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촬영클로즈업, 영화 [소시민] 제작기 – 김병준 영화 [소시민] 감독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여, 부산으로 오라!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소시민>, 그 소심한 출발
2013년 9월, 동서대학교에서 전액 지원받아 제작했던 내 첫 연출작 <개똥이>(2012)가 전국 개봉했던 달. 운이 좋아 나름 성공적인(?) 장편 데뷔를 했던 나로서는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첫 작품에 대한 큰 아쉬움 덕분인지, 내 주변에서는 차기작이 어떤 내용인지 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럴 때 마다 <개똥이> 전부터 구상했던 <양산>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웃으면서 이야기 했지만, 장편 제작과정을 한번 겪어보니 배우의 개런티는 어느 정도가 될지, 나아가서 이 작품의 전체 제작비가 어느 정도가 될지 대충이나마 가늠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양산>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양산>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규모가 큰 영화였다. 세상에 어느 누가, 나에게 투자를 할 것인가. 영화를 계속하고자 함에 있어 <개똥이>의 결과는 초라했다. 하루하루 푸념만 늘어갔다.
<소시민>이 떠오르던 날도 함께 영화사를 운영하던 오원재 PD와 까페 테라스에 앉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신세 한탄이나 하던 날이었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퇴근길을 걷는 수많은 넥타이부대를 바라보다, 저 무리들을 헤치며 뛰는 한 남자가 떠올랐다.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같았다. 그 이미지를 오 PD에게 전했고, 이런저런 살들이 붙어 짧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연말까지,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메모하며 <소시민>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구상했다.

문제는 역시나 제작비였다. 저예산타이즈로 생각하고 있다고는 하나, 만만치 않은 제작비가 들 것은 분명했다. 영화사 자체 회의를 시작했다. 답은 하나 뿐이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을 받는 것. 때마침 좋은 기회로 부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최용석 감독과 장희철 감독을 술자리에서 만났다. 장희철 감독은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을 두 번째 지원받아 <눈이라도 내렸으면>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여러 가지 조언을 받았다.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듬해 3월, 드디어 모집공고가 홈페이지에 떴다. 1차 서류심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2차 프레젠테이션이 남아있었다. 내가 직접 쓴 시나리오로 누군가 앞에서 발표를 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긴장이 됐다. 내 입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른 채, 덜덜 떨어가며 발표를 마쳤다. 심사위원으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고, 그에 맞는 대답을 했지만, 면접장을 나오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새었다. 내가 뭘 들었는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지금도 잘 나지 않는다. 영화사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식구들끼리 낙담을 하며, 다른 좋은 기회를 찾아보자 했다. 소심한 나는 기대가 되질 않았다. 그렇게 떨어댔으니,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몇 주 뒤, 영상위에서 연락이 왔다. 제작비 지원 결정! 야호!

<소시민>, 소심하게 준비 시작!
시나리오를 쓰면서, 해운대구 일대와 수영구 일대를 배경으로 발전 을 시켰고, 몇몇 장소들은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팔도시장이나 수영동 골목들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자료로 활용했기 때문에 헌팅 에 대한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저예산영화 치고는 촬영할 장소가 많았다. 그중엔 경찰서 내부, 유치장, 지구대, 대형병원 로비 같은 관공서나 공공장소의 촬영이 많았기에, 부산영상위원회의 도움이 절실했다. 영상위를 통해 해운대경찰서, 금정경찰서에 촬영협조를 받았다. 업무가 바쁨에도 불구하고 촬영스케줄을 위해 많은 부분들을 양보해주어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동서대학교, 경남정보대학교, 경성대학교 등 다양한 학교의 다양한 전공의 재학생, 졸업생, 휴학생들이 소시민의 스탭이 되어주었다. 부 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아카데미에서 인연을 맺은 황우현 촬영감 독과 김치성 조명감독이 힘을 보태주었다. 동서대, 영화의전당, 영상위에서 장비를 지원해주었다. 살림살이는 이제 거의 다 갖춘 느낌 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 바로 <소시민>의 실질적인 얼굴들. 출연배우 섭외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인지도와 연기력을 겸비한 유명배우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 을 것이다. 하지만 <소시민>은 저예산영화다. 그리고 나는 무명감독 이다. 유명배우가 아니라, 그 어떤 배우라도 미래가 불투명한 영화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열정으로 밀어붙이자. 방법이 달리 없다. 그때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배우 한성천이었다. 물론 유명 배우는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영화에서 선굵은 연기를 선보였던 인 상적인 배우였다. 시나리오 한 권을 손에 들고, 그를 만나기 위해 무 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소속사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시나리 오를 내밀었다. 반응이 매우 안 좋았다. 하지만 자신 있는 모습을 충 분히 보여주고 나왔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중에 연락이 왔다. 어이없 지만 이렇게 주연배우 확정(?)!

남자주인공은 후보 없이 한성천 배우가 확정이 됐지만 극중 남주인 공의 여동생 역할인 여주인공이 문제였다. 수십 명의 후보가 있었고, 수많은 배우들의 프로필을 받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로 진행이 되 질 않았다. 조연배우들이 속속들이 섭외가 완료되어 자리를 잡아갈 즈음부터 슬슬 불안해졌다. 연출팀과 제작팀이 밤늦게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사나리오를 전폭 수정하느냐, 아니면 촬영 일정이 뒤로 밀 리느냐 같은 일어나서는 결코 안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고민이 계속 될 무렵,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우연히 시나리 오를 보고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에 어렵사리 전화를 걸게 되었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배우 황보라 였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미팅을 진행했고, 배우의 진심어린 마음에 감동한 나는 그녀에게 여주인공 역할을 부탁했다. 이로써 캐스팅이 끝났다.

11월, 매서운 겨울의 입구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주로 야간촬영이 많 았던 터라, 낮에 자고 밤새 촬영하는 날이 많았다. 배우와 스탭들의 고생과 피로가 눈에 띄게 쌓여갔다. 다행히도, 지구대와 경찰서 촬 영을 진행하면서 경찰분들의 도움이 컸다. 교통통제는 물론이고 촬 영차량 주차구역 확보까지 큰 어려움 없이 촬영을 진행해 나갈 수 있 었다. 날씨도 좋아서 큰 지체 없이 20회차의 촬영을 무사히 끝냈다

<소시민>, 처음은 소심했지만 끝은 대심(?)하리라
<소시민>은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지원받은 제작비 외에 대부분이 장비현물지원이라 후반작업비를 고려할 수가 없었다. 지원받은 제작비 모두를 프로덕션에 쏟아 붓고 나니 후반작업을 할 여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독립영화후반작업지원을 받거나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시네마펀드를 받는 방법 뿐 이었다. 당장 제일 가까운 것은 영진위였다. 일단 가편집본이 필요했 다. <개똥이>와 <못>(2013)을 편집했던 편집기사님이 도움을 주셔서 서울에서 두 달에 걸쳐 영상편집을 진행했다. 올해 2월에 2/4분기 후 반작업지원 공지가 영진위 홈페이지에 게시되었고, 기한에 맞춰 가 편집본을 출품했다. 그리고 한 달 여의 기다림. 개인적으로는 정말 피말리는 시간이었다. 만약 지원에서 탈락한다면, <소시민>의 완성은 기약이 없어진다. 믿음도 없는 신에게 매일매일 기도를 드렸다. 결 과가 나왔고, 기적처럼 후반작업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비록 믹싱은 탈락했지만, 그래도 완성에 대한 희망이 생겨서 너무나도 기뻤다.

이제 <소시민>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믹싱과 음악이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생각난 것이 소셜펀딩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심정으로 인터넷 모 소셜펀딩 사이트를 통해 후반 작 업비 천만 원을 목표로 한 달 동안 홍보를 진행했다. 주변에 수많은 분들, 배우의 팬분들을 비롯해서 내 영화를 지지해주는 수많은 분들 이 펀딩 사이트를 통해 <소시민>을 후원해주었다. 처음에는 설마 했 다. 만 원씩, 이만 원씩 모이는 후원금을 보면서 너무나도 감사하다 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성공은 힘들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 다. 후원 마감 3일을 앞두고, 기적처럼 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모였다. 눈물이 났다. 그 동안 작은 영화, 지역영화라는 설움이 없지 않아 있 었다. 내 마음 속에 있었던 그런 흉터들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기 분이 들었다. 후원해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서라도 끝까 지 힘내서 <소시민>을 완성하자는 마음 뿐이었다. 천만 원이라는 후원금으로 믹싱과 음악, 그리고 편집실 작업비를 지불했다.

<소시민>은 2015년 7월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감사하게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정식으로 초청받았다. <개똥이>에 이어 또 한 번 초청받게 된 것이다. 개인적 으로는 직접 연출한 장편영화 두 편이 모두 부산영화제에 진출했다 는 것, 그리고 20회라는 크나큰 자리에 초대받았다는 것에 큰 의미 가 있다. <소시민>이 완성되기까지 그동안 고생했던 스탭들, 배우들, 영화사 식구들, 소셜펀딩 후원자분들, 부산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 원회에 너무나도 감사드리고 싶다. <소시민>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 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부산에서 영화하 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여, 부산으 로 오라!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bfc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 초청 |

<소시민>(2015) 감독 김병준/117min /DCP /Color
평범한 회사원 구재필은 요즘 스트레스 폭발 직전이다.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고 직장 상사는 불합리한 명령을 내린다.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상사의 부당한 요구를 수용하지만 불의의 사고가 발목을잡는다. 구재필은 살인혐의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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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부문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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