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모든 게 부산 때문이다. 때는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였다. 나는 스물 한 살이었고, 막연히 영화를 동경하던 대학생이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부산에 입성한 나는 밀려드는 사람들과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내내 흥분 상태였다. 그리고 그 흥분은 어느 새벽 남포동 광장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2004년의 화제작이었던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신작 <2046>이 발단이었다. 새벽부터 친구 8명과 티켓박스 앞에 줄을 섰지만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부산 때문이다. 때는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였다. 나는 스물 한 살이었고, 막연히 영화를 동경하던 대학생이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부산에 입성한 나는 밀려드는 사람들과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내내 흥분 상태였다. 그리고 그 흥분은 어느 새벽 남포동 광장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2004년의 화제작이었던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신작 <2046>이 발단이었다. 새벽부터 친구 8명과 티켓박스 앞에 줄을 섰지만 우리가 구한 티켓은 단 한 장뿐이었다. <2046>은 왕자웨이 감독이 <화양연화>(2000)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었고, 일본의 톱스타인 기무라 타쿠야가 출연했던 터라 모두들 그 티켓을 갖고 싶어 했다. 게다가 무려 ‘GV 티켓’이었다! 세 판의 피 튀기는 가위바위보가 이어졌다. 결국 입장권이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나는 남포동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상영관의 열기는 상상이었다. 기무라 타쿠야란 이름이 자막으로 뜨자 환호성이 터지는 지경이었으니 이제 와서 영화의 줄거리를 복기하라면 영 자신이 없지만, 당시 관객들의 달뜬 얼굴은 하나하나 생생하다. 상영 직후 왕자웨이 감독과 량차오웨이(양조위)를 맨 눈으로 봤을 때의 기분이란. 한동안 블로그 아이디가 ‘양직만(량차오웨이를 직접 만난 사람)’이었다는 것만 부끄럽게 밝혀둔다. 2004년의 부산은 내 인생에서 어떤 기적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루에 4편씩 영화를 폭식하는 포만감을 느꼈고, 낯선 사람들과 우루루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며 이상한 연대의식을 체험했다. 이창동 감독을 길거리에서 만나는 행운까지, 이 모든 것은 부산이기에 가능했다.
그러니까 내가 영화기자가 된 것도 다 부산 때문이리라.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가을, 나는 취재를 위해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PRESS’ 명찰을 목에 걸고 홀로 영화의전당을 돌아다니는 건 생경한 일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원고와 칼같이 돌아오는 마감일 사이에서 옛 시절의 짜릿함을 잊어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부산의 공기는 정말로 희한해서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다시 10년 전의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2004년의 내’가 ‘2015년의 나’를 부산으로 이끈 게 분명했다.
또 한 번의 놀라운 순간은 영화의전당에서 벌어졌다. 33년 만에 브라질에서 귀국한 이은심 여사의 기자간담회를 이틀 앞두고 이 여사가 출연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를 재관람하기 위해 영화의전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이은심 여사가 게스트로 깜짝 등장한 것이다. 이은심이란 배우는 내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하녀> 속 그의 기괴한 얼굴은 <하녀>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국영화에선 본 적 없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은퇴도 이 배우에 대한 환상성을 한없이 증폭시켰다. 그런 미지의 배우가 내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내한 소식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물을 체감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그 이후 나는 팬심으로 이 여사의 일정을 쫓아다녔다. 다음 날 여사의 남편인 고 이성구 감독의 회고전 GV를 관람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티켓을 끊었고, 기자간담회 때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 여사께 질문을 던졌다. “연기에 재능이 없어 그만 뒀고, 미련 없이 브라질로 떠났다”는 고백, 전도연 주연의 리메이크작을 보고 “나보다 훨씬 예쁘고 연기도 잘하더라”는 겸손, “상대 배우였던 고 김진규 씨를 고국에서 다시 한 번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후회 모두 듣는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부랴부랴 기사를 마감하고 나서야 나는 이 상황 또한 초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 한국 방문이 될 것”이며 “나는 브라질에서 죽겠지만 언제나 한국 사람인 게 자랑스럽다”는 여사의 인사말이 내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리하여 내게 부산은 영화의 동의어다. 부산은 언제나, 영화처럼 나를 환상의 시공간으로 이끈다. 누군가에겐 징글징글한 삶의 터전이겠지만 나에게 부산은, 매번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극장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괜스레 투정을 부려보고 싶다. 매일 밤 머리를 싸매고 졸음을 참아가며 마감 시간을 견뎌내는 것 또한 다 부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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