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비밀 [히로시마·평양] – 정기문 자유기고가

잔혹한 비밀 [히로시마·평양] – 정기문 자유기고가

역사적 문제의 책임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도사리고 있는 (핵)전쟁과 원전의 위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2015년 7월 10일, 제5회 부산반핵영화제에 가서 개막작인 이토 타카시의 다큐멘터리영화 〈히로시마·평양〉을 봤다. 영화 제목에 나란히 병기된 익숙하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두 도시의 지명, 일본의 히로시마 그리고 북한의 평양. 영화 제목만으로 어떤 영화인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버려진 피폭자’라는 부제를 통해 간신히 일본과 북한에 거주하는 피폭자에 관한 영화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제국으로부터의 해방 이후 성립된 분단체제의 대한민국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나로서는 여전히 평양과 피폭자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 어떻게 다뤄질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영화 관람에 돌입했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2009년 4월 평온해 보이는 평양의 한 가정집에서 시작된다. 식사 후 손가락에 붕대를 감은 리계선 씨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하얀 붕대를 손가락 끝에 덕지덕지 감고서 그릇 몇 개를 씻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이 여성에게, 감독 이토 타카시가 병세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일이년 전부터 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세도 나타났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 원인이 피폭 때문일 것이라 그녀는 말한다.

이어 다음 시퀀스는 1945년 8월 원자폭탄 투하 이후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처참한 광경을 담는다. 이 가공할만한 무차별적 대량살상으로 인해 히로시마에서 42만 명, 나가사키에서는 27만 명이 피폭 당했다. 그런데 피폭 당한 것은 일본인뿐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에서 징용된 조선인들도 다수 포함되었었다. 강제 징용이나 혹은 직업을 찾아 일본으로 몰려든 조선인들 또한 이 폭격으로 7만 명 정도가 피폭된 것이다. 전방과 후방의 구분 없이 자행된 인류사상 유례없는 이 살상으로 일제는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일제의 항복은 곧 일제 지배하에 있던 지역들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 당시 리계선 씨와 그녀의 부모는 원폭 투하에서 27킬로미터 떨어진 지금의 히로시마현 오타케시에 살고 있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여전히 일본에 남겨져 있던 그녀의 부모는 조국으로 돌아갈 방도를 찾고 있었다. 마침 뜻밖에도 일본이 귀국비용을 지급한다는 소문이 조선인들에게 퍼지게 된다. 그런데 이 비용을 지급하는 곳이 하필 폐허가 된 히로시마 내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계선 씨의 어머니는 귀향을 위해 당시 3살이었던 리계선 씨를 데리고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걸어 들어갔다. 모녀는 간신히 귀국비용을 지급하는 일본인 간부와 대면했지만, 이 간부는 여전히 일제는 전쟁 중임을 믿고 귀국비용 등의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는 적색분자라며 호통만 칠 뿐이었다. 결국 모녀는 귀국비용을 받기는커녕 잔류방사선으로 오염된 히로시마 시내를 걸어 내부 피폭되어버렸다.

15-5이리하여 리계선 씨의 가족은 귀국을 포기한 채 전후 일본에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한창일 때, 재일조선인들은 귀국요구운동을 벌인다. 당시 일본 측의 입장에서도 ‘식민지의 잔재’로서의 조선인은 사회적인 문제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북한으로의 귀국사업은 별 무리 없이 실현된다(이 귀국사업에 관해서는 문정현의 〈할매꽃〉(2007), 최양일의 〈피와 뼈〉(2004) 등의 영화에서도 소재화된 적이 있다). 이 귀국사업에 편승하여 리계선 씨는 가족을 일본에 남겨두고 홀로 북한으로 가서 살아간다. 북한에서 정착 후, 그녀는 대학 교육을 마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지만 때때로 원인 모를 육체적 질병으로 고통스럽다. 2004년 북한을 방문한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의 질병을 보고서, 그때서야 45년 히로시마에 가서 잔류방사능을 쏘여 입시(入市) 피폭 당한 사실을 밝힌다. 피폭된 지 59년만에서야 리계선 씨는 자신의 질병의 원인을 알게 되었지만 왜 그 사실을 어머니가 숨겼는지 등의 자세한 상황은 모르고 있다. 감독 이토 타카시는 피폭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히로시마현의 오타케시에 있는 그녀의 어머니 허필년 씨의 자택을 찾아간다. 이토는 왜 허필년 씨가 자신의 딸에게 피폭된 사실을 숨겼냐고 묻자,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가지 못할까 봐 혹은 그 사실을 숨기고 딸이 시집을 간다면 딸의 마음이 아플까 봐 였다고 말한다. 그럼 결혼 이후에는 왜 말해주지 않았냐고 하니 혹시 딸이 이혼을 당할까 봐 였다고 말한다.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이지만 이 대답은 무책임하고 잔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만일 피폭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더라면 조금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곤혹스런 문제는 자신의 피폭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리계선 씨 또한 자신의 자식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이는 피폭 문제가 단순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육체의 질병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대를 거듭해 반복될 수 있는 질병임을 뜻한다. 원폭이든 원전이든 고도의 인간 이성이 발명한 근대적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다. 원자력은 일시적 사건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가늠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할 그 ‘무엇’이기에 위협적이다. 또한 원자력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은 국가적 차원과 결부되어 있다. 애초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원자력은 국가적 차원에서 개발되었다. 미국의 원자력 투하는 인류의 역사에 깊은 상처와 충격을 준 사건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사건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를 일이기에 문제적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 있지만 인간이 사라진대도 지속적으로 존재할 물질이기에 인간 역사의 바깥에 있기도 하다. 이 바깥에 대한 사유는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이지만 이 글에서 이것을 다루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인간 세상, 구체적으로 말해 국가와 국민이라는 범주 안에서 원폭이 취급되는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15-6분명 미국에 의한 원자폭탄 투하는 최소한의 윤리성도 없는 잔학한 행위였다. 원폭에 의해 희생된 일본인들이 불우한 희생자였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이후 원폭을 ‘처리(지속적으로 썼지만 이는 결코 처리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해간 일본의 처사는 문제적이다. 원폭 이후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 사실은 배후로 밀어내고,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부각시킨 것, 당시 조선인 원폭자들을 유령 취급한 것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조선인 위령비가 건설되는 데 많은 세월이 걸렸는데 조선인들의 투쟁에 의해 공원 한 귀퉁이에 비가 세워졌다), 특히 영화에서도 다루고 있듯이 피폭자들에게 지급되는 ‘피폭자건강수첩’이 국가 간의 외교 문제로 북한만이 예외가 된 점(2007년 조사에 따르면 북한에 생존하고 있는 피폭자는 382명에 이른다) 등이 그러하다. 이렇게 원폭을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테크놀로지적 파괴력에 국한되지 않고, 이를 다루는 국가의 정책, 국가 간의 항쟁과 갈등 그리고 식민지적 기억의 문제를 포괄한 복잡한 현상이다.

원폭이 하나의 문제 틀로 풀 수 없는 균열된 현상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리계선 씨를 현현시켜 발화하고 있다. 리계선 씨는 인류의 잔학함으로 상처받아 훼손된 육체로 말한다. 육체의 고통은 발화되지 않은 형태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이와 함께 인터뷰 중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와 발화된 말은 일본어/조선어를 넘나들며 역사적 균열을 드러낸다. 2009년 당시 그녀는 여전히 탈 식민화하지 못한 채 당대를 살아내고 있다. 우리는 역사의 파고에 의해 온몸으로 상처받은 그녀를 보면서 막연한 연민이나 동정을 던지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 끝나지 않을 고통의 당사자로서 우리 스스로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 문제의 책임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도사리고 있는 (핵)전쟁과 원전의 위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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