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유사 전시회를 여는 전시 기획사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한편 공동 개최 가능성을 타진하고, 관련 정부 부처, 지자체, 관련 기관의 뜻을 모아나갈 방침이다
지난해 화려한 성년식을 치르고, 올해 21회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많은 짐을 지고 있다. 부산이 영화도시가 될 수 있다고 꿈꾸게 할 정도로 공이 큰 만큼, BIFF에 대한 요구도 많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역 영화산업 발전에 대한 기여 요구다. 문화축제라는 성격이 명확한 BIFF가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과제다. 부산일보는 김인수 전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전 시네마서비스 대표)을 영입해 지난해 7월 1일 부일영화연구소를 발족시켰다. 두 달 뒤인 9월 1일에는 부산지역 영화 관련 기관과 단체가 모여 지역 영화산업의 발전을 함께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부산영화산업포럼을 출범시켰다.
부일영화연구소는 지역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먼저 부산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답은 컨벤션이었다. BIFF가 갖고 있는 아시아필름마켓 같은 콘텐츠시장에다 카메라, 특수촬영, 조명 등 하드웨어에 대한 영화계와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는 박람회가 더해진다면 산업적 유발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부일영화연구소는 부산영상위원회와 함께 지난해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RAI에서 열린 유럽 최대 방송통신영화 장비 박람회인 ‘IBC(International Broadcasting Convention) 2015’에 다녀왔다. IBC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NAB(National Association of Broadcasters), 일본 도쿄의 Inter BEE(International Broadcast Equipment Exhibition)와 함께 세계 3대 방송영화통신기술 장비 박람회다. 지역영화 산업화의 작은 실마리를 네덜란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RAI는 벡스코 전체 전시장을 몇 배로 확장한 듯한 넓은 규모였다. 다녀와서 확인한 결과 실제 전시장 면적은 벡스코 1, 2 전시장을 합친 면적의 배를 넘지 않았다. RAI의 전시면적은 8만 7000㎡로 벡스코(4만 6000㎡)보다 약 3만㎡ 넓었다. RAI가 실제보다 훨씬 넓다는 인상을 준 이유는 14개 섹션의 전시관을 빼곡히 채운 전시의 다양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카메라와 케이블, 위성, 드론, 디스플레이, 편집, 조명, 음향, 심지어 각종 장비를 담는 가방까지 영화와 방송통신 장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최소 2~3일 정도는 걸려야 이 전시장을 모두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를 비롯한 거의 모든 장비에서 영화와 방송, 통신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법과 규제를 언제나 앞질러 달렸던 시장의 능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관련 기관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현재 한국의 행정체계로 이런 융합시장에 과연 대응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장비뿐 아니라 편집 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도 많았다
5일 동안의 전시회 기록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지난해 기록을 뛰어넘는 5만 5128명이 전시장을 찾았고, 18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전시에 참여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일본은 거의 대기업 위주로 부스를 차린 데 비해, 중국은 드론업체인 DJI나 카메라업체인 GoPro 등 대기업 외에도 대부분의 장비 영역에서 작은 업체들이 전시자로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전시장을 방문한 한 한국 업체 관계자는 “일본의 Inter BEE가 요즘은 거의 국내 행사 수준으로 위상이 많이 떨어졌는데 해외 전시장에 나와 봐도 SONY를 비롯한 대기업 외에는 작은 업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최신 방송통신기술에서 중국의 비약적인 성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중국 업체들의 박람회 참가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동행한 VFX(시각효과) 전문가인 강윤극 원광대학교 시각정보디자인학과 교수는 “미국 NAB가 대형 브랜드 위주로 큼직큼직하게 부스를 차린다면 IBC는 대형 메이커부터 덜 알려진 유럽 중소형 브랜드까지 참여해 훨씬 다채로운 느낌”이라며 “컨벤션 도시이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처럼 휴양도시 이미지가 강한 부산에서 IBC처럼 다양한 영화와 방송통신 장비를 보여주는 박람회가 열린다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박람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IBC에서 특히 눈에 띈 것은 대형 제작사들이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는 컨퍼런스를 연다는 점이었다. 세계 영화계에 통용되는 카메라 제작사로 유명한 ARRI는 9월 12일 RAI 빅스크린에서 자신들의 최신 제품으로 촬영한 영화를 소개하며 촬영감독들과 대화를 나누는 컨퍼런스를 열었다.
컨퍼런스를 지켜본 한국 측 참가자들은 특정 제품만 홍보하는 컨퍼런스보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장비를 사용한 전문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당 장비의 우수성과 개선점을 토론하는 형태의 컨퍼런스가 훨씬 대중적 관심을 유발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인수 부일영화연구소 소장은 “세계 최초의 새로운 장비는 매년 4월 열리는 미국 NAB에서 가장 많이 공개되는데 일정 시기 이후에 부산에서 장비 박람회를 연다면 해당 제품을 적용한 영상물로 시연을 보이고, 컨퍼런스를 통해 전문가들이 사용자 경험(UX)을 공유하는 형태로 계획을 짜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정희철 부산영상위원회 디지털제작센터장은 “방송과 영화의 장벽이 없어졌듯이 스틸카메라와 영상카메라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며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동호회원들도 많기 때문에 스틸카메라까지 포함하는 박람회를 연다면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영화와 관련된 장비 박람회가 국내에서 열리지 않아 관련 기술을 방송장비 박람회나 해외에 나와야만 신기술을 접할 수 있는 형편이다. 영화와 방송 관련 전문가 단체들로서는 이런 박람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게다가 아시아와 세계 영화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브랜드를 잘 활용하면 부산이 선진영화영상, 정보통신기술의 시연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G-STAR처럼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 프로그램을 적절히 배치한다면 전문가와 시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시상품이 개발될 수도 있다. 부일영화연구소는 올해 부산영화산업포럼 운영위원회와의 논의를 거쳐 가칭 ‘부산 국제 영화영상 방송통신 장비 박람회’ 계획 수립에 나설 계획이다. 국내에서 유사 전시회를 여는 전시 기획사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한편 공동 개최 가능성을 타진하고, 관련 정부 부처, 지자체, 관련 기관의 뜻을 모아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