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Story 수영강에 서다

치열한 삶을 간간이 안도해 볼 수 있는 의미 깊은 장소

‘스메타나’의 관현악곡 ‘몰다우’를 들으며 생각한다. 내게 강이란 늘 경외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이곳 부산 시민들에게 낙동강과 같이, 강은 태고로부터 너른 품의 젖줄이었으므로 늘 어머니의 의미와 견주게 되는 것이다. 그 앞에 서면, 어느새 작고 초라해져서 나 같은 무지렁이는 그만 말이나 문자를 잃게 된다. 강을 벗어난 도시와 사람들의 삶 또한 생각기 어렵다면 무리일까? 그러므로 강의 큰 모습은 언제든지 삶의 지표가 되기에 하나의 모자람도 없이 숭고한 것으로 마음에 남았다.

강의 의미는 크기와 상관없이 한 결로 흐른다
작은 강이라고 해서 다를까? 비록 어머니의 품만큼 너르거나 속이 깊지 않아도 작은 강 또한 치열한 삶을 간간이 안도해 볼 수 있는 의미 깊은 장소 가 된다. 강가에 선 나는, 코흘리개 나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구까지 데려다 주던 누이 앞에 서는 것처럼 그새 안도감을 느끼며 잠시 회한에 잠기는 것이다. 수영강에 선다. 눈여겨보면, 게(蟹)가 기어 다니고, 숭어가 튀어 오르며, 가마우지와 왜가리가 강 속의 먹이를 노리는 그곳. 강의 몇 발치에 내 거소가 있다는 사실에 매일 감사하며, 시도 때도 없이 느린 걸음으로 거닐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아도 강은 강이다.

사람의 삶을 닮아 때로는 평온하게, 때로는 분주하게…
어느 해 늦은 봄. 강을 바라본 나의 관찰은 이런 짧은 비망을 남기기도 했다. “아침 산책길의 수영강. 땅끝에 선 왜가리 한 마리가 고독한 철학자처럼 도시의 아침 풍경을 관조하고 있다. 길기도 짧기도 할 여름의 시작을…” 그리고 곧 여름이 왔고, 그 비망의 뒤 페이지에 썼다. “뭍으로 오르는 게(蟹), 물로 돌아가려는 게.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점점 뻔뻔해져 가는 며칠 전 그 왜가리의 나른함. 어느새 잠자리의 수가 불었고, 꼬리를 치며 수면에 그려내는 동심원의 풍경이 새롭다. 바야흐로 여름이 깊었구나.” 다른 해의 초가을 어느 날. 새벽 고요 속의 풍경은 문득 삶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게 하기도 하였다. “아직 이른 시간인가? 좀체 숭어 떼가 도약을 시작하지 않은 수면은 아직 고요 속이다. 어둠을 지나고 다시 되살아 온 수면은 뭇 삶의 그림자들을 어제와 다름없이 비출 준비를 마친다. 지난밤을 무사히 넘긴 대견한 것들의 또 다른 전초전이다. 어둠을 틈타 분출하던 욕망은 깨어보면 늘 현실. 물은 안다. 언제나 낮은 자세였으므로… 분주해진 내가 서둘러 사진을 찍고 글을 떠 올리지만, 느긋한 강 앞에서 나의 분주는 오히려 욕되다. 수면의 풍경은 데깔꼬마니. 매일 복제되어 반복되는 그 그림은 무심하지만 그래도 그저 편안한 것이다. 삶이 곧 그러하다.” 강이 꼭 평온하기만 할까? 흐린 날의 산책에서 강은 이렇게 다가오기도 한다. “만조의 강물은 잔뜩 끼인 부유물을 밤새 다 내려 보내지 못하고 깊은 숨만 들이쉬고 있다. 분명 어제보다 그 양이 확연히 늘었다. 물고기의 비상이 줄어들었고 강의 냄새 또한 더 퀴퀴해졌으니, 강의 입장에서는 저의 주변에 사람이 흥청거리는 일이 꼭 좋은 일이라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강 밖에서는 불경기라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분주는 여전하니, 사람 사는 이치는 이처럼 모호한 것이다.”

구름이 걷히면 다시 강에 숭어가 튀기 시작한다

구름이 걷히면 다시 강에 숭어가 튀기 시작한다

구름이 걷히면 다시 강에 숭어가 튀기 시작한다. 펄쩍펄쩍 수면 위로 오른다. 문득 나의 삶에도 저럴 때가 있었음을 알겠다. 그때마다 양껏 튀어 오를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겨드랑이가 간지러울 때에 내 가슴도 요동을 쳤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저 불굴의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은, 제 비늘 사이에 스멀거리는 물벼룩 따위의 호작질로 인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일까? 아니면 저 일 그램도 안 되는 뇌수마저 공황의 상태로 자맥질시킬 바깥 풍경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동경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도약은 멈출 날이 없었다. 하물며 그 진 동이 그 때마다 섬세하게 나의 눈과 머릿속으로 옮겨오는 것이니, 생각해 보면 내게나 숭어에게나 그리움 같은 고질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숭어가 튀면 내 가슴도 튄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물속도 모르고 숭어의 속도 모른다.” 그저 강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도 그럭저럭 흘렀기를 바란다.

강 앞에 서서 물과 물이 이루어 가는 강의 의미를 생각한다.

강 앞에 서서 물과 물이 이루어 가는 강의 의미를 생각한다.

가슴 뭉클한 강의 음률을 들으며
어제 내린 비 이후로 새벽 공기가 쌀쌀하여 연신 이불을 당기다가 그만 잠이 깨었다. 사위를 살피니 온통 어둠과 고요뿐이나 어떤 속도와 흐름은 감지된다. 지금부터 계절이 막 급류를 탈듯하다. 어젯밤 늦게 들었던 잠자리였음에도 얼른 옷 갈아입고 밖을 나섰다. 새벽 공기가 산뜻할 터이다. 공기는 하루가 다르게 차분해져 가지만 강의 흐름은 유달리 빨라진다. 강 앞에 서서 물과 물이 이루어 가는 강의 의미를 생각한다. 물이 흘러가지 않 는다면 물은 어떤 모습으로 제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을까? 흐르지 못하는 물의 순간은 얼마만큼의 짧은 기간이며, 어느 정도의 가벼운 무게일까? 물의 숙명은 역사로 혹은 무게로 흘러야 함이다. 그것의 확인은 삶의 의미 있는 절차가 되리라. 몇 주가 더 지나서 겨울 수영강으로 나가게 된다면, 놀랍게도 새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마우지, 물닭, 왜가리, 백로, 물떼새, 가창오리… 수영강이 새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임은 마음을 푸근하게 할 것이다. 잠시 저들의 한가로운 유영과 힘이 실린 날갯짓을 보고 있노라면, 저 들을 이 강으로 돌아오게 한 사실이, 얼마 전 이곳에 몇 개의 거대한 건물을 만들어 놓고 불꽃을 쏘아대며 소란을 떨었던 것보다 훨씬 감동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계절의 막바지에 도달할 것이고, 나는 어김없이 한 해를 보내는 회한에 또 잠길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으리라. 강의 감동은 물결의 요동처럼 짧은 음률이기도 하겠지만, 마치 장산의 정상에서 강과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처럼 도도하고 숭고한 흐름의 관현악이기도 하리라. 가슴 뭉클한 일이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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