 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는…. 영화 속의 라다 미첼은 이 당시 공산당원들에게 음식과 의약품을 제공하던 뉴질랜드 출신의 간호사 캐서린 홀(Kathleen Hall)로 짐작된다. 여담이지만 이 장면의 대사를 보면 안성기, 류더화(유덕화) 주연의 영화 <묵공A Battle of Wits>(2006)이 연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호그가 고아원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는데 구체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뉴질랜드 공산당원이었던 레위 앨리 (Rewi Alley)였다. 그는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로 잘 알려진 에드가 스 노우 등과 함께 1937년 상하이에서 시작된 겅호(工合)운동(중국산업 발전 부흥을 위한 국제기구임) 활동가이기도 했다. 레위가 겅호운동을 하 고 있던 곳은 산시(섬서성)였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경계심과 두려움을 보이던 고아원의 아이들은 그의 이름을 비틀어 ‘돼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호그의 진심과 열정을 받아들이면서 이들 사이에는 우정 이상의 훈기가 피어나게 되고, 아이들도 파란 눈의 이방인을 따르게 된다. 실제로도 그는 네 명의 소년들을 입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호우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 장제스(장개석) 휘하 국민당 장교의 협박, 일제의 마을 침공 임박 등으로 호그는 약 60여 명의 아이들을 간쑤성(감숙성) 샨다로 이주시킬 결심을 한다(1944년). 북부 지방은 이곳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참고로 간쑤성은 2013년 5월 대지진의 여파로 약 280여 명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고, 판다 서식지이며 둔황 등 으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영화에서 황시마을의 재력가인 왕 사장으로 나오는 량쯔충(양자경)이 호그에게 <실크로드>라는 영문판 책자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욱 희망찬 내일로의 여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복선이 되기도 한다).

샨다로 향하는 아이들

샨다로 향하는 아이들

황시에서 샨다까지의 거리는 1천 킬로미터가 넘 고, 눈보라가 치는 겨울 산을 수없이 넘어야 한 다. 1944년 11월에 33명의 아이를 먼저 이주시키고, 1945년 1월 나머지 27명의 소년을 이주 시키게 된다. 아이들을 끌고, 밀고, 지고, 메고… 간난신고 끝에 샨다에 이르게 된다(3월에 도착함). 나중 이 일을 회상하는 생존자들은 이를 두고 마오쩌둥의 대장정에 견주어 ‘작은 대장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호그는 아이들과 농구를 하다가 다친 발의 부상이 심해져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의 여정과 이력을 감안한다면 너무나도 도둑같이 찾아온 죽음이었고 꿈결같은 생의 마감이었다(1945년 7월).

중국판 <쉰들러 리스트> 이 영화를 두고 중국판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1993)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황시>에 나타난 이야기처럼 중국의 고난에 동참했 던 서방인들의 활동을 그린 영화들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캐나다 출신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닥터 베튠Bethune>(1977)이 그것이다. 그 는 마오쩌둥 군대와 대장정을 함께하고 그 도중에 그가 가진 인술을 펼친 사람이었다. 참고로 언론 쪽에서는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가 스노우 역시 중국인들로부터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는 서양인이다. 에드가 스노우의 묘비는 지금 북경대학 구내 미명호(未名湖) 옆 야트막한 동산에 마련되어 있고, 노먼 베튠의 경우 길림성 장춘시에 동상과 그의 이름을 딴 약학대학이 있을 정도이다. 베튠의 중국 이름은 바이추언(白 求恩)이다. 한편 앞서도 언급했듯이 호그 역시 생전에는 ‘피그Pig’라는 별명으로 아이들의 우스갯거리가 되지만, 사후 허커(何克)라는 중국 이름을 갖게 된다. 영화 끝부분에 한 생존가가 회상하는 한마디 말이 이 영화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중국인을 돕고 투쟁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중국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티베트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게는? 민족주의는 자칫하면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또는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2008)가 될 수 있다. 굳이 배링턴 무어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중국영화의 약진이 두드러 지고 있다. 자장커(지아장커) 등 6세대 영화인들의 활약은 차치하더라도 중국정부가 주축이 되어 펼치고 있는 문화를 통한 중국 알리기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최근의 양상들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2012년 기준 전 세계 113개 국가에 420개의 공자학원을 설립하여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저우룬파(주윤발) 주연의 <공자-춘추 전국시대Confucius>(2010) 역시 이에 해당한다.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편견을 불식하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제어하기 위해 소위 ‘소프트 파워’ 전략을 통해 중국의 이미지를 재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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