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할 수 없는 생활의 하잘 것 없음, 그러나 판타지는 없다.
익숙함의 끝엔 언제나 낯섦이 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그곳으로 등 떠밀린다. 몇 년간 함께하며 익숙해진 지겨운 풍경과도 작별일 때, 언제가지고 하루의 구석구석이 만드는 비밀을 속속들이 공유할 수 있을 것 같던 친구들은 제 갈길을 가며 기약 없는 다음을 이야기한다. 학기마다 긴장시키던 성적표와도, 괜히 꼴보기 싫던 같은 반의 그 애와도, 이유 없이 시비 걸던 선생과도 안녕이다. 나를 표현해주던 소속집단의 이름이 더 이상 내 것일 수 없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묻는다. “너, 앞으로 뭐 할 거니?” 졸업을 맞은 것이다. 처음부터 학교라는 장소에 들어가길 결정한 게 내 선택은 아니었건만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은 내게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이제 매일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일도 없다. 그럼에도 끝나지 않은 삶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다는 것조차 가르쳐 주지 않은 채 내게 운전대를 쥐고 어디로든 방향을 틀라고 말한다.
한심하게 살고 싶지 않은 두 소녀
고등학교를 졸업한 두 소녀, 이니드와 레베카 역시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세상만사가 마음에 안 들고 웬만한 일엔 냉소로 일관하는 자신을 이해하는 건 서로뿐이라 굳게 믿는 둘은 졸업파티에선 경영학을 공부할 거라는 남자애에게 “그게 우리가 정확히 피하려는 종류의 일이야.”라고 말하고 우연히 마주친 꼴불견 동창에겐 “우린 다른 계획이 있다.”며 제법 거만히 대꾸 한다. 그러나 막 학교를 벗어난 여자애들의 앞날에 결정된 것은 같이 살기로 한 것이 다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들, 그러니까 어디서 무엇이 돼 누구의 돈을 받아서 먹고 살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들처럼 한심하게 살고 싶진 않다는 바람뿐. 우스운 차림의 동네사람들을 뒤에서 비웃고 공연히 거리를 쏘다니며 보내는 하루하루의 무료함에 지쳐갈 때쯤,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둘은 비행기에서 잠깐 마주친 여자를 찾는 남자의 광고가 실린 신문을 보고 그 여자인양 전화를 걸어 장난을 치는데, 이렇게 따분함이 부른 장난은 시모어라는, 평생가도 말 한번 섞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이니드와 레베카에게 소개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겉모습으로, 누가 봐도 ‘평범함’이라는 범위에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은 시모어지만 그를 약간은 특별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관계에 있어서의 그의 한없는 서투름이다. 아니, 서투른 것을 넘어 관계 자체에 염증을 내며 사람들 사이에서 기쁨이라곤 얻지 못하는 그는 수천 장의 엘피판으로 둘러싸인 방에서만 안식할 수 있다. 일종의 음악 오타쿠라 할 만큼 강박적으로 음악을 수집하는 시모어에게서 이니드는 특이한 종류의 호감을 느끼고, 시모어는 이니드의 접근 루트를 모른 채 그렇게 친구가 된다. “모두가 너무 멍청해” 라고 화에 가득차 소리 지르는 이니드에게 스포츠에나 열광하는 머리 빈 또래 남자와 달리 속 깊게 좋은 음악을 추천해주는 시모어는 멍청하지 않은 극소수의 사람, 다시 말해 자기 말을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서로의 삶이 같은 궤도에 있지 않음을 깨달을 때
이니드가 시모어라는 새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잠시 레베카를 잊은 동안, 레베카는 자기만의 공간 갖기라는 꿈꾸던 삶을 살기 위해 카페에 일자리를 구하고 이니드와 함께 살 집을 채울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열을 올린다. ‘대충 비싼 옷을 입고 뭐라도 되는 사람들인 양, 여피족처럼 살고 싶던’ 레베카가 한 걸음씩 움직이는 것을 보며 이니드는 그러나 이질감을 느끼고 친밀감만 있을 줄 알았던 둘 사이엔 묘한 거리감이 싹튼다. 졸업 후 같이 살기를 결정할 정도로 친해진 친구를 처음 만나고 그녀와 우정을 쌓았던 공간인 학교를 벗어나자 둘은 서로가 가진 공통점 보단 차이점에 눈을 뜨고, 자신의 삶이 서로의 그것과 같은 궤도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에 곧 외로워진다. 시모어가 음악밖에 모르는 허름한 중년임에도 멋있다는 것을 레베카는 이해하지 못하고 남들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레베카를 이니드 역시 전과 같이 바라보지 못한다. 학교는 구속을 위한 울타리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곳은 함께 있을 수 있는 물 리적 공간을 제공하며 이질적 개인들에게 유사한 삶의 방식을 부여함으로써 너와 나에게 우리라는 이름을 주었다. 모든 것이 짜증나고 어떤 것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두 십대, 이니드와 레베카는 자신들을 느슨히 묶어주었던 끈이 사라지고 나자 스스로가 상대방에게 어떤 존재인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당황한다. 친한 친구가 낯설어지고 앞날은 어찌될지 모르는 이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학교 밖은 척박하기만 하다. 몇 번의 다툼이 있은 후 어떻게든 레베카와 함께 살기로 합의 본 이니드는 극장 팝콘 코너의 캐셔 자리에 억지 춘향으로 일자리를 얻는다. 하지만 손님에게 영화에 대해 품평하는 것도, 손님의 주문에 토를 다는 것도, 사이즈-업을 권유하지 않는 것도 금지된 일터의 규율을 이니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은 극장의 이익을 위해 고용되었음을, 그곳에서 나는 내가 아니라 직원이라는 부속품임을 받아들이기에 아직 지나치게 싱그러운 탓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자의식을 누르고 세상의 규칙에 순응할 만큼 약지도, 성숙하지도 못한 미숙련 노동력을 반기는 고용주는 없다. 이니드는 첫날 바로 해고된다.
오지 않을 걸 알면서 기다리는 것들
뭘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혹은 그렇기 때문에-늘 어딘가를 향하는 소녀 둘과 달리, 붙박이인양 언제나 한 곳에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 길거리 벤치의 할아버지 노먼이다.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 버스 노선의 정류장에서 날마다 버스를 기다리던 노먼은 이제 버스는 없다고 야무지게 충고하는 새파란 얼굴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단다.”며 그가 입은 정장만큼이나 흐트러짐 없이 완고하게 대답한다. 치매 환자의 노망인가 싶지만 우리 모두에겐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기다렸던 경험이 있다. 부모님의 인정을, 깨진 관계의 회복을, 그 사람과의 데이트를, 이 전부를 가능케 할 결정적 순간을. 노먼의 마지막 모습은 계획은 좌절되고 꿈은 흐려지며 친구와는 멀어지는 삶 속에서 우리가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어쩌면 성실함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보답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미련하도록 우직한 성실함.
부정할 수 없는 생활의 하잘 것 없음, 그러나 판타지는 없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나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대통령 같은 중책이 아니고서야 삶은 일상의 반복일 수밖에 없고, 이렇게 건수 없는 삶에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평평한 나날들엔 도무지 기승전결이 없는 것이다. 시간은 그저 우리를 비켜 흐르고 지루함은 불가피하다. <판타스틱 소녀백서Ghost World>(2000)의 미덕은 이 부정할 수 없는 생활의 비루함과 하잘 것 없음을 쉽게 봉합해 버리거나 이에 대해 허무맹랑한 판타지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앞으로 삶의 민낯을 맞게 될 이니드와 레베카의 방황을 올곧게 담아내는데 있다. 누구나 지나오는 나이의 누구나 겪는, 그럼에도 동요하지 않을 수 없던 날들을 영화는 사려 깊게 관찰하고 이에 관객은 은근한 온기를 느낀다.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던 주변이 별안간 생경해지고 손 뻗으면 닿았던 것들이 멀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너만 그런건 아니라는, 두 시간 남짓의 위로일지도 모른다. 근데 그 할아버지 어떻게 됐냐고? 궁금하면 영화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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