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나이젤 콜의 [메이드 인 다겐함]

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나이젤 콜의 [메이드 인 다겐함]

이들이 어떻게 이 난관들을 헤쳐나 가는지를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나이젤 콜(Nigel Cole, 1959~)?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그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았다. 역시 <오 그레이스Saving Grace>(2000), <캘린더 걸스Calendar Girls>(2003), <우리, 사랑일까요?A Lot Like Love>(2005), 그리고 <하루 5달러$5 A Day>(2008) 등으로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감독이었다. 이 중에서도 <캘린더 걸스>는 여성판 <풀 몬티The Full Monty>( 1997)1)로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분위기는 능청스러움, 입가에 미소를 짓게하는 은근한 힘,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눈길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임금의 성별격차를 뚫고 나가려는 자동차산업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메이드 인 다겐함> 역시 이러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68년 실제 영국의 포드자동차회사에서 일어난 여성노동자들의 동일노동·동일임금 쟁취를 위한 노동운동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국 다겐함(Dagenham)에 소재한 포드자동차회사의 자동차 시트 제작공이었던 리타 오그래이디(Rita O’Grady) 등에 의해 주도된 성 차별에 대응한 운동이기도 하다. 이 파업으로 인해 1970년에는 평등임금법(Equal Pay Act)이 제정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제13회 서울국제여성 영화제(2011)에서 소개된 바가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We Want Sex>로,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We Want Sex Equality>라는 의미의 제목으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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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다겐함의 위치와 전경

영화의 배경은 영국 다겐함
영화의 배경에 대해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제목에 담겨있는 다겐함은 이스트 런던의 교외에 있는 지역이다(템스 강 인근). 참고로 포드다겐 함의 위치와 전경(공장과 터미널)은 다음의 사진과 같다. 다겐함에 있는 포드자동차회사(정식 명칭은 Ford Motor Company Limited Dagenham Plant in Essex이다)는 1931년에 문을 연 후, 2002년 현재까지 약 1,100만 대의 차와 3,700만 대의 엔진을 생산하였다(위키피디아 참조). 영화의 첫 머리에 소개되는 회사의 홍보용 영상에 따르면, 이 회사는 하루 약 3,000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세계에서는 4번째, 유럽에서는 제일 큰 자동차 공장임을 자랑하고 있다.2) 그리고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68년 현재, 약 55,000명이 고용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모두 187명임을 소개하고 있다.3) 이들 여성노동자의 업무는 자동차 시트 봉제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장의 모습은 비록 동종업종도 아니고 사업장의 규모도 다르지만, <우묵배미의 사랑>(1990), <구로아리랑>(1989), 그리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등에서 볼 수 있는 봉제작업의 노동과정과 거의 비슷하다.

여성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이들을 향하는 사회적 편견
영화의 첫 장면은 자전거를 타고 사업장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활기찬 모습으로 시작된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이전 출근 모습이었던 오토바이 무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지금은 대부분 승용차 등으로 출퇴근함). 그리고 이 영화에는 각 장면에 어울리는 매우 멋지고 아름다운 주제곡들이 배치되어있다(기회 나실 때 들어보시길 강추함!).4) 예컨대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1967) 의 주제곡인 ‘To Sir, With Love’를 불렀던 루루(Lulu)의 ‘The Boat That I Row’가 나오는가 하면, 샌디 쇼(Sandie Shaw)가 부르는, ‘(There’s)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도 들을 수 있다. 이 노래는 존 쿠색과 케이트 베킨세일이 주연한 영화 <세렌디피티Serendipity>(2001)에서 브라이언 위트먼(Brian Whitman)이 부르기도 했다. 재미난 것은(?) 샌디 쇼는 다겐함 포드자동차회사의 실제 사무직 노동자였다는 점이다. 여성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작업장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이 여성들의 작업장은 생산공장으로부터 약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River Plant라 부 른다). 예컨대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가 예사이고, 무더운 작업장에는 변변한 선풍기 한 대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은 속옷만 입고 재봉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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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다겐함Made In Dagenham>(2010)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와중, 남자의 인기척이 들리자 여성노동자들은 황급히 옷을 챙겨 입는다.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는 노조간부를 맡은 알버트이다 (밥 호스킨스 분). 계면쩍은 얼굴로 노동자들 앞에 선 알버트는, ‘내일 하루 동맹파업 여부를 위한 투표를 하자’고 제안한다. 영화는 이처럼 처음부터 직설적이다. ‘안건은 모든 초과노동의 즉각 금지’라고 말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한다. 이에 여성노동자들은 스스럼없이 번쩍 손을 치켜든다. 그러나 남편이 아픈 코니(제럴딘 제임스 분)의 눈빛은 불안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수당이 줄어들 것을 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도 이내 찬성한다. 이에 알버트가 “풀 하우스군요.”라고 하자 모두 환호한다. 이 결과를 두고 한 여성노동자가, “좀 두렵지?” 하자, 또 다른 이는 “자부심을 느껴.”라고 답한다. 장면은 영화의 여주인공인 리타(샐리 호킨스 5) 분)의 집으로 바뀐다. 남편 에디(다니엘 메 이스 분)도 노동자이고 그녀에겐 어린 아들과 딸이 있다. 어린 아들의 손바닥에 난 상처를 보고, 학교 선생이 또 아들을 때린 것을 알게 된다. 다음 날 이에 항의하기 위해 학교로 찾아가지만, 선생으로부터 모욕만 당한다. “당신들은 공단지역(estate)에 살죠? 이 지역 출신 부모들은 학교생활을 온전히 하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아이들 잘못만이 아니지요.”라며, 애들이 부모들로부터 뭘 배우겠냐는 투의 답변을 들은 리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분을 참지 못해 복도로 뛰쳐나온다.

문화사회학자 폴 윌리스가 말하는 노동자계급의 잠재력
영국의 문화사회학자인 폴 윌리스(Paul Willis)는 우리가 흔히 가진 편견, 즉 개인의 직업 및 계급은 비례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그의 책,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에서 실제의 사례를 통해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의 연구는 영국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노동자계급의 백인 남자아이들 12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의 결론을 잠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나도 흔하게 직업적 소질과 학업적 재능은 능력의 연속적인 경계선 위에서 고려된다.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는 ‘나처럼 우둔한 사람은 평생 그저 자동차 공장에서 나사나 조이는게 당연하지’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가장 비천한 일들을 떠맡는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맨 밑바닥에 위치한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는커녕 그저 하루하루 목숨만 이어가는 데 급급할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그런 살아 있는 송장도 아니며 오히려 전체 체계를 위기로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여담이지만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에서 선생의,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라는 말에 분노하는 준석(유오성 분)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날 알버트는 코니 등에게 내일 월리(Warley)에 소재한 포드 본사를 방문하자고 말한다. 이에 이들은 월차를 내고 가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온 리타는 남편 에디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여성노동자들의 투표가 있기 전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본사의 간부들을 만나기로 했다는 말에 에디는 아내가 나서는 것이 염려스러워 잠깐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나, “멋진 데!”하며 여성노동자들의 투표 참여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그녀를 격려한다. 영화의 초중반부에 전개되는 일터와 삶터에서의 이러한 일상들은 점점 여성과 남성,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인 차별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쟁취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제일 큰 문제는 당대의 남성 중심적인 사회적 관습이었고, 자본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이들이 어떻게 이 난관들을 헤쳐나가는지를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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