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우연이 아닌 엽기적 자본주의 : 자장커의 [천주정], 영화부산

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우연이 아닌 엽기적 자본주의 : 자장커의 [천주정], 영화부산

자장커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사회주의적 거대담론에 대한 도전과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반대 메시지 등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자장커(가장가) 감독의 <천주정>을 소개하면서 ‘우연이 아닌 엽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자장커 감독에게 모더레이터를 맡은 강소원 평론가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감독의 답변에 이 영화의 압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요약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소원: “(이 영화를 보면) 자장커 감독님의 영화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대목들(액션, 폭력 등)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요. 이 영화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요?”

자장커: “한 2~3년 전부터 중국에 특별히 엽기적인 사건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부 다 우연하게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중국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까 그런 엽기적인 일들을 피하기가 힘들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이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2013년 10월 8일)

(2013)

<천주정天注定>(2013)

그러나 자장커 감독의 전작들을 익히 알고 있는 시네필들이라면 그의 작품 경향이 갑자기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천착하고 있는 중국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모순, 그리고 갈등을 표현하는 방식이 보다 강렬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그는 중국 자본주의 50년사를 8명의 노동자들의 기억과 전망을 통해 살펴보고 있는 페이크 다큐 <24시티二十四城记>(2008)를 관객들이 동작보다는 언어를 중심으로 바라보길 원한다고 밝혔지만, <천주정>에서는 이러한 언어보다는 직접적인 행동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24시티>부터 <상해전기海上傳奇>(2010)에 이르기까지 자장커 감독의 영화적 시선이 달라지고 있지 않은가라는 일부 평론가들의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정부나 자본의 도움으로 영화제작을 하게 됨으로써 그가 지닌 독자성과 자율성의 영역이 침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능굴능신(能屈能伸)’하면서 또 다른 의미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활용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즉 작품을 풀어나가는 맥락이나 콘텍스트에는 여전히 그의 기풍과 관점들이 견지되고 있다. 이는 중국영화사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여전히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장커 감독을 필두로 한 제6세대 또는 ‘포스트 제5세대’로 불리는 감독들과 그 작품들(예컨대 장위엔(장원)의 <엄마媽媽><북경 녀석들北京雜種><녹차綠茶><아이들의 훈장看上去很美><다다의 춤達達>,왕샤오슈아이(왕소수)의 <시련의 세월冬春的日子>, 허찌엔찐(하건군)의 <대화世紀末的對話>, 우원꽝(오문광)의 <1966, 나의 홍위병 시절1966, 我的紅衛兵時代>, 우디(오적)의 <금붕어黃金魚>, 첸쥐에(진작)의 <천안문광장天安門廣場><나는 졸업했다我畢業了> 등)의 공통적인 특징은 창작의 권리와 독립을 주장하는 것으로 집약될 수 있고(역사적으로는 ‘천안문 광장’의 세대임), 이들 감독들의 공통된 입장은 “나의 카메라는 거짓말하지 않는다(我的撮影機不撒謊).”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자장커 감독은 여전히 이러한 입장에서 <천주정>을 만들었다.

 국내 포스터

<천주정> 국내 포스터

<천주정>은 모두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세 건의 살인들과 한 건의 자살). 그러나 각각의 이야기들은 흩어졌다 모이고, 모인 이야기들은 단도직입적으로 중국 자본주의의 엽기적인 병폐를 향해 나아간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다의적이다. 중국에서 ‘천(天)’은 하늘을 뜻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황제, 즉 최고의 권력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천주정(天注定)은 영화의 포스터에 소개된 ‘하늘에 흐르는 운명’이라는 문학적 수사보다는 ‘하늘 또는 지배적인 사회양식이 정한 운명’`이라 표현하는 것이 보다 직설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영어제목인 <A Touch of Sin>이 그 의미를 보다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인민들이 ‘하늘을 대신해서 정의를 행한다(替天行道)’라는 구호로 체제에 대항할 것인지, 아니면 전통적인 숙명이나 푸념으로 가라앉을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의 숙제로 남겨두고 있다. 한편 이 영화의 제목은 후진취안(호금전) 감독의 <협녀A Touch of Zen>를 오마주한 것이다. 이 영화에도 <천주정>처럼 경극의 요소가 들어있다. 그러나 자장커 감독은 단지 제목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극중에서 샤오위(자오 타오(조도) 분)가 돌연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리고 무협과도 같은 액션을 펼치는 장면에서도 헌정되고 있다. 영화음악의 작곡은 대만의 린치앙(임강)이 맡았다. 그는 자장커 감독의 <24시티> 주제가와 <세계世界>(2004)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사족이지만 <천주정>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글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을 지앙웬(강문, 姜文)으로 밝히고 있지만 실은 그의 동생인 지앙우(강무, 姜武)이다. 그의 이름에서 이미 캐릭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문이 아닌 무). 그리고 지앙우가 이 영화 이전에 출연한 작품은 절강성에서 제작한 36부작 드라마 <향동시대해向東是大海>(2012)이다.
<천주정>에서 지앙우의 이름이 ‘따하이(대해, 大海)’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극중의 따하이는 아직 사회주의적 생산방식과 이념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중국의 노동력 관리방식과 생산방식의 변화(단위체제와 인민공사의 해체 등)로 이전의 약속들이 모두 내팽개쳐진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고, 이를 방치하는 부패한 관료사회를 응징하고 있다. 이는 따하이의 조카가 영어단어공부를 하면서 내뱉는 말이 ‘짐승짐승(animal)’인 것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장커 감독은 그를 수호전의 표두자 임충과 연결시키고 있다.

두 번째 인물은 ‘묻지마 살인마’인 듯한 ‘조우산(왕바오치앙(왕보강) 분)’이다. 그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닥친 빈한한 처지를 개인적 범행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다. 이는 영화의 두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중간에 기사를 윽박질러 내리기는 하지만 고속버스 안에서 홍콩 두치펑(두기봉) 감독의 <익사일放逐>(2006, 자장커 감독은 <재청조在清朝>등에서 두기봉 감독과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조우산은 스스로 이 체제가 자기를 부당하게 추방(放逐)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의 죄를 하늘에게 돌린다. 이 장면은 그의 형이 놓고 간 담배 3개비로 향을 피우 듯하며 부인에게 말하는 대사에서 나타난다. 즉 부인이 설날도 아닌데 웬일로 신한테 인사하느냐고 묻자 그는 귀신한테 인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억울함을 하늘에 원망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인물은 ‘샤오위’이다. 그녀가 근무하는 사우나에서 쉬커(서극) 감독의 <청사靑巳>(1993) 비디오를 보는 장면은 그녀의 꿈을 상징한다. <청사>는 사랑을 위해 인간이 되기 위한 1000년 공력과 목숨을 내던진 뱀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중국 전래의 전설이기도 하고 고전소설과 희곡의 주요 소재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만큼 순수한 열정과 사랑과 희망을 담고 있는 텍스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정한 자본과 부패한 관료에 의해 참혹하게 스러지게 된다. 마지막 인물은 후난성 출신인 청년노동자 ‘샤오후이(루어란샨(나람산) 분)’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후난성은 마오쩌뚱의 고향이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마오쩌뚱을 신처럼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샤오후이와 그가 사귀고 있는 매춘여성 모두 후난성 출신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샤오후이가 애플의 중국내 다국적 해외공장인 폭스콘을 연상시키는 곳에서 작은 새처럼 날아올라 자살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장커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사회주의적 거대담론에 대한 도전과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반대 메시지 등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중국의 제6세대 영화감독들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전쟁과 혁명의 역사 속 영웅적 인물들로서의 위대한 농민, 노동자들을 내세우는 주선율 기조의 영화담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오히려 일상적 소시민들의 개인적이며 소소한 기억들을 통해 거대한 역사를 복원해내고, 나아가 이들의 기억과 전망을 통해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주정>도 여전히 이 궤도 위에 있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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