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배우, 부산에서 모든 것을 시작한 남자 – 오달수, 영화부산

처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아쉽지만, 늘 설레고 소중한 기억이다. 부산에서 모든 것을 처음 시작했다는 배우 ‘오달수’, 그를 서울 대학로 어느 까페 테라스에서 만났다.

많은 대학생, 예비 연극인들이 오가며 사진을 찍기 바빴고 그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매 질문에 신중하고 진지하게 답했다. 우리는 어색한 표준어보다는 맘 편히 부산 사투리를 쓰며 인터뷰할 수 있었고, 그는 중간 중간 시간을 보면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시간이 괜찮은지, 야외가 춥진 않은지 챙겨주는 여유를 보였다. 첫 인상이 참 인간적이고 따뜻한 고향 선배를 만난듯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아쉽지만, 늘 설레고 소중한 기억이다. 부산에서 모든 것을 처음 시작했다는 배우 ‘오달수’, 그를 서울 대학로 어느 까페 테라스에서 만났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을 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역시 이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된다. 2015년 첫 천만 영화로 등극한 <국제시장>(2014)까지 포함하여 천만 영화 최다(4편) 출연배우로 기록을 남겼다. 이 작품으로 부산 중구의 명예 구민도 되었는데 천만 영화를 찍을 땐 이미 뭔가 다른 느낌이 있는가?
<국제시장>1)으로 분명 좋은 일도 있었지만, 그 상가에는 큰 피해를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자고 만든 게 아닌데 허허… 어떤 작품이 꼭 잘 될 것 같아서, 그 작품을 고르진 않는다. 시나리오
를 읽고 빠져드는 작품에 성실히 임하다 보니 좋은 결과도 있었던것 같다. 현재 작품을 촬영하는 중일지라도 좋은 시나리오를 읽으면 욕심이 생긴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현재까지 45편, 그중 최근 10년 내에 32편 정도를 찍었다. 워낙 다작이다 보니 작품 간 배역에 대한 연기 몰입이 힘들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잘 적응 하는 본인만의 방법이나 노하우가 있나?
사실 작품을 거쳐 가면서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상업적인 마인드로 보면 ‘노하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진화’를 거치면서 조금씩 완성을 해간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대해 크게 부딪히거나 어떤 감정 의 여운이 남아 다른 작품에 영향을 미쳐서 힘든 것은 없다. 작품에 몰입과 진화의 과정을 가지는 것은 가장 기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간에 감정이 상충되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까지 촬영한 작품 중에 본인과 가장 닮은 배역이 있었나?
사실 진정한 내 모습이 영화의 배역을 통해 드러난 적은 없다. 세상에 웃기는 배우는 없다. 웃기는 상황과 그러한 시나리오가 있을 뿐. 자연인 오달수로 가자 이런 배역은 없었다. 하지만 좋았던 캐릭터 (배역)라면, 최근 촬영한 <암살>의‘ 포마드’ 역할. 그동안 내가 맡았던 배역에는 없었던, 뭔가 성격을 드러내며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라 매력적이었다. 살짝 소개하자면, 하정우씨와 함께 청부살인업자 역할이며, 냉혈한이 아니라 살인이 하나의 사업으로 비즈니스 선상에 있는 것처럼 여긴다. 음… 더 이상은 얘기하면 안 될 것 같다. 개봉하면 확인하시라. (웃음)

연극을 하다가 영화를 찍게 됐다. 차이점 또는 장점은?
영화는 연극에서 파생된 장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경우 각자의 역할분담이 있고, 이에 따라 스탭들이 조명, 음향, 촬영 등 역할에 맞게 움직인다. 배우는 연기자이므로, 영화든 연극이든 연기를 해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한 것은 영화가 작품을 거듭할수록 어떤 성향의 감독님들(연출, 촬영, 조명 등)을 만나느냐에 따라 표현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많은 작품을 했지만, 영화현장은 언제 나 새롭다. (웃음)

1) < 국제시장>은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지원한 오픈세트에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찍었고 ,영화(드라마) 제작진 숙소 지원사업을 통한 현물지원도 받았다.

그럼 처음 연극은 어떻게 시작했나?
인쇄소에서 홍보물 돌리는 일을 하다 극단 사람들과 친해져서 무대에 단역으로 서게 되었다. 이미 그때 대학공부가 멀어졌다. 연극에 그만큼 애착이 있었고 빠져들었다. 첫 무대에 섰을 때는 관객 앞에서 말하고, 연기하는 것이 부끄럽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이윤택 선생님이라는 대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미 지금은 세계적인 연출가이시고, 그 시절 나는 선생님만의 그 메소드 연기를 굉장히 배우고 싶었다. 이런 귀한 인연으로 배움을 이어가면서, 배움의 쾌락을 느낄 수 있었고 힘들어도 떠날 수 없었다. 선생님은 배우의 기본소양으로 인문적인 바탕을 강조하고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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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는 <구타유발자>(2006)에서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나도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고생도 많이 했고, 애착도 많이 갔던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2시간마다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시나리오를 읽는 데 2시간을 훨씬 넘겨버렸을 만큼 빠져들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역할이고 강한 역할이다 보니, 연기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론 쥐를 만져야 하는 장면 때문에 좀 망설이긴 했다. (2003) 또한 정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님과 송강호 씨와는 최근에 술 자리를 가졌다. 박찬욱 감독님은 내가 시사회장에 갈 때면 늘 뵙는다.

혹시 작품을 선택할 때 선호하는 장르가있나?
사실‘ 호러’ 장르만 아니면 된다. 스릴러는 괜찮은데, 진짜 귀신이 나오는 작품은 힘들다.

박찬욱 감독님과 5번, 송강호 배우와 8번 정도 작품을 같이 했는데, 작품선택에 그 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아니면 작품 이 있는 곳에서 자연스레 만나는 것인가?
박찬욱 감독님 작품은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 그냥 하자고 하시면 하는 것이다. <아가씨들>에는 같이 하지 않을 예정이다. 송강호 씨도 그렇고 대부분 배우들은 촬영 현장에서 만나게 되기도 하며, <변호인>(2013)처럼 같이 하자고 하는 경우도 있다. 좋은 작품에 끌려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그 작품의 촬영현장에 있다. 결국,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최근에 TV예능프로그램에 배우들의 나들 이가 잦다. 꼭 개봉하는 영화 홍보를 위한 출연이 아니더라도(tvN 의 유해진 씨처럼). 하지만 오달수를 예능프로그램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유해진 씨가 정말 한방에 아주 그냥… (웃음) 솔직히 난 예능에 자신이 없다. 섭외는 정말 어느 정도 알려진 프로그램에서 다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다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혼자서 얘기만 하는 편한 예능 프로그램조차도 자신이 없다. 예능프로그 램은 기본적으로 시청자분들을 즐겁게 해드리거나, 에너지를 드리는 등 뭔가 내 역 할이 요구되는 것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 재주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여튼 안 해보고 두려워하는 부분도 있다. 박찬욱 감독님이 영화 <스토커>(2013) 무대인사 때,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는 데 즐길 수 없으면 피한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게 정답인 것 같다. 편하게 즐길 자신이 없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자랐는데 부산에 대한 기억, 에피소드가 있는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 부산에 오랜 기억과 역사를 가진 지역들이었다.
본가가 영도 쪽이다. 내가 자라온 곳들이 질문 주신대로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지역들이며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온, 문화적인 가치를 가진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릴 적, 태풍이 몰아치는 날 친구들과 방파제에 나간 적이 있다. 파도높이가 수십 미터가 되는 이런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파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물론, 태풍 오는 날은 방파제에 못 들어가도록 하지만, 몰래 갔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가 낭만이지만, 분명한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촬영하면 특별한 느낌이 있나? 촬영이 끝난 뒤 동료들을 맛집으로 데려가기도 하는가?
영화제가 열리면서 영화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 부산시민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영화촬영에도 호의적이셨 고, 그런 곳이 부산이 유일했다. 보통은 촬영기간엔 늘 영화팀들이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이지만 자유시간에는 영도 중리해녀촌에 가는데, 그곳은 해녀분들이 갯바위에 해산물을 내놓고 파는 곳이다. 그곳을 소개하면 타지방에서 온 스탭들이 아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그곳에 가면 어떤 감정… 이걸 한이라고 할까. 마치 통곡의 벽에 서 있는 듯, 감정이 벅차오르고 격한 감정이 몰려오곤 한다.

부산은 ‘오달수’에게 어떤 의미인가?
부산은 내 모든 것을 다 시작했던 곳이다.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부산에 와서 한글을 깨우쳤고, 부모님과 살았으며, 처음 친구를 사귄곳, 태풍을 처음 본 곳도, 연극을 시작한 곳도 부산이었다. 인생의 모든 처음을 가르쳐주고, 선택을 하게 해준 고향이 부산이다.

부산에는 자주 오는가?
촬영 들어가기 전이나 끝난 후에 부산에 있는 본가에 간다. 낚시하면서 쉬기도 하고… 물론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닌데, 정말 손이 많이 가고 준비가 많이 필요한 일이더라. 부산에 들러 가끔 돌아다니다 보면, 센텀시티를 비롯하여 부산항대교, 거가대교 등 갈 때마다 변화하고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촬영이 없는 기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는가? 여행을 가거나 즐기 는 취미가 있나?
물론 여행이나 다른 취미활동이 연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다. 그러나 사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들을 만나거나, 가끔 내가 왜 이런 걸 보고 있지 싶을 정도로 TV를 보거나 집에서 정말 가만히 쉬기도 한다. 왜냐하면, 촬영이 없으니까… 그리고 요리는 기본적으로 10가지 정도 한다. 아, 헬스장을 등록했는데 거의 가지 않는다. 오랜만에 가면 “제발 헬스장에 좀 오세요”.라고 독촉할 정도이다.

어떤 인터뷰 기사에서 언급 했던, ‘매일을 살아낸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살아낸다는 말이 너무 거창한 말인 것 같긴 하지만, 정말 그냥 살아 내는 것이다. 중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질문하셨다. 겨울이 고 한창 바람 불고 안 좋은 날씨인데 해녀들이 왜 그 거친 바다에 들 어갈까에 대해 물으셨다. 우리는 답을 알지 못했고 선생님이 그 답을 알려주셨다. 물에 들어가는 이유는 어제도 들어갔기 때문에 오늘도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제도 들어갔으니 오늘도 못 들어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삶이고,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다. 사실 굉장히 거창해 보이는 표현이지만, 이만큼 의미를 잘 드러낸 표현은 없는 것 같다. 삶에 대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 .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죽을 때까지 연기를 계속할 것이고, 관객분들이 저를 오랜 시간 동안 기억하시고“ 아, 이 배우. 이런 연기했던 배우. 어제까지 배우로 활동하던 ‘오달수’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이런 기록이 남는, 관객 분들이 기억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

이후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3월 말부터 다음 작품이 예정되어 있고, 몇 가지 작품은 미팅 중이다. 푹 빠져든 시나리오였던 만큼 최선을 다해 찍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민들에게 남기는 말은?
부산이 영화도시로 알려지고 세계 속에 한국영화의 발전이 나타나고 인정받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전부 부산시민분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을 그 정도로 높여 놓은 것이며, 영화인들도 그런 마음에 끌려서 부산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저 감사드릴 따름이다.

배우가 관객의 사랑을 잃는 것만큼 아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는 배우 오달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는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그를 보며, 직업이 아닌 삶에서 배우로서 살아가는 장인 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린에서 코믹하고 강한 캐릭터로 자주 만났지만, 오늘 우리는 이 시대에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걸어가며 삶과 직업에 대해 진지하고 우직하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 성실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로 살아내기를 응원한다.

06_10작품을 거쳐 가면서‘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상업적인 마인드로 보면 ‘노하우’라 고도 볼 수 있겠지만,‘ 진화’를 거치면서 조금씩 완성을 해간다고 생각한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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