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 집중할 때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 집중할 때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만 집중할 때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이란 게 별 거 없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이런 생로병사의 과정인 삶이 잠이라면 사랑은 그 속에서 꾸는 달콤한 꿈이다. 작은 죽음이라 일컫는 잠이 우리네 인생의 활력이 되는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오매불망 사랑을 찾아 헤매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하여, 사랑으로 인해 빚어지는 세상사는 천태만상으로 펼쳐진다. 여기 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정네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란 영화 속 주인공 영수다.

화가인 영수(김주혁 분)는 선배 중행(김의성 분)으로부터 자신의 여자 친구인 민정(이유영 분)이 어느 남자와 술을 마셨으며 싸움까지 했다는 말을 듣는다. 중행은 자신만 아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라며 민정의 일을 기정사실화시킨다. 그 일로 영수와 민정은 크게 말다툼을 하고 민정은 당분간 서로 보지 말자며 자신의 집으로 가버린다. 민정을 떠나보낸 영수는 목발을 짚고 나타나 민정을 찾아다닌다. 목발에 의지해 띄엄띄엄 걷는 영수의 발걸음은 성하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그의 마음을 투영한듯하기도 하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그의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잡힐 듯 잡힐 듯 민정의 모습은 영수에게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영수)가 애타게 찾아 헤매는 사랑(민정)은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꾸며 변신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고 변신하는 것임을 보여주듯… 그것이 세상살이 또 사랑의 본질이라는 듯. 여우같은 홍상수 감독이 그러한 낌새를 영화 속에 슬쩍 끼워 넣었다. 여자가 카페에서 읽고 있던 책이 바로 카프카의 <변신>이다. 사실 변신을 거듭하는 그녀가 민정인지 쌍둥이인지 또는 전혀 다른 여인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하여 편의상 여자라고 칭하기로 한다.

영수의 주변 인물들은 민정에 대해 오지랖 넓게 가십거리만을 찾아내려 애쓰고 남자들은 정작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민정 씨?”로만 호명하려 든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을 민정이라 부르는 이들에게 “네, 저 아세요?”라고 답한다.

아니라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당신은 민정이다, 내가 아는 여자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하는 이들의 행태는 한낱 부질없는 먼지와 같음이 곧 드러난다. 그 예가 바로 여자에게 다가왔던 박재영(권해효 분)과 이상원(유준상 분)의 만남이다. 그들은 여자 때문에 서로 말다툼을 벌이다 어느 순간 친구임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그들 사이에서 여자는 사라지고 없다. 자신들의 만남이 여자로 인해 이루어진 사실은 안중에도 없고 서로에게 주입시키려 했던 사건의 진상 따위 역시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들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사이 여자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토록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했던 그들의 말과 행동은 여자가 민정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는 일종의 오기 내지는 시간 죽이기용 놀이 정도였던 것이다. 믿음을 상실한 우리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혹은 알고 있다고 믿는 일들이 그러한 부박한 것임을 시인하지 못할 자 몇이나 되겠는가.

영수가 사는 집 근처의 여기저기를 민정과 쌍둥이라 자처하는 여자 혹은 그녀를 닮은 여성들 아니면 진짜 민정이 돌아다니면서 남자들을 만나는 사이 영수는 민정을 찾아 헤맨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가십거리, 편견 등 그들의 사랑을 흔드는 잡다한 세상사와 싸움을 벌이면서 쓸쓸한 걸음걸이를 옮기는 그의 모습은 위태롭고 유약해 보인다.

영수와 민정이 다시 만나는 날, 다른 남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민정은 자신을 민정이라 부르는 영수의 부름에 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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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을 믿을 겁니다.”

‘민정’이라는 이름에 메아리가 없을 때 영수가 택한 답이자 반응이다. 민정이 쌍둥이인지 민정이 아닌 또 다른 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선배 중행의 말을 듣고 민정을 의심했던 영수가 그녀의 말을 믿고 인정하는 순간 그들의 사랑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위태롭고 유약했던 목발의 영수에게 사랑을 흔드는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용기와 의지가 발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을 믿을 겁니다’라는 말이 영수가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겠다는 의지의 발현인 주문은 곧 믿음으로 전개될 것이다. 믿는 대로 될지어다. 사랑을 떠나보낼 수 없을 때 기댈 수 있는 건 믿음 뿐이다.

믿음을 품을 수 없어 사랑을 등진 이에겐 달콤한 꿈이 노니는 잠은 영원히 요원한 일이다. 작은 죽음인 잠 속에 빠져 한 번 뿐인 자신 앞의 삶을 죽음 상태로 연명하다 마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금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만 집중할 때이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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