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현재와 미래 정체성에 대한 제언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스크리닝과 파티장 이곳 저곳에서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영화제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의 영화제를 되돌아보면 늘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이번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행사에 대해서 언제나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꽤 긍정적이었었다. 이런 시점에서 이제 한 걸음 물러나 지난 영화제의 성공에 대해 되짚어보고 앞으로 어떤 난관들이 예상되는지 고민해 보면 좋을 듯 하다.
필자는 특히나 다소 추상적인 부분-영화제의 정체성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1996년에 시작된 이래 부산국제영화제가 직면한 과제 중 하나가 바로 국제영화제 시장에서의 자리매김이었다. 대규모 유럽 영화제들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이러한 역사가 영화제의 위상과 영향력에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해왔다. 이 영화제들은 또한 세계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한 신작들의 개봉의 장이 된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데,그 어떤 신규 영화계가 이러한 역할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토론토와 선댄스 같은 북미 영화제들 역시 중요한 곳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 이유는 사뭇 다르다. 선댄스는 주로 미국 독립 영화의 쇼케이스 장으로, 비경쟁 영화제인 토론토는 심각한 소재의 영화들을 북미 시장에 소개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힘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대규모 유럽 영화제들의 힘이 그 역사에서 나오고 선댄스는 북미 독립영화에 대한 접근성에서,토론토는 미국 시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과연 부산국제영화제의 힘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1990년대 영화제 초기 몇 년 동안 놀라울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는데,당시 부산국제영화제는 스스로를 아시아 영화에 대해 전문성을 갖춘 영화제라고 내세웠다. 그런데 어떤 관점에서였을까? 아시아의 칸느를 목표로,아니면 아시아의 선댄스 혹은 아시아의 토론토? 해변가에 위치해 있는 탓에 수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서 아시아의 칸느가 되고자 노력한다는 말들이 있어 왔는데, 과연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지아장커나 두기봉,왕가위 감독 같은 아시아 최고 감독들은 거의 대부분 칸느나 베니스,토론토 같은 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개봉할 것이므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유명한 아시아 감독들의 개봉작을 초청하며 명성을 쌓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반면 토론토는 아주 흥미로운 비교 대상인데,필자는 옛날부터 부산국제 영화제가 토론토영화제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필자의 주장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토론토가 미국 시장 주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이와 유사하게 자리 잡은 아시아 영화제는 점점 커져 가는 중국 시장으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점을 주요 역할로 잡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는 해내기 힘든 부분으로 상해나 북경영화제 역시 아직까지 효과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상해나 북경이 정신을 차리고 아시아의 토론토(아니면 최소한 중국의 토론토)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해낼 것이라 본다.
어쨌든 부산국제영화제는,활동적 측면에서 선댄스영화제와 가장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는데, 젊은 미국 감독들을 발굴하고 새로운 미국독립 영화를 보는 최고의 장소가 선댄스라면 아시아독립 영화 시장에 있어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산이다. 비록 새로운 한국 영화들이 언제나 프로그램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동안 발굴하여 선보인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수를 고려해 볼 때 부산국제영화제가 진정한 영화제라고 충분히 주장할 만하다. 아시아영화의 창, 한국영화의 오늘 그리고 뉴 커런츠 경쟁 섹션은 영화제에 참석하는 프로그래머들과 비평가 그리고 초청인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규모적 측면이나 부산시네마 포럼과 산업 지향적인 아시아필름마켓 같은 특별행사들 측면에서 보자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선대스영화제보다 훨씬 더 큰 영화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수많은 계약들이 선댄스에서 성사되지만 선댄스는 아메리칸필름마켓(AFM) 같은 공식적인 마켓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부산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의하고 표출해야
영화제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그 영화제의 지속적인 성공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어느 영화제가 흥미로운 영화를 볼 수 있는 규모가 크고 역동적인 곳이라는 점을 그 특징으로 내세운다면 신규 경쟁 영화제에게 쉽게 그 자리를 빼앗겨 버리고 말 것이다. 중국 영화제의 급격한 성장으로 조만간 아시아 영화제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바,지금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표출해야 할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면 걱정이 앞선다. 부산국제영화 제가 실제로는 아시아 독립 영화의 고향으로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영화제는 스스로를 그저 아시아의, 최고 영화제’라고 단순하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또 어떤 때에는, 영화제를 작은 칸느나 토론토, 선댄스영화제인 듯 홍보하는 듯 한데 이는 스스로를 “흥미로운 영화를 볼 수 있는 규모가 크고 역동적인 곳으로 소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10년 전 프로그램들을 통해 200여 편의 영화를 소개했던 영화제의 편수가 이제는 300여 편으로 늘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프로그램의 초첨이 다소 흐릿해지고 있다. 이런 말하면 괴팍한 사람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비아시아계 감독들을 위한 경쟁 부분인 플래시포워드(FlashForward) 섹션은 불혈요한 부분으로 영화제의 정체성에 혼란만 주는 것 같다. 이런 감독들에게 상을 줌으로써 부산국제영화제가 마치 아시아 독립영화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 독립 영화를 인정하고 축하하고자 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런 역할을 하는 영화제는 로테르담이나 로카르노,베를린의 파노라마와 포럼 섹션 포함 정말 수백 개가 넘게 있지 않은가, 부산국제영화제는 선댄스가 미국 독립영화에 대해 그런 것처럼 아시아 독립영화에 대해 가진 강점을 영화제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확실히 내세워야 할 것이다.
‘아시아 독립영화의 고향’과 ‘인적 네트워크 형성의 장’이라는 강점을 살려야
널리 인정받고 있는 또 다른 부산국제영화제의 강점은, 바로 비공식적인 사교와 인적 네트워크 형성의 장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칸느와 토론토 같이)업계 종사자들이 만나서 비즈니스를 하는 영화제는 많이 있다. 그러나 유명한 밤 유흥 생활과 사교 문화 덕분에 부산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사귈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장소 중 하난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 부산은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업계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곳이다. 해외 참가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부분이 영화제의 강점 중 하나로 더 오래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강점,아시아독립 영화의 고향이자소셜 네트워킹의 최적의 장소라는 점을 바탕으로 영화제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정체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해서 생각하는 것 같을지 모르겠지만 인식이라는 것이 영화제 세계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스스로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짓는다면 영화제는 다른 영화제들이 뭘 하든 상관없이 앞으로 오랫동안 성공적인 영화제로 계속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아시아의 최고영화제라던가 흥미로운 영화를 볼 수 있는 규모가 큰 역동적인 영화제라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규정한다면(아마도 중국에서)새롭게 나타나는 또 다른 대규모 영화제에게 따라 잡혔다거나 뒤쳐진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 염려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자시의 정체성을 너무 애매모호하게 규정 지으면 언젠가는 실패로 규정될지도 모른다.
달시피켓(Darcy Paquet) <Korean1ilm.org>의 설립자이며 영화잡지 <씨네21>의 필자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와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의 컨설턴트로 활동중이다. 그는 1997년부터 서울에서 살며 한국영화를 감식해왔다
번역 임자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