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촬영클로즈업, 영화 [영도]

시간이 고여 있는곳, 그림자가 묶여 있는 섬, 영도 그리고 불안과 분로로 가득찬 남자 영도 이야기

2013 부산영상위원회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지원작

부산, 진짜 영도이기에 가능했던 영화: <영도>

부산에 자리 잡은 영도는 인구 20만의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자 전 세계에서 여름과 겨울이 가장 짧고,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해양관광도시로 부산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꼭 들려야한다는 절경 태종대와 동삼동 패총 등 수많은 수식어와 공간들로 소개되는 고장이다. 그러나 영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영도를 소개하는 이런 객관적이고 화려한 수식어들보다는 어릴적 할머니 무릎을 베게 삼아 잠들 때 들었던 영도할매 전설이나, 6.25전쟁 시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이 영도다리에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자고 약속했다던 삶의 이야기들이 진짜 영도를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영도>는 과거 가난과 배고픔을 참고 살아남아야만 했던 영도 사람들의 사연에서 출발했고, 그들이 살법한, 아니 현재도 살고 있는 영도의 진짜 공간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했다. 여기서 계속 강조하는 ‘진짜 공간’이라 함은, 개발과 확장으로 어딘가 모르게 균형감이 무너져 보이는 영도의 외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는 한 발견할 수 없는 저 깊숙한 안쪽, 저 아래 낮은 곳에 위치한 공간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를 버텨내고 현재의 개발에도 꿋꿋하게 자리하고 있는 100년이 훨씬 넘은 용신당(현재 신당 바로 뒤에 시청 만한 국제선용품센터 건물이 들어서 있다)과 영도다리, 역시 일제의 잔재물이지만 아직도 그 시절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조선소와 선착장,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낮은 집들과 일본식 목조건물, 복잡한 미로와도 같이 얽히고설킨 달동네길과 산복도로, 재래식 변소가 당당히 복도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40년이 넘은 영선미니아파트 같은 곳들이다.

그러나, 이런 영도의 신비한 공간들이 어찌 우리 <영도>팀에 게만 허락되었겠는가…. 이미 앞서 많은 영화, 드라마팀들 이 영도의 숨겨진 이곳저곳을 훑고 갔고, 그렇다보니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막바지 프로덕션을 진행할 때까지도 로케이션 섭외를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관공서 역시 그런 주민들을 의식해 촬영을 불허했다. 당시 주민들 말을 그대로 빌어 “영환지 드라만지 와서 다 디바(뒤집어)놓고 정리도 안하고 내삐고(도망가고)! 이제는 하도 당해서 허락 몬한다! 딴 데 알아봐라”같은 철벽보다 단단하고 단호한 말이 나오는 실정이었으니, 영화상 꼭 촬영하고 싶었던 영도의 숨겨진, 아니 이미 드러난 몇몇 공간은 결국 촬영하지 못한 채 카메라를 내려 놓아야 했다. 시나브로 상업영화와 드라마의 자본에 익숙해져버린 주민들에게 사정해가며 촬영허가를 받기 위해 무릎 꿇던 프로듀서와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 날의 스케줄에 괴로워하던 연출팀의 모습이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당시엔 씁쓸하고 가슴 찡한 장면들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도는 과거와 현재를 수없이 오가야 했던 우리 영화의 복잡한 플롯에 걸맞은 배경으로 자리해 주어, 감독인 나를 비롯한 스태프 모두 촬영 내내 감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도에서 촬영 중인 영화 제작진

영도에서 촬영 중인 영화 <영도> 제작진

영도(影島): 그림자 섬
글자 풀이 그대로 ‘그림자 섬’ 영도를 배경으로 한 부산독립장편극영 화 <영도>는, ‘대한민국 희대의 연쇄 살인마’라는 아버지의 그림자에 치여 살아가야 하는 남자 영도(극중 이름 역시 영도다)의 외로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감독으로서 나는 이 외로운 남자 영도가 영화 내내 분노와 불안을 뿜어내길 원했고, 그것은 영도 사람들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와 함께 오직 다리를 통해서만 세상과 연결되는 영도의 고립성과 잘 맞아떨어졌다. 더불어 영도할매 전설(영도를 떠나면 영도 산신할매가 잘되는 꼴을 못 봐, 3년 안에 망하게 해서 영도로 돌아오게 한다는 설화)처럼 결코 영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다소 무리(?)한 설정 들을 추가함으로써 어렵지 않게 스토리화 할 수 있었다. 사실 영화의 내용이 이렇게 진행된 것은 애초에 내가 영도라는 곳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단언컨대 유년시절을 영도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영도를 멀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탈(脫)영도에 대한 간절함이 영화 속 남자 영도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벗어나고 싶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코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 지만 모든 결과의 화살을 홀로 맞아야 하는 남자 영도의 삶은, 점점 빨라져 가는 부산의 모습을 따라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멈추어선 그 섬, 영도(影島)를 닮았다.

영도에서 촬영 중인 영화 제작진

영도에서 촬영 중인 영화 <영도> 제작진

저예산독립영화가 늘 그렇듯 스태프 모두를 초죽음의 상태로 몰고 간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크랭크업 할 수 있었던 건, 많은 분들의 응원과 더불어 부산영상위원회 로케이션지원팀과 제작지원운영팀의 도움이 컸다. 부산영상위원회를 통해 허가된 공 간들은 중간에 취소되는 일 한 번 없이 무사히 촬영할 수 있었고, ‘부산영상위원회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 지원작’이라는 타이틀은 마치 보증수표처럼 종합병원 응급실과 병실, 군부대 관리시설 사용에서부터 도로통제, 경찰 협조 등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던 부분들에 있어 더 적극적인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 다. 영화란 무릇 변수가 많은 작업이긴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변수는 제작비 측면에서도 많은 절감을 이뤄내 프로듀서를 시종일관 춤추게 했다는 전언이다. 이 영화를 부산이 아니고 영도가 아닌 다 른 도시, 혹은 다른 섬에서 촬영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답은 ‘절대 아니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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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교라는 훨씬 크고 튼튼해 보이는 다리가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어찌 역사와 상징성에서 영도다리와 견줄 수 있으랴.

시간이 고여 있는 곳: 영도다리
얼마 전 부산역사의 산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도다리(영도대교) 를 복원 재개통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물자 수송로 확보를 위해 만든 이 다리는 1966년 교통량 증가로 도개가 중단되었고, 이후 무려 47년 만에 그 역사적 가치와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아픔과 애환을 기리고자 다리 상판 일부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복원되었다. <영도> 역시 이 영도다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영도를 통하는 ‘절대 관문’이 바로 영도다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산대교라는 훨씬 크고 튼튼해 보이는 다리가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어찌 역사와 상징성에서 영도다리와 견줄 수 있으랴. 그러나 이렇게 쓰고 있는 나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촬영 때는 영도다리보다 부산대교에서 더 많은 촬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촬영기간 내내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던 관계로 영도다리 본연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대신 공사장 기계 소음과 잦은 교통통제로 인해 도저히 촬영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중 영도다리를 걷고 뛰어야 하는 장면이 많다보니 감독인 나로선 꼭 영도다리여야만 했고, 쌓여가는 촬영 회차를 무시하며 계속 촬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부산대교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금은 완전히 복원되어 왕복 6차선은 물론이고 보행도로 역시 넓어져 전보다 더 자주 걸어서 영도다리를 건너곤 하는데, 이렇게 걷다보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겪어보지도 않은 과거 영도 향수에 젖곤 한다. 나에게 영도는 휘황찬란한 남포동과 부의 상징인 롯데백화점의 위용 앞에서도 지식이나 유행, 세 련미와는 동떨어진 거칠고 험한 옛 부산의 과거를 부여잡은 채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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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속에 존재하는 섬: 영도와 남자 영도, 그리고 진짜 내가 살고 있는 곳 부산의 영도

<영도> 속에 존재하는 섬: 영도와 남자 영도, 그리고 진짜 내가 살고 있는 곳 부산의 영도그림자가 묶여 있는 곳: 영선미니아파트
영화의 절반 이상을 촬영한 영선미니아파트는 무려 45년 전에 세워진 영도의 유일한 신식 아파트였다. 경치 또한 어찌나 좋은지,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보는 태평양은 내가 본 바다 중 단연 으뜸이다. 그러나 지금은 뉴타운 개발과 도시정비 사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 한 동에 몇 가구 살지 않는 폐허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사실 그 점이 이 영선미니아파트를 주인공 영도의 집으로 설정하게 된 결정적 이유지만, 복도 한가운데 딱 버티고 선 재래식 공중화장실과 비어있는 집들의 음산하고 기괴한 기운들은(밤엔 말할 것도 없고) 낮임에도 불구하고 스태프들을 자주 치킨으로 만들곤 했다(주의: 혹 개인적으로 이 곳을 찾고자 한다면 절대 혼자가지 말 것. 분명 주민 이상의 그 무엇을 보게 될 것!).

<영도> 속에 존재하는 섬: 영도와 남자 영도, 그리고 진짜 내가 살고 있는 곳 부산의 영도늦은 오후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석양이 빗겨간 그늘진 바다는 자주 해무로 가득 차곤 하는데, 바다에 떠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의 윤곽만 보일정도의 해무가 뒤덮인 붉은 바다는 마치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남자 영도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는 듯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때론 뜨겁게 살고 싶은 열망을 절망 속에 파묻어버린 남자 영도. 촬영하는 내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그의 바다에는 유난히도 높은 파도들이 많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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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영도의 집으로 설정한 영선미니아파트

<영도> 속에 존재하는 섬: 영도와 남자 영도, 그리고 진짜 내가 살고 있는 곳 부산의 영도. 알 수 없는 연민과 머물러 있는 시간들로 가득한 이 곳에서 많은 의미들이 떠올랐고, 표현하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그 작업들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가 주어졌음에, 내가 의도한 그 무엇들을 나타내고자 우리 모두가 애쓴 것에 한 번 더 감사한다. 한 사람으로든, 한 공간으로든, 한 작품으로든 이 영화 <영도>를 보는 관객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조금은 특별한 의미로 영도가 느껴지길 바란다. 영도에 대한 모두의 애정과 안타까움이 없었다면 영화 <영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나와 같이 <영도>를 믿어준 스태프들과 응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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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한 모습 그대로의 배우 태인호- 영화<영도>
영화<영도> 손승웅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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