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이유로 타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자유는 곧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자유이며 불가침의 권리다.
법률과 소비자학 관점으로 보는 영화
소비자에게 무릎 꿇지 않을 자유
-장서희 법무법인 나눔 변호사
영화 <카트>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모티브로 하여 대형마트의 대량 해고에 저항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을 이야기한다. 극중 마트 매각을 추진하던 회사는 정규직 전환을 꿈꾸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하고, 마트 일선을 책임지던 여성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어 부당 해고에 맞선다. 회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의 파업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지만,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연대 투쟁을 이어나간다.

<카트>(2014)
이 영화의 시선은 우리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비단 해고나 비정규직이라는 노동법 사안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영화 <카트>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악랄한 갑질과 인권 침해가 반드시 ‘사용자’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씁쓸한 우리의 현실을 명확히 각인시킨다. 마트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조명하는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각양각색의 소비자들을 상대하면서 겪게 되는 이들의 고충과 비애가 잘 그려진다. 그 가운데 계산원으로 일하는 혜미(문정희 분)가 규정에 따라 고객에게 마트 상품으로 보이는 소지 물건의 바코드를 찍어야 한다고 안내했다는 이유로 그 고객과 자식들 앞에 사죄의 의미로 무릎을 꿇게 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 장면이 더욱 뼈아픈 이유는 이토록 황당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장면이 영화적 상상력에 기대 만들어진 허구적 설정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소비자들에게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감정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무릎을 꿇는 모욕을 겪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잊을만하면 새롭게 마주하며 살아간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인천의 백화점에서 스와로브스키 매장 직원 두 명이 수선 서비스 안내에 대한 불만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여성 소비자에게 무릎을 꿇은 사실이 보도된 바 있다. 언론에서는 해당 소비자의 수선 요구가 애초에 불합리하였다는 점을 다루면서 판매 직원의 억울함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문제의 본질은 그 직원이 실제로 잘못을 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대체 어떠한 잘못이 소비자에게 사람을 무릎 꿇게 할 권리를 부여한단 말인가? 소비자가 재화 또는 용역을 소비하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에는 그 액수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소비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무릎 꿇게 할 권리가 결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미 수십 년 전 헌법재판소는 사과 강제가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뜻을 명시한 바 있다. 국가의 작용이라는 별개 논점이 존재하기는 하나, 헌법재판소 1991. 4. 1. 선고 89헌마160 결정에서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하여 양심의 자유를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는바, 여기의 양심이란 세계관 · 인생관 · 주의 · 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윤리적 판단도 포함된다고 볼 것이다. 사죄광고의 강제는 양심도 아닌 것이 양심인 것처럼 표현할 것의 강제로 인간양심의 왜곡·굴절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형성의 강요인 것으로서,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적 기본권의 하나인 양심의 자유의 제약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살피건대 원래 깊이 ‘사과한다’는 행위는 윤리적인 판단·감정 내지 의사의 발로인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것이라야 할 것이며 그때 비로소 사회적 미덕이 될 것이고, 이는 결코 외부로부터 강제하기에 적합지 않은 것으로 이의 강제는 사회적으로는 사죄자 본인에 대하여 굴욕이 되는 것에 틀림없다. 사죄광고제도는 헌법에서 보장된 인격의 존엄과 가치 및 그를 바탕으로 하는 인격권에 큰 위해도 된다고 볼 것이다.

<카트 2014>
결정문이 말하고 있듯이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비록 국가가 아닌 사인이라 하더라도 타인에게 사죄의 의미로 강제로 무릎을 꿇게 한다면 이는 인격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굳이 이러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잘못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사과를 강요하며 무릎을 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성숙한 인격이나 고결한 양심으로부터만 도출되는 대단한 가치가 아니라 극히 기본적인 상식에 불과하다. 비단 무릎을 꿇는 것뿐 아니라 욕설, 폭언 또한 허용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한편 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자 역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로 하여금 소비자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할 것을 강요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사측에는 ‘진상’ 고객의 횡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보호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백화점 등지의 고객이 판매 직원을 하시하며 무릎을 꿇으라는 등의 모멸적 언동을 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분명 이윤을 위해 자사 직원을 고객의 횡포에 방치한 채 보호하지 않는 기업의 잘못이 상당 부분 경합되어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환기된 덕에 정책적으로 이른바 감정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입법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2일 고용노동부는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에 의한 폭력 또는 폭언 등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 및 이와 직접 관련된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한 적응장애, 우울병 에피소드를 업무상 질병인정기준에 추가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2014년 우리 사회는 대한항공의 전 부사장이 자사 승무원을 무릎 꿇게 한 것도 모자라 비행기를 회항시켜 그를 미국 공항에 홀로 남겨두고 오는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했다. 그 직원이 겪었을 모멸감과 인격 침해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이처럼 영화보다 더 황당무계한 일이 그저 몇 안 되는 재벌 오너 일가의 특권의식에 기인한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비인간적인 횡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차별적으로 발견된다.
누구라도 어떠한 명목으로 돈을 지불한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강요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누군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이유로 타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자유는 곧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자유이며 불가침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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