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에 대한 어떤 변명

표절에 대한 어떤 변명

치열한 창작의 길을 걷는 저작자로서 그리 자랑스러워할 만 한 사실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1월, 영화 <대호>의 감독과 제작사 등을 상 대로 저작권침해를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 기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원고 김준기 감독은 영화 <대호>가 자신이 쓴 시나리오 ‘마지막 왕’과 비교했을 때, ‘소재와 주제,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호관계, 사건전개 방 식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유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구 내용에는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마지막 왕’이 <대호>의 원 작으로 표기될 것이 포함되었다. 김 감독이 3D애니메이 션 제작을 목적으로 쓴 ‘마지막 왕’ 시나리오는 2006년 영 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마켓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img765<대호>의 시나리오를 쓴 박훈정 감독은 이와 관련해, 김준 기 감독이 쓴 ‘마지막 왕’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주장하면 서 <대호>는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1936년작 소설 <위대한 왕>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세간에서는 <대호>의 내용이 ‘마지막 왕’과 유사하다면, ‘마지막 왕’ 역시 <대호>의 모티브가 된 <위대한 왕>과 유 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소설 <위대한 왕> 은 백두산 호랑이 의 후예로 태어나 만주를 호령하는 호랑이를 다룬 동 물 문학이다. 따 라서 이러한 질문 을 하기에 앞서 과 연 <위대한 왕>이 ‘마지막 왕’의 ‘소 재’뿐 아니라 창작 적 표현과 얼마나 유사한지가 먼저 설명되어야 할 것 이다. 박훈정 감독 은 <위대한 왕>이 <대호>의 원작이라고 인정한 것이 아 니라 영감을 주는 모티브가 되었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2차 저작물 작성과는 별개의 문제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마지막 왕’의 저작자인 김준기 감독이 이를 창작하 는 과정에서 <위대한 왕>을 접한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장서희 법무법인 나눔 변호사 창작적 표현의 유사성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그가 쓴 ‘마 지막 왕’이 <위대한 왕>을 원작으로 한 것이며, 그 저작권 을 침해한 것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호랑 이를 소재로 한 서로 다른 세 작품 <위대한 왕>, ‘마지막 왕’, <대호>는 저작권법의 법리에 따라 각각 별개로 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공방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KBS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표절 시비에서도 비슷하 게 나타나고 있는데, 그 양상은 다소 차이가 있다 .

최수진 작가는 드라 마 <동네변호사 조들 호>가 2015년 SBS 문화재단 극본공모전 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한 자신의 작품 ‘천원 짜리 변호사’와 유사 하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 해 KBS측은 오히려 원작 웹툰의 작가 해 츨링이 2015년 당시 ‘천원짜리 변호사’가 웹툰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면서 ‘천원짜리 변호사’와 웹툰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반격에 나 섰다. 이에 관해 최수진 작가 역시 웹툰 <동네변호사 조 들호>는 결코 본 일이 없다면서, 웹툰에는 없지만 ‘천원짜 리 변호사’에 있는 내용들이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 의 기획안 및 대본 속에 들어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 며 재반박하고 있다.

img766최 작가의 주장처럼 내러티브의 전개 즉 창작적 표현의 유 사성이 문제된다면, 이는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 는 소설 <위대한 왕>과 ‘마지막 왕’의 경우와 같이 소재의 유사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표절의 경우, 저작권 중 복제권 또는 2차 저작물 작성권 침 해가 문제되는데, 이것이 복제물이 아닌 별개의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을 경우에는 설령 타 저작권을 침해한 저작물 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저작물의 저작권 역시 보호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콘텐츠산업에 서의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은 복잡다단한 저작권 문제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 저작권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창작적 표현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영화 <대호> 의 소송과,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표절 공방이 어떠한 결론에 도달할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표절 시비에서 가장 흔히 등 장하는 방어논리는 ‘표절 당했다는 작품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조차 없다’는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을 준비하면서 원작자뿐 아니라 관심 있는 대중들까지도 그 유사성을 발견해낸 작품을 전혀 접해보지도 못했다는 주 장은 ‘의거성’을 부정할 근거가 될 가능성은 있겠지만, 치열한 창작의 길을 걷는 저작자로서 그리 자랑스러워할 만 한 사실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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