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 제작기

영화 <부산행> 제작기

한 여름, 그늘 한 점 없는 차량기지에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뜨겁게 달궈진 선로와 자갈 위로 흐르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땀과 열정이 아른거린다.

영화 <부산행>은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누군가가 부산으로 가는 KTX에 올라탄다면, 그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우연한 질문이었지만 그 질문의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1영화 <부산행>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제작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과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KTX 열차 내부의 구현 방법이었고, 두 번째는 로케이션이었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의 긴밀한 협조 없이는 성사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기에 시나리오 기획 및 개발 단계에서부터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한 결과, 시나리오의 내용을 실제 철도 시설물을 활용하여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KTX 열차 내부의 경우, 촬영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영화장르의 특성상 액션과 특수 분장으로 인한 손상이 예상되었기에 실제 KTX를 섭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실내 세트 제작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세트 제작에 소요되는 기간 및 비용, 대형 실내 세트가 부재한 국내의 여건상, 전체 객차 세트를 제작할 수는 없었다. 현실감 있는 장면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량 이상의 KTX 객차 내부가 필요했는데, 실제 객차의 길이가 약 18.7m에 달했기 때문에 2량 이상의 객차 및 연결부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45~50m 내외의 길이를 가진 실내 세트장이 필요했다. 국내 실내 세트장 중, 직사각형의 형태이면서 가장 긴 가로 너비를 가진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의 확보가 무엇보다 최우선 순위에 있었던 이유였다. 부산으로 결정된 후에도 세트 제작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였으므로, 크랭크인 예상 시점보다 약 두 달 정도 앞선 시점부터 세트 제작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일부 미술팀과 세트팀은 영화촬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부산으로 내려가 작업을 하였다. 서울과 부산 양쪽에서 동시에 준비를 진행하느라 사실 부산에 머무는 팀들이 여러 모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부산영상위원회 관계자분들의 배려 및 도움이 있어 원활한 진행이 이뤄질 수 있었다.

2KTX 열차 내부의 제작은 시간과의 싸움이 되었지만, 외부 로케이션의 경우 여전히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처음 시나리오의 감수를 요청했을 때 전문가가 가장 우려한 부분은 바로 안전 문제였다. KTX 열차열차 위의 펜타그래프라는 전력 공급 장치를 이용하여 약 25,000V의 전력을 공급받아 운행된다. 그 말은 곧 KTX 열차가 운행하는 곳에서는 고압전류에 의한 감전 위험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편리한 교통 시스템 덕분에 첫차와 막차 간의 운행 간격이 매우 짧아 안전 점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24시간 내내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었고, 촬영을 위해 특정 부위에만 전류를 차단시키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영화 <부산행>을 하면서 편리하게만 느껴졌던 한국의 열차 운행 시스템이 처음으로 원망스럽게 느껴졌던 순간이고, 동시에 철도 종사자 분들의 고된 노고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덕분에 서울역 촬영의 경우, 다른 장소였다면 반회차면 촬영이 끝났을 장면을 열차 운행이 종료된 시간만을 이용하여 2회차에 걸쳐 촬영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3로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의 하나는 대전역이었다. KTX 열차가 정차하는 플랫폼과 대전역을 연결하는 계단과 구름다리, 외부 광장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등, 실제 대전역의 구조에서 착안한 시나리오의 내용을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는 물론 대전역이었겠지만, 촬영 여건과 안전을 고려했을 때 대전역을 대체할 장소가 필요했다. 영화 <부산행>을 준비하는 동안 제작팀은 전국에 있는 KTX 정차역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일반 열차의 역사들도 모두 헌팅을 했는데 대전역의 구조 및 규모를 대체할 정도의 역사를 찾을 수 없었고, 제작진은 고민 끝에 행신역, 삽교역, 청주역, 동대구역, 부전역의 다섯 군데의 역에서 대전역 분량을 나누어 촬영을 진행하였다.

하나의 장소를 다섯 군데로 나눠 찍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 장소들 모두가 하루 이용객이 적지 않은 역사들이었기에 섭외부터 촬영까지 악전고투가 이어졌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라고 했던가, 아직 우리에게는 대망의 장소가 남아있었다. 시나리오 상에서는 동대구역 선로와 차량 기지로 표현된 장소로 선로 위에는 KTX 열차와 무궁화호 열차, 새마을호 열차, 화물 열차가 뒤엉켜 있어야 했고, 그 열차들 사이를 배우들이 종횡무진하며 사투를 벌여야 하는 장면이었다. 대전역과 마찬가지로 실제 동대구역을 배경으로 했기에 동대구역만한 장소는 없었지만, 펜타그래프가 빼곡히 세워져 있는 동대구역에서 촬영을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고, 대전역처럼 장소를 나눠서 촬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장소가 있어도 열차들의 운행 스케줄을 빼서 촬영을 위해 매번 다른 장소에 세워놓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4고심 끝에 안전과 촬영 여건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촬영 장소로 결정한 곳은 부산에 있는 철도차량기지였다. 우선, 펜타그래프가 없었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가 적었고 (고압전류 외에도 철도 시설물에서의 촬영에는 많은 위험이 있었다), 펜타그래프가 없어서 KTX의 운행은 불가능했지만 부산 세트와 가까웠기 때문에 제작해놓은 KTX 실내 세트를 이동시켜 촬영에 활용할 수 있었으며, 다른 차량기지들에 비해 열차들의 통과나 운행이 적어 그나마 촬영 스케줄에 대한 협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시나리오 속의 설정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우리는 관객들에게 애초에 우리가 던졌던 단순한 질문의 답을 보여줄 준비가 되었다. 물론 이렇게 힘든 준비 과정을 거쳤음에도 촬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잇따랐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모든 일정을 맞춰놓는다 해도 전국 곳곳을 운행하는 열차의 스케줄을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무리였고, 승객들의 이용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시설물을 100% 통제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기에 한 장소의 촬영을 끝낼 때마다 값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5한 여름, 그늘 한 점 없는 차량기지에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뜨겁게 달궈진 선로와 자갈 위로 흐르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땀과 열정이 아른거린다. 처음 KTX 열차 세트를 보고 방금 내가 타고 온 KTX 열차에 다시 탄 것 같은 착각에 어리둥절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감히 말하건대 누구도 보지 못했고, 상상할 수 없었던 영화 <부산행>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 덕분이다. 또한 영화 <부산행>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열차다. 오직 영화촬영만을 위해 각종 열차철도 시설물을 섭외해야 했는데, 이는 코레일 관계자분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긴 촬영 시간 동안 오히려 고생하는 스태프들을 걱정해주셨던 기관사 분들과 스태프들이 들어야 할 승객 분들의 각종 불평, 불만을 대신 들어주시며 우리를 격려해주셨던 역사 직원 분들이 계셨기에 영화 <부산행>도 존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트 제작 기간부터 부산철도차량기지의 촬영이 종료되기까지 거의 반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부산에 머물렀는데 영화 업무를 비롯하여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따뜻한 배려를 해주셨던 부산영상위원회 관계자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영화부산

 

 


민정은 영화 <부산행>의 제작실장.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평소 동경하던 영화를 하고자 다소 늦은 나이에 한국-프랑스합작영화 <여행자>(2009)로 영화계에 입문. <오직 그대만>(2011), <아부의 왕>(2012), <군도: 민란의 시대>(2014) 등의 작품을 거쳐 현재는 <부산행>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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