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무엇인가? 일상 생활의 소재를 담는 것이다.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질문 중의 하나, 영화란 무엇일까? 그런데 막상 이를 나름대로 정의해보려면 막막해질 때가 많다. 막막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말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영화에 대한 정의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들의 말들을 가만히 연결해보면 결국 영화란 우리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는 작업이라는 점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오해마시길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일상생활은 하루하루 살림 살이의 기본적인 시공간 요소인 ‘지금’과 ‘여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어느 보험회사는 ‘일상에서 일생까지’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발음의 유사성을 활용한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보험회사에 서 면밀히 작성하는 생명표는 단순한 생물학적 나이 듦을 분석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한 개인이나 가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과 사태, 그리고 일생에 걸쳐 일어날 개인 및 가족사의 개연성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Everyday Life)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과거)과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미래와 대안)까지를 포괄하는 관계적 개념이 될 것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와 맥락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지언정 이러한 것들이 예외 없이 포진되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록 기술적 완성도니 미학적 평가니 하는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점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는 최초의 영화들을 상영한다(10편 정도). 그들이 공개적으로 유료상영한 영화들은 세계 최초라는 수식이 붙는 여러 장르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최초의 코미디나 최초의 다큐, 최초의 드라마 등이 모두 함께 발표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일상성의 관계성 (즉 과거-지금과 여기-미래의 대안)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은 <열차의 도착>과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열차의 도착>을 살펴보자. 이 영화의 제목은 여러 형태로 소개되었다. 예컨대 <우편 열차의 도착>이니 <견인되는 기차> 등으로. 그러나 약 50초 정도 되는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라 시오타역에 도착하는 기차>이다. 그리고 1895년에 최초로 상영된 영화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1896년 1월경에 상영되었다는 설도 있다(촬영은 1895년). ‘라 시오타(La Ciotat)’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남동쪽에 위치한 조그만 항구 마을이다.
이곳은 뤼미에르 형제의 여름별장이 있던 곳이었고, 이곳에서 그들의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이 무성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관객들이 크게 놀라 바깥으로 뛰쳐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작 자신은 더 공포스런 이미지를 천역덕스럽게 이어갔던 <짐승의 피Le Sang Des Betes>(1949)를 연출한 조르주 프랑주는, 이 영화를 두고 ‘공포스런 이미지’라고 말한 바도 있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최초의 영화들이 준 충격은 관객들이 생전 처음 보는 움직임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의 이면에는 뤼미에르 형제들이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영화 한 편과 관련된 여러 일상들이 모두 모이게 되는 효과를 보여준다.

뤼미에르 형제
예컨대 뤼미에르 형제가 이 영화를 촬영할 그때, 여기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라 시오타 조선소에서 길이 148미터의 여객 선이 진수된다. 이 조선소는 영화에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영화의 이해를 위한 훌륭한 배경이 되기도 하고, 우리들이 최초라는 수식어에만 함몰되지 않고 영화를 더욱 관계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왜 하필이면 조그만 항구인 라 시오타역의 기차를 찍었을까? 이 기차는 어떤 기차였을까? 당시 기차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라 시오타는 어떤 곳일까? 뤼미에르 형제들이 그려낸 당시의 라 시오타는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고, 이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진행될까? 등의 질문들을 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면 너무 사소한 것에 몰두하는 것이 될까? 사소함은 소심함이 아니다. 주변의 모든 관계가 모두 나를 둘러싼 세계와 관계되기 때문에 당연히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뤼미에르 형제들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평론이나 찬사에 대해 우리 자신의 생각들이 개진되었던 적이 있는가? 최초라는 수식어에만 현혹되었던 적은 없는가? 이들 형제의 <라 시오타역에 도착하는 기차>를 보며 다시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 조선소는 뤼미에르 형제들의 첫 영화보다 약 30년 이전에 세워진 사업장이다(1836년). 이미 프랑스 발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한 번 보길 바란다. 무성영화라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가? 아니면 처음의 동영상이라서 그저 놀랬을 뿐이었을까?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첫걸음이 프랑스에서 이미 상당 정도 진전되고 있던 때였다. 1908년 처음 노동 조합을 건설한 라 시오타 조선소 노동자들 은 1980년대 초 조선산업 축소를 결정한 정책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사업장과 소재는 다르지만 이 시기 노동운동에 대한 총노동(특히 프랑스 노동총연맹인 CGT)과 총자본의 부정적인 모습은 장 뤽 고다르 등의 <만사형통Tout Va Bien>(1972)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싸움은 시공간적으로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 국가와 자본이 저지른 지역과 살림의 황폐화를 라 시오타 노동조합은, 요즘 유행하는 도심재생사업으로 다시 활성화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과정은 웹 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다. 즉 다시 처음의 이야기 또는 질문으 로 돌아가 보자. 영화란 무엇인가? 일상 생활의 소재를 담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 의 시선과 카메라의 앵글은 이 모두를 담을 수 없다. 교만한 감독은 자신이 담을 수 없었던 텍스트를 관객의 무지로 돌릴 터이고, 겸손한 감독은 자신의 부족을 관객의 콘텍스트로부터 배울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는 죄가 없다. 이후의 관객들도 조르 주 프랑주처럼만 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뤼미에르 형제는 자본가였지만 다행히(?) 큰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평론가보다 관객들의 입소문을 믿었던 것 같다. 즉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처럼 대중은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고, 군중처럼 익명성에 묻힐 수도 있고···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국가와 자본에 대해 시네필과 함께 문제제기를 부단히 하고 있기에··· 미학적 평가와 기술적 능란함과는 별개로 <암살>(2015)과 <베테랑>(2015)이 갖는 묵직한 힘처럼··· 영화 한편 속에 담긴 사회학적 상상력은 개인과 구조, 그리고 이러한 역사들을 엮어서 사고하고 미래의 대안을 모색케 하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