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이 된 한국영화들에 관한 토로, 한겨울에 쓸쓸한…

통조림이 된 한국영화들에 관한 토로, 한겨울에 쓸쓸한…

이 깊은 겨울 밤에 올 한 해 내가 좋아한 한국영화 다섯 편을 따뜻한 마음으로 꼽아 보려다 생각은 이렇게 휩쓸린 것이다.

오래 망설이다가 쓴다. 원래 쓰려고 작심했던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 반대의 것을 쓴다. 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대략 다섯 편의 뛰어난 한국영화를 뽑아보고 그 영화들이 어떻게 감동과 감흥을 가져다 주었는지 즐겁게 돌아보는 것이 원래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2014년의 개봉 목록을 훑어보았다. 아니 몇 번을 의심스러워하며 다시 보았다. 나는 채 다섯 편을 꼽지 못했고 그게 당황스럽기만 했다.

누군가는 너무 높은 기준을 두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적다고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영화기자라는 직업으로 밥을 벌었고 여전히 그 덕으로 살고 있는 나는 비교적 혹은 본능적으로 한국영화라는 지역적 범주에 어떤 막연한 친화력을 느낀다. 언젠가 장률 감독은 말한 적이 있다. ‘영화가 지역성과 무관하다는 건 개소리’라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영화는 때로 그 지역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러니 영화는 때로 그 지역의 기쁨과도 고스란히 가까이 있다. 어떤 이들은 한 해의 한국영화를 결산하는 자리에서마다 올해는 뽑을 영화가 너무 없다며 매해 울분을 터뜨렸다. 마치 로마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시쳇말이 되풀이되어 사용된 것처럼 혹은 비평의 시대는 죽었다고 예나 지금이나 되풀이되어 말해지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돌아보건대 내게 그런 해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게는 늘 뽑을 영화들이 있었고 아직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정감이 가는 영화들이 돌아보면 많았다. 그러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각종 지표나 비판의 대상이 될 만한 이름들을 제시하며 얼마나 영화적으로 빈곤한 수준이었는지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런 걸 잘 하지도 못한다. 대신 애초에 이 지면을 시작할 때의 어떤 다짐이 새삼 떠올랐다. 내게 소재에 관한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나는 한국영화에 관한 단상을 쓰고 싶다고 했다. 쉽지 않을 거라고는 물론 생각했지만 그건 스스로에 거는 주술이며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족쇄 같은 것이었다. 이미 열악해져있다고 판명 난 하지만 아직은 파산했다고 가정해서는 결코 안 되는 한국영화, 그에 관한 단상이라는 족쇄를 스스로 차고 싶었다. 그런 제약과 의무라는 강제력을 동원한다면,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영화들을 발견해내거나 조금 더 눈을 부릅뜨고 보면 보이는 좋은 작품들을 마침내 길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이 지면의 첫 호를 쓸 때에도 허술하지만 기백이 넘쳤던 B급 영화 <몬스터>(2014) 에 관하여 위험을 무릅쓴 지지의사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한 해의 끝에 이르러 전체의 목록을 돌아보니, 솔직히 지금은 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한국대중영화의 하향평준화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완성됐고 너무 강력해져 있다. 대중영화라는 이상한 용어는 거론할 때 마다 유령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그렇다 해도 영화가 산업을 껴안고 대중을 소비자로 인식하는 이상 끝까지 애매한 상태로 유효할 가능성이 높다. 그 한국대중영화가 확실히 하향적으로 굳건하게 평준화되자 그 이전에 누구나 쉽게 근심하던 문제들을 이제 누군가 지적하면 순진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왜 한국 대중영화는 점점 나빠지고 시시해지는가, 라고 물을 때 사람들은 곧잘 외면한다. 원론의 반복 내지는 철지난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경향들이 많이 생겨났다. 예컨대 대중영화의 틀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중요한 주체는 제작 및 창작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그 자금을 허락하는 사 람들이 제작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이 말은 지겹도록 반복적으로 제시되어 왔지만 이제는 꺼내는 것조차 무색할 정도가 됐고, 지금은 그걸 지키기 어렵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영화의 상식인 것처럼 되어 버렸다.

말이 통하는 영화인들을 만나서 물을 때 그들의 낯빛은 어둡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언제나 난관의 연속일 터이니 예나 지금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이겠지만, 지금 중요하게 새로 부각된 문제점이 있다면 어떠한 강력한 대중영화의 기준 혹은 모델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아서 그런 난관을 종종 맞는다는 것이다. 저 틀거리 혹은 공식 혹은 통조림 안에 들어가야만 대중영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나의 동료 기자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보통 관객을 위한 영화를 대중영화로서 지향하는 건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좋은 대중 영화가 되는지 아닌지를 왜 뛰어난 창작인이 아니라 보통의 회사원 이 결정하는 것인가? 창작에 관한 보통의 시각밖에는 못 가진 사람 들이 보통 영화를 지향하니 영화의 수준이 저절로 낮아지고 있다.” 예리한 창작의 심혈을 가진 이들이 대중성이라는 그 애매한 영역을 가로 질러 달릴 때 비로소 창의적인 대중영화가 양산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영화의 창작은 용감해질 수가 없다. 많이도 아니고 조금만 용기를 내어도 쉽게 밥을 잃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부흥기를 일으켰던 기성 제작자들도 창작의 힘을 잃었다. 예컨대 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당대의 프로듀서들이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들이라고 이 낭패감의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 있을 것인가. 기성감독들의 창작력 부진을 말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나는 홍상수나 이창동 같은 감독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간의 재능을 갖고 있고 영화로 생업을 이을 수 있는 가운데 창작의 기운으로 대중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위대하진 않지만 보통 이상의 실력을 갖춘 감독들을 상정하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몇 명의 이름이 떠오른다. 재기발랄했으나 지금은 시들해져 버려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이들.

혹은 2014년의 영화들을 돌아보면서 그 옆에 적힌 감독들의 이름을 보다가 놀라게 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전작을 만들었던 감독이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를 만드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되었는가. 그에 대한 신임과 신뢰는 누가 부여한 것인가. 그들이 단지 철저하게 고용된, 말 잘 듣는 용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름을 나열하는 것도 어렵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을 나열하여 상처를 줄 만한 자격이 내게는 없다. 다만 지금의 시스템이 뛰어난 창작자를 요구하기보다 기술적으로 능숙한 관리인을 기용하여 하향평준화에 일조하고 있음은 부정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영화들은 점점 더 공산품이 되어 가고 용감해지지 못할 뿐 아니라 더러는 용감한 영화가 어쩌다 나온다고 해 도 결국 망한다. 게다가 관객의 눈높이도 이제는 정확히 하향평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용감한 영화의 그 초과적인 미학이나 결기를 부담스럽게 느끼기 일쑤다.

그렇다면 가령 신진감독들의 경우라면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는 것일까. 불운한 경우를 나는 너무 여러 번 보았다. 우선 한국영화는 2000 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출현했던 재능있는 신진 감독들을 최근에 이르러 너무 많이 잃었다. 재기있게 데뷔했으나 상업적 요구를 견디지 못해 소외되었거나 혹은 상업적 요구에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자기를 억지로 변화시키다 도리어 버려지는 경우들이었다. 아예 데뷔 하지 못하는 유형들도 있다. 혹은 오로지 데뷔를 위해 처음부터 스스로 썩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기를 잃지 않고 근근이 한두 작품씩을 이어가는 것이 나머지 경우다. 그렇지만 그 길은 외롭고 힘들다. 아니 어쩌면 더 큰 문제적 경우는, 독창적인 재능을 선보이자마자 지금의 시스템에 곧장 흡수되어 완전히 시스템의 소모품이 되는 경우다. 그들은 안정된 시스템에 승선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만들어냈던 전작과 차기작 사이에 놓인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간극을 보면서 나는 때때로 한숨을 거두기 어렵다.

대안이 없는데 비판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라 망설였다. 그런데 이것은 비판도 되지 못하거니와 차라리 한 관객의 그저 토로에 해당 할 것이다. 다만 이런 토로를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이 깊은 겨울 밤에 올 한 해 내가 좋아한 한국영화 다섯 편을 따뜻한 마음으로 꼽아 보려다 생각은 이렇게 휩쓸린 것이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얼른 꼽아 놓고는, 한참을 머릿속으로 두리번거린 다음에서야 겨우 겨우 나머지 네 편의 제목을 적어서 힘들게 다섯 편을 채웠다. 내가 좋아하는 올해의 한국영화들을 꼽으며 이렇게 난처해 보기는 처음이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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