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소에서 겸허해져야 하는 것은, 기록의 미미함을 알기 때문이다. 터에 대한 이야기는 개별적 감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호의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어떤 장소에서 겸허해져야 하는 것은, 기록의 미미함을 알 기 때문이다. 터에 대한 이야기는 개별적 감상이기도 하 지만 한편으로는 상호의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상판이 ‘하버브리지’처럼 미려하지 못하고, 교각이 ‘골든게이트’처럼 날렵하지 못하여도 늘 그 다리 위에 서고 싶다. 다리의 난간에 설 때마다,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라는 가수의 절규 보다는, 들고 나기를 반복하는 물의 섭 리를 관찰하기 보다는, 인간과 자연과 세월이 뒤섞여 버 무려진 여러 장면을 먼저 떠올려보고 싶다. 교각을 휘도는 물살을 바라보면서 ‘욕망’, ‘소통’, ‘추억’이라는 인간의 단어 들을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자갈치시장, 수리 조선소, 공 사현장과 같은 주변의 치열함에 전율을 느껴보고 싶다.
모든 연육교는 욕망의 출발점이다. ‘절영’이란 이름의 아름 다운 섬에 태고로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말을 키우며 물 고기를 잡고, 밭을 일구면서 무시로 뭍을 바라보았을 것 이다. 반면, 뭍의 사람들에게 섬은 환상과 호기심의 대상 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서로의 욕망들은 연육(連陸)을 이 룸으로써 해소됨직 하였을 터, 다리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하나의 소통을 얻 고 다른 하나를 단절시키는 일이다. 같은 물살의 바다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었다. 큰 배는 섬의 뒤편을 돌아 더 큰 항구로 접안해야만 했으니 이른바 ‘북항’으로 자연 스레 무역과 산업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반면, 다리 의 남쪽은 여전히 태고로부터 이어져온 고기잡이와 사람 들의 잡다한 일상이 영위되는 어항으로 남았으니 단절임 에 분명했다. 영도다리가 빛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소통하려는 의지에 있었다. 인간의 욕망과 호기 심이 거기서 그칠 일이 아니었으니··· 끊어진 바닷길을 통 해 보려는 의지, 그것이 도개(跳開)라는 기막힌 방법으로 실현될 줄이야. 1934년의 일이다. 기묘한 광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부산 사람 들이 이유 불문 중단된 도개의 재현에 동의한 것은 그 장 면에 대한 치유치 못하는 집착이며 깊은 애정이다. 추억 의 재현은 소통의 유효한 매개이니 영도다리 주변이 여전 히 펄펄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해 보니, 섬에서 자란 나의 욕망도 영도다리 밑을 통 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로 나는 수차례 여객선 갑판에 서 다리의 밑과 속내를 올려다보았다. 다리는 다부지고 모 질고 튼튼한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린 주먹을 야무지게 쥐었다. 부산에 터를 잡은 후, 명절 때가 되면 우리 조무래 기들은 엉성한 낚싯대와 망태 하나씩 메고 다리 밑으로 갔 다. 명절에 고등어라니, 우습지만 우리는 눈먼 고기를 한 소쿠리씩 낚아 올렸다. 그 즈음이면 어른들이 삼삼오오 다 리 밑으로 느긋한 걸음을 하였는데, 저마다의 미래를 점집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묻곤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한 약과 건어물 냄새를 꼭 통과해야만 하였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후, 바로 그 장소에 건축가인 내가 집 한 채를 설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도면을 그 리는 내내 인연에 감사하고 추억에 즐거웠다.
지금의 영도다리 주변은 복합적이다. 과거의 흔적이 남아 여전히 추억의 장소로서의 명성을 유지하지만, 거대자본 이 첨단의 건물을 건설하고 있기도 하다. 당국에서는 해 안을 정비하는 등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반면 원 형 보존의 목소리도 드세다. 목하 이 지역이 개발과 보존 이라는 이념의 홍역 속에 또 다른 욕망이 쉼 없이 꿈틀대 고 있다는 말이다. 도시는 소멸과 생성을 반복한다. 기실 ‘보존론자’에 가까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도시의 현대화다. 중요한 것은 그 개발 또한 역사의 애환 속에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 그러므로 주장의 옳고 그 름에 앞서 의식의 소통과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올 바른 소통은 그릇된 욕망을 제어한다. 그 위의 개발이라 야 타당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매일 오후 2시가 되면 도개 의식이 진행된다. 그 잠시의 시간에 섬은 단절되고 다리 밑으로 키 높은 배가 지나며, 도시의 사람들은 잠시 가쁜 숨을 멈추고 선다. 이미테이션 이라도 좋다. 지난날 영도다리의 ‘연육’과 ‘도개’가 잘 버무 려져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고, 후손인 우리가 그 추억 하 나를 확인해보려 꽤 설득력 있는 재현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