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감독전傳 영화 [못] 서호빈 감독, 인터뷰

부산영화계에서 서호빈(31) 감독만큼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이가 있을까. 그는 부산에서 활동하지만 ‘신비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지역영화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작 그를 만난 사람들은 앳된 외모와 조용한 말투와 달리 거침없는 발언에 놀란다.

부산영화계에서 서호빈(31) 감독만큼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이가 있을까. 그는 부산에서 활동하지만 ‘신비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지역영화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작 그를 만난 사람들은 앳된 외모와 조용한 말투와 달리 거침없는 발언에 놀란다. 무엇보다 2012년 영화사 ‘새삶’을 만든 지 3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초청작 2편(김병준 감독 <개똥이>
(2012), 서호빈 감독 <>)을 만들어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젊고 혈기왕성하지만 넘치지 않는 서호빈 감독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영화계에서 ’신비주의’로 통한다.
왜 그럴까.
내 외모가 사람들이 말을 쉽게 붙일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어서 그런가. (웃음) 부산독립영화협회에 가입하지 않아 부산영화인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최근 몇 년간 영화작업이 계속 이어져 바쁘기도 했고. 경북 경주시 출신이고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에서 공부했다. 부산영화계에서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조건 아닌가.
<> 작업 이후 서울을 자주 왔다 갔다 해서 어울릴 기회가 더 줄었다.

요즘 근황을 소개한다면?
영화사 ’새삶’ 대표로서 근황을 얘기하자면, 지난해 부산영상위원회(이하 영상위) ’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 선정작 김병준 감독의 <소시민>이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이제는 슬슬 배급사를 찾을 단계다. 대학 후배들의 장편영화제작도 도와줬다. 감독으로서는 두 번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경륜’을 소재로 한 스포츠영화인데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담아낼 예정이다. 어쩌면 현대인의 불안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영화 투자를 받기 위해 부지런히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발품을 팔고 있다.

(2013)

지난해 첫 장편영화 <>이 개봉했다. 어떤 성과를 거뒀나.
부산의 영화로는 꽤 많은 개봉관(전국 18개관)을 확보했고 관객 2,386명이 관람했다. 부산영화로는 전수일 감독님 작품 다음으로 관객이 많이 들었다고 들었는데 물론 비공식적인 얘기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기대에 미치지 한 결과 아니냐고 하겠지만 <>은 크게 개인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학교 지원으로 영화를 찍었고, 영화진흥위원회 사업으로 개봉했기에 결과적으로는 수익이 발생했다. 하지만 돈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극장 개봉으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영화의 시스템을 하루빨리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 때 당장 제작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개봉까지 염두에 두고 마케팅 비용을 미리 책정해 예산을 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부산에서는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무조건 제작에 모든 비용을 쏟아 붓는데 마케팅도 그에 지않게 중요했다.

<>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 다음 영화는 ’3~5억 원 규모로 만들겠다’고 얘기했다. 어떤 의미인가?
두 번째 영화는 ’시스템’이 갖춰진 영화였으면 한다. 영화 기획·개발 단계부터 투자금 3~5억 원 정도를 확보하고 그에 맞춰 배우 캐스팅, 로케이션, 마케팅 등을 진행하는 체계적인 제작시스템을 갖추겠단 얘기다. 스탭의 처우도 합리적으로 해주고 싶다. 무조건 열정과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표준근로계약에 맞춰 제대로 돈 받고 일하는 영화현장을 만들 것이다. 만약 제작비가 그 정도 안 된다면 아예 영화를 안 찍는 것이 낫다.

‘시스템’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나?
더 이상 헝그리정신만으로 영화를 할 수 없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생긴 것 같다. <> 개봉 때문에 서울을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충격을 받은 부분이 있다. 그동안 부산에서 봤던 영화인들은 ’예술가’의 성향이 강했다. 다르게 말하면 다음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영화작업을 어떻게 지속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할까. 하지만 서울의 영화감독은 각자가 세일즈맨이자 노동자였다. 영화감독이 투자, 제작, 배급까지 모든 것에 관여하며 세일즈맨처럼 뛰어다녔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현실과 타협할 용기를 갖고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내가 더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서 감독이 바라본 부산의 영화제작환경은 어떤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부산은 영화하기 좋은 도시다. 영상위가 영화를 찍으라고 돈을 주는 것(부산지역 영화제작 지원사업 2억 2천만 원)은 전국에서 최고 수준이다. 그에 비해 결과물은 실망스럽다. 만약 영상위에서 만든 영화가 매번 부산국제영화제, 칸영화제에 초청 받았다면 예산도 늘고 더 많은 지원책이 나왔을 것이다. 영상위가 공공의 자금을 투자해 영화계에 돈을 쏟아 부었으면 그에 걸맞은 성과물을 내놓았어야 했다. 오멸 감독님의 <지슬>(2012)이 성공하자 지자체는 물론 멀티플렉스까지 오 감독님을 받들었다. 물론 잘 만든 영화가 꼭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좋은 영화’를 만들어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것은 부산영화계의 소통 부재다. 농담처럼 ’부산영화계는 아버지도, 형제도 없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자기들끼리 어울리려는 ’끼리 문화’가 강한 것 같다. <> 개봉 당시 부산영화계의 지지도, 격려도 받지 했고 서로 정보 공유도 하지 않았다. 이런 부분을 되돌아보고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영화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티E.T.>(1982)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에는 영화감독이 매우 멋져 보였다. 서울 모 대학 영화학과에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연히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있던 시네마테크를 알게 돼 놀러왔다가 분위기에 홀딱 반했다. 매주 2~3번씩 시네마테크에 와서 영화를 봤고, 우연히 부산의 영화현장에서 스탭으로 일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는데 매우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서울 대신 부산의 대학을 택했고, 그렇게 정착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면?
예전에는 홍상수 감독님을 좋아했는데 그분의 예술세계는 범접할 수가 없더라. 최근에는 신연식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을 눈여겨보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독립영화를 꿋꿋이 만들면서 상업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모습이 신기하다.

영화감독으로 목표가 있다면?
최근 운동을 해서 10㎏ 이상 감량했다. 건강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앞으로 영화 10편을 찍고 싶기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영화 한 편을 찍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몸이 많이 망가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영화를 찍을 것 같았다. 적어도 3년에 1편씩 영화를 만든다 해도 10편을 찍으려면 30년은 걸리지 않나. 영화 10편을 만들려면 건강이 필수라는 절박함에 살을 뺐다. 영화를 만들다보니 첫 번째보다 두 번째, 두 번째보다 세 번째가 어렵다. 요즘 감독 중에 영화 10편을 만든 이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영화 10편을 만들고, 그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 1편을 남기고 싶은 것이 감독으로서 바람이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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