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특구 해운대 편

오랫동안 바라본 광안대로의 불빛은 오늘따라 침착하고, 고요하며 은밀했다.

부산은 여전히 활기차고 풍요로운 얼굴로 그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해운대의 야경을 접해 본 이들이라면, 이 곳 어딘가에서 꼭 한번 사랑하는 이에게 가슴 뭉클한 고백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바다와 강이 맞닿는 그 곳, 수영강을 따라 새롭게 조성된 올림픽공원에는 얼마 전, 부산국제비엔날레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밤이 도면, 강물 위로 우뚝 솟은 물기둥이 달빛을 받아 흔들리는데 다잡지 않은 마음을 빼앗기기란 일순간이다.

영상특구 해운대

4월이면 황무지에 가고 싶고, 5월이면 신부가 되고 싶어진다. 7월이면 조지윈스턴의 ‘여름’을 들으면서 파란 줄 장미가 끝없이 피어있는 아우토반을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드라이브 하는 것이 나의 로망이다. 그리고9월 어느 날. 지금 내가 언덕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아직 가 보지 못한 지중해의 푸른 물빛을 닮아있고, 수평선에 맞닿은 흰 구름은 꿈처럼 현기증을 몰고 왔다. 바람을 동반한 9월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순간 문득 ’까뮈의 태양’이 떠올랐다. 달맞이 언덕으로 날아든 바람과 햇살이 잠시 쉬었다 가는 중 이었다.

올 해는 정말 중남미로 여행을 가고 싶었었다.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꽤 오래 품고 사는 것 같아 속이 상하지만, 책으로의 여행이 아니라면, 일탈의 기본동작인 ‘떠남’만이 내가 아는 나를 제대로 위로해 준다. 여름휴가 한 달 전부터 여행지 관련사이트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려 보았지만 여행경비가 만만찮아 망설이고 일정이 빠듯해 망설이고 내 현실을 잠시 맡겨 둘 마땅한 누군가가 없어 또 망설이고… 하다보니 갈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분명해져 결국은 ‘못 감’의 정당성에 또 손을 들고 말았다. 소심함과 억울함의 혼돈에서 감정이 거의 수습될 무렵엔 읽고 또 읽은 /카리브해의 흑진주’가 내 손에서 다 닳아 있었다.

부산을 찾는 영화인들은 하나같이 진심으로 해운대를 사랑하려 든다.

부산은 한두 번쯤은 누구나 와 보았을 테지만, 이들에게 해운대는 이제 아주 특별한 특별시가 되었다. 세계적인 영화도시 ‘칸’의 명성과 낭만이 이 곳,해운대에도 걸맞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관광 영상특구,후반작업기지,물의 도시, APEC을 유치한 BEXCO-국제컨벤션센터, 바다와 초고층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국내 유일의 교량 광안대로(국내에서 가장 길다),올림픽공원야외영화관국제요트 경기장,해안가를 병풍처럼 드리운 특급호텔들,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유명 백화점, 이 모든 것이 한자리에 제각각 질서 있게 자리 잡고 있으니 ‘영화촬영하기 좋은 부산’으로 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거 같다.

2006년. 40여 편의 영화와 30편의 기타영상물들이 ‘천의 얼굴’ 부산을 담아 갔다. 하지만 부산은 여전히 활기차고 풍요로운 얼굴로 그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해운대의 야경을 접해 본 이들이라면,이 곳 어딘가에서 꼭 한번 사랑하는 이에게 가슴 뭉클한 고백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바다와 강이 맞닿는 그 곳, 수영강을 따라 새롭게 조성된 올림픽공원에는 얼마 전,부산국제비엔날레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밤이 되면, 강물 위로 우뚝 솟은 물기둥이 달빛을 받아 흔들리는데 다 잡지 않은 마음을 빼앗기기란 일순간이다. 센텀파크(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빌딩으로 51 층 건물이다)는 초고층 건물로 부산의 타워펠리스다. 어둠이 드리우면 찬란한 조명이 고층빌딩의 전신을 휘감는데,달빛이 강으로 투사 되어 만든 한 폭의 그림 같은 물기둥을 수영강교 다리위에서 볼 수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나이를 잊게 된다. 또한 국내최대 교량인 광안대로는 복층 해상 교량으로 상단과 하단,각기 일방통행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길이 7,420m 왕복 8차로로 너비는 18~25m이며 마치 용의 꼬리처럼 수영강교로 굽이친 끝자락이 고층아파트 사이를 스치며 곧게 뻗어 있다.

가운데 중앙 900m는 현수교이며 와이어의 곡선이 더없이 아름다운 상단은 마치 천상의 악기인 하프의 현(結)같아서 수학적 수치와 과학적인 힘에 의해 계산된 부산물이라고 보기엔 그윽함이 짙다. 현의 울림이 있듯, 차량과 차량들 사이를 가르는 공기를 뒤로하고 한가로운 풍경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노라면 더없이 많은 상념을 즐기게 된다. 수많은 MV/, C/M들이 이 곳에서 제작되었고 특히나 비쥬얼과 스케일에 주력하는 영화라면 이 곳을 그냥 지나 쳤을리 만무하다 덕분에,우리 로케이션담당자들은 이 곳을 섭외하고 도로통제를 하느라 더없이 분주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광안대로의 상단이 여성이라면,하단을 남성으로 분류하고 싶다. 상단이 천상의 악기 하프를 닮았다면,철교가 있는 하단의 웅장함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완성시키는 티파니를 닮았다. 또한 교각 사이사이로 스치는 해운대의 망망대해는 많은 것을 품고 있으나,쉽게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깨달음 마저 들게 한다.

곳곳에 카메라가 걸려 있기는 하지만,우리는 맞바람을 쏘이기에 적당한 빠르기로 이 곳을 지나다니는데, 상쾌함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꼭 영화촬영이 아니어도 우리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형형색색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꿈꾸게 되었으니… 저기 보이는 저 긴 다리,바다 위를 달리는 차량들의 행렬은 그저 하나의 풍광처럼,떠있는 그림이 되었다. 이렇듯 계절마다, 순간마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해운대의 풍광들은 부산에서도 가장 국제적인 이미지에 부합된 면모와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영화 아니, 법과 제도,관습의 반대편엔 예술이 있다. 수많은 씨네필들이 영화를 닮아가고,영화를 거부하며,또 영화를 동경한다. 일탈과 해체,굴절로 인해 투시되는 진실의 창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두서없이 흘러간 올 한 해, 정말 많은 영화들이 범람하고 있지만,정작 로베르토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이 내 삶을 모자이크해 줄 한 편의 영화를 건져 올렸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 해 볼 일이다. 촬영이 분주한 요 며칠사이 광안리로 나와 해안가를 걸어 보았다.

유흥가의 현란한 불빛들이 거리를 쏘다니는 듯하다. 쉽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오랫동안 바라본 광안대로의 불빛은 오늘따라 침착하고, 고요하며 은밀했다.

오랜만에 즐기는 휴식,내겐 너무너무 소중한 모우멘트…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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