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SPECIAL – 영화를 향한 이유있는 열망

Reportage 동남아 4개국 영화산업의 현장을 가다

부산영상위원회 오석근 운영위원장이 8월 14일부터 21일까지 6박 7일 일정으로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4개국을 방문했다.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이하, AFCNet)의 의장기구 자격으로 아직 AFCNet에 가입하지 않은 아세안 4개국(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브루나이)의 가입을 요청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하, 아세안)을 방문해 잠깐 중단됐던 아세안과의 영화교류사업을 재개하기 위해서다. 오석근 운영위원장은 “촬영 인·허가, 세금 환급, 인센티브 제공 등 원활한 해외공동제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오석근 운영위원장의 출장길을 동행하면서 지켜본 이번 출장에 대한 성과와 우리에게 아직 미지의 영역인 동남아시아 영화산업 소개이다.

“단계적으로 외국 기업에 세금 빗장 풀기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의 마지막 날인 8월 16일 오전, 호텔 방에 배달된 일간지 <자카르타 타임즈>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외국계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금 장벽을 낮추겠다는 요지의 인도네시아 경제국의 발표였다. 지난 7월 막을 내린 제44회 아세안 회의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인도네시아 정부는 개방에 적극적이었다. 마침 8월 1일부터 돌입한 이슬람의 성월 ‘라마단’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기도해서 인도네시아는 제법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출장 첫 날이었던 8월 15일에는 오석근 운영위원장과 아세안 문화정보위원회 로레인 알리 사회문화담당 부위원장의 미팅이 있었다. 잠시 중단됐던 아세안과의 영화교류사업을 속개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첫 일정부터 큰 과제였다. 이 사업은 10개의 아세안 국가 중 필름커미션이 없는 베트남, 라오스, 브루나이, 미얀마 등 4개국에 필름커미션을 설립하고, 아시아 각국의 영화 정책을 논의할 수 있는 포럼이나 세미나를 개최하고 영화제작을 목적으로 아세안 국가의 신화나 전설을 책으로 발행하는 일 등이다. AFCNet은 지난 5월 한국 외교통상부로부터 이 사업을 승인받아 한·아세안협력기금 1만 달러를 지원받게 됐다. 그러나 사업 진행은 부산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아세안 10개 국가의 동의를 아직 받지 못해 사업 진행이 잠깐 멈춘 것이다. 미팅의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세안은 AFCNet의 영화교류사업을 공식 상정·논의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영화국

로레인 알리 부위원장은 “아세안이 최근 문화, 영화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고, 오석근 운영위원장은 “아세안과 함께 함으로서 민간기구였던 AFCNet이 공식 기구로 인정받았고, 아시아 각국의 영화산업 담당자들과 함께 실무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 이번 미팅의 의미”라고 자평했다.

자카르타 관광은 커녕 오후도 미팅의 연속이었다. 여기저기서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와 자카르타의 교통 정체를 겨우 뚫고 간 곳은 인도네시아 문화관광부 산하의 영화국. 건물 외양만 보면 싸이더스의 충무로 시절 건물(현재 동국대 영상산업센터)을 세로로 세운 모습과 닮았다. 왠지 모를 반가운 마음을 뒤로 하니 아직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인 인도네시아 영화산업만 남았다.
인도네시아 영화라고 하면 <풍운아 기에>(2005) <영원으로가는 사흘>(2007) 등의 리리 리자, <나무 아래서>(2008) <블루 제너레이션>(2009) 등의 가린 누그로호 등 부산과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몇몇 감독만을 알고 있는 게 아니던가.

인도네시아 영화국 씨암술 루싸 국장
(왼쪽은 오석근 운영위원장)

잠깐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인도네시아는 1990년에 115편이 만들어진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매년 평균 30~40여편의 자국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그나마2008년의 87편, 2009년의 78편, 2010년의 77편 등 최근에는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스크린수는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선 멀티플렉스 체인점 ‘씨네플렉스21그룹’의 400여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총 1,000여개에 이른다. 극장 수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할리우드, 중국, 홍콩 등 외화를 수입하는 제작· 배급사가 주로 살아 남았고, 인도네시아 자국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는 상당수 도산했다고. 물론 자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영화 60%, 외화 40%의 비율로 상영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긴 하나 정부가 일일이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억 3,000만명이 넘는 인구수를 감안하면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파이는 점점 커지고 있는 반면 정부의 정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시암술 루싸 영화국장은 “지역적인 성격이 강한 발리필름센터가 있긴 하나 정부차원 에서 영화산업과 관련한 정책을 다루는 필름커미션은 아직 없다”면서 “현재 국가 차원의 필름커미션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산업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 다”고 말했다.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맞은 건 폭우였다. 한국에서 이미 겪을대로 겪은 까닭에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익숙하기도, 또 지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디지털 상영 및 배급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인가?” 이곳에서 태국 영화제작사 ‘파이브 스타’의 에이미 부사장은 현재 태국 영화산업의 핫이슈로 “극장 상영 환경의 디지털로의 전환”을 꼽으면서 디지털 배급 및 상영과 관련한 여러가지를 물었다. 1973년에 설립한 파이브스타는 위싯 사사나티엥 감독의 <시티즌 독>(2006), 콘케이 코메시리 감독의 <무에타이 차이야>(2007) 등 약 40년 동안 250여편의 영화를 만든 태국 대표 영화제작사. 에이미 부사장의 말에 따르면, 태국 전역에 있는 극장은 디지털 영사기로의 교체를, 제작·배급사는 보유 중인 영화의 필름프린트를 디지털로의 변환을 준비하고 있다. 에이미 부사장은 “현재 태국의 영화인들은 모이기만하면 디지털로의 전환을 얘기한다. 극장에서 디지털 상영을 할 경우, 제작사와 극장은 어떤 식으로 비용을 분담해야 하며, 전국의 극장은 어떤 순서대로 얼마 안에 디지털 상영 시설을 확충할 것인지 등 여러가지를 논의한다”면서 “당장 들어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지만 장기적으로 필름에 비해 비용이 훨씬 저렴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태국 역시 3D 영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에이미 부사장은 말한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태국 관객은 3D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3D 영화의 수익이 적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다르더라. <트랜스포머3><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부> 등 여름 블록버스터들이 3D로 개봉하면서 많은 태국 관객들이 3D 영화의 매력에 빠졌다.” 어쩌면 파이브스타가 현재 태국 최초로 3D 카메라로 촬영하는 3D 호러무비 <다크 플라이트 3D>(감독 이사라 나디)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시장에서 3D의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인지도. 디지털 상영이든 3D든 전세계 영화인과 마찬가지로 태국 영화인들 역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변화 한가운데에 놓여있었다. 그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최근 태국영화의 분위기는 좋다. 연간 적게는 20여 편, 많게는 30여 편이 만들어지던 3~4년 전과 달리 2009년에는 50여 편이 제작됐다. ‘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다시 돌아왔다’고 불릴 정도다. 물론 얼마 전에도 전성기라 부르던 시절이 있긴 했다. <옹박>의 흥행 성공으로 할리우드를 비롯해 외국 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왔던 2003년 때였다. 태국의 영화제작사 ‘GTH(Gmm Tai Hub)’의 용윳 통콩툰 대표는 “넘치는 돈으로 너도나도 영화산업에 뛰어들던 시절”이라면서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다보니 영화의 완성도는 자연스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관객은 태국영화에 등을 돌리게 됐고, 제작편수는 다시 급감했다. 그러나 지금 태국영화의 호황은 2003년의 그것과는 다르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2009년 태국영화 제작편수 증가에 대해 “외국자본이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태국 자본만으로 이뤄낸 성과”라면서 “현재 태국영화는 새로운 환경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에이미 부사장한테 물었다. “태국 전역 5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약 13억 바트(한화로 약 48억원)를 벌어들인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서울 올로케이션 로맨틱코미디 <헬로우 스트레인저>가 태국 영화의 호황에 불을 지핀 게 아니냐.” 돌아온 대답은 자신만만했다. “아니다. 오래 전부터 태국 영화는 호러 무비뿐만 아니라 코미디나 로맨틱코미디를 꾸준히 만들어왔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태국 필름오피스
와나시리 모라쿨 위원장

개발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메콩강처럼 라오스의 영화국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다. 아니, 정확하게 설명하면 라오스 영화국이 3년 만에 부활했다. 라오스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1956년 문화정보부 내 영화국을 만들면서 영화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도 잠깐 뿐. 1975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라오스 정부는 영화산업에 신경쓰기는커녕 1988년 영화국을 없앴던 것이다. 오랜만에 부활한만큼 영화산업 기반은 미미한 수준이다. 라오스 자국 영화는 1년에 1~2편 정도 제작되고 있고 상영관은 고작 6개 뿐이다. 틀 영화가 없어 1년 내내 상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TV와 비디오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1990년부터 2005년까지는 아예 극장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영화를 보기 위해 메콩강을 건너 태국으로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영화산업을 부흥시키려는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 않았다. 영화국 봉차오 피시트 국장은 자신의 사무실 옆에 있는 필름아카이브를 공개했다. 약 3,000편의 영화의 프린트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또, 옆건물에 있는 편집실, 장비실, 더빙 스튜디오로 안내했다. 오래전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라오스 영화인들은 진지하게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봉차오 피시트 국장은 “라오스 영화산업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무조건 지원을 받아서 발전시키는 수 밖에 없다.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오석근 운영위원장의 AFCNet 가입 권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태국 방콕 시내

순수한 자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메콩강을 보면서 한창 개발 중인 인도네시아태국이 떠올랐다. 태국처럼 영화산업의 호황기를 맞아 새로운 환경에 직면한 국가도 있었고, 라오스처럼 아직 산업의 형태는 갖춰지지 않았지만 산업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국가도 있었다. 이번 출장길에 포함되진 않지만 필리핀처럼 브리얀테멘도자 등 작가 감독을 중심으로 자국 영화가 서서히 선전하는 국가도 있고, 젊은 영화인들 중심으로 검열 제도와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도 있다. 같은 동남아시아 지역이라도 국가와 도시마다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가 영화산업 구축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것. 이들 모두가 참여하는 2011 아시안영상정책포럼을 지켜봐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베트남 영화국 라이 반 신 국장.
베트남 영화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최근 2015년까지의 재임이 확정되면서 라이 반 신 국장 주도의 정책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는 베트남 영화산업
베트남의 영화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최근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진흥 정책수립과 민간 자본 등의 영입으로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롯데시네마는 몇 년 전부터 베트남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CGV 역시 올 7월 베트남 최대의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메가스타’를 인수하면서 베트남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메가스타는 베트남 주요 7개 지역에 54개의 스크린을 가진 베트남 최대의 상영, 배급 회사로 주로 할리우드 영화의 배급(베트남 내 점유율 70%대)을 담당하던 곳이다. 베트남 영화는 1953년 호치민 주석의 책령 147호가 공표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항불, 항미 전쟁 기간 동안 정부 주도로 혁명정신을 고취하는 혁명영화 제작이 이어졌다. 1975년 통일 이후 베트남 영화산업은 호황을 누린다. 영화사 설립이 허용되면서 상당수의 영화사가 설립되었고,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이 제작되면서 대략 220여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또한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면서 베트남 영화의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1986년 ‘Doi Moi’ 정책시행 이후, 정부의 영화산업 독점이 폐지 또는 완화되고 비디오 영화의 제작이 늘어나면서 베트남 영화 산업은 침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1996년부터 국가의 영화제작비 지원이 재개되었지만 완성도 높은 수입영화의 거센 공세 속에서 베트남 영화산업은 침체 상황이 지속한다. 침체된 베트남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베트남 영화국(Vietnam Cinema Department)’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정책의 변화가 시작된다. 2007 년 국회에서 2020년 영화제작 편수 100편 달성과 현대적인 영화종합촬영소 건립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령이 통과되면 서 영화산업 부흥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이후 2010년 7월에는 스크린 쿼터 제도가 시행되었고, 영화국 주도의 ‘영화산업 중장기 진흥정책’ 이 수립되면서 베트남 영화산업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시점이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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