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장소가 최소한 의 윤곽 혹은 추상적 지명으로만 남고 모든 빈틈은 디지털 테크놀로지 로 메워지는 시대가 오면 부산 로케이션은 이제 영화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영주동에서 어린 아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던 내가 주로 드나들 던 극장은 세 곳이었다. 부산역 근처에 흩어져 있는 천보극장, 대도극장, 중앙극장이 그들이다. 중앙극장은 개봉관, 천보극장은 재개봉관, 대도극 장은 이를테면 재재개봉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돈이 없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천보극장과 대도극장에 주로 갔다. 내 생애 첫 영화로 기억되 는 구봉서 주연의 <남자 식모>를 본 것은 천보극장이었다. 초등학교 2학 년 무렵 동네 형을 따라 극장에 갔고, 무슨 무슨 사연으로 부잣집 식모가 된 구봉서가 찌개에 정종을 너무 많이 넣는 바람에 주인인 도금봉이 찌 개를 먹고 술주정을 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대도극장은 더 안 좋은 극장이었다. 천보극장은 난로 한 개가 좌석 뒤편 에 놓여 있어 추우면 영화 보다가 불 쬐러 갈 수도 있었지만 대도극장은 그나마 난로조차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영화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형 을 비롯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대도극장에 갔다가, 아이 요금 10원(아 마 그것도 극장 아저씨의 특별 할인 요금이었을 것이다)이 없어 극장 아 저씨에게 사정사정 했지만 결국 들어갈 수 없었다. 그때 형과 나는 합쳐 서 15원밖에 없었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극장에 들어가고 난 뒤, 울면서 형과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중앙극장은 용돈이 조금은 더 늘어난 중학생 시절에 자주 갔다. 한국-홍 콩 합작 무술영화들이 붐을 이루던 1970년대 초중반이었고 갖가지 무술 영화를 보고 깊이 고무된 나머지 무술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뒤, 나름의 훈 련을 하느라고 집 마당에 싸여 있던 연탄재들을 박살 냈다가 엄마에게 혼 이 났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오우삼이 공동 감독을 맡은 <용호문>(1975년 작품이며, 2007년에 리메이크됐다), 자료에도 남아있지 않은 <철사장과 공수도> 같은 영화를 보고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초량 일대의 극장가가 유혹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른바 텍사스촌이 라 불렸던 그곳이 아이들 사이에서 예쁜 누나들이 헐벗고 다니며 운만 좋으면 허름한 여관 문틈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는 풍문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극장에 가는 기회에, 아니 아무 할 일이 없이 도 그곳을 몇 번이나 어슬렁거리며 그 행운을 누리길 기대했지만 내게는 한 번도 그런 행운이 찾아와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말 그대로 풍문뿐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초량 일대의 그 극장가들은 학교에서는 금 지된 세계가 펼쳐지거나 잠복해 있었던 곳으로 그 또래 우리들에게는 어 둡고도 신비한 별천지였다.
물론 그 극장들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일이 잦은 나는 가끔 초량 일대를 둘러보지만 옛 기억이 새겨진 공간을 만나는 일 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혹시나 해서 찾아가본 영주동 508번지에 있던 과거의 집도 소방도로가 뚫리면서 골목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내가 많이 좋아하던 여자 아이가 살던, 우리 집에서 몇 집 건너 있던 피아노 집도 자취를 찾기 힘들다. 부산에서 15년 넘게 살았지만 내 성장의 기 억이 새겨져 있는 공간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 바뀐 공간들 혹 은 공백 앞에서 내가 그 때 어디 있었던가를 기억해낼 수 없다. 생산성이 낮으며 허름하고 낡은 장소를 삭제할 것. 매끈하고 효율성 높 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것. 한국의 다른 모든 장소와 마찬가지로 부산 도 이 근대적 공간 개발의 계율에 따라 숨 가쁘게 변모해왔다. 서울의 친척들이 오면 갔던 해운대의 한적한 풍경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사 돈 누나의 미끈한 다리를 쳐다보며 울렁거림을 멈출 수 없었던 허름한 민박집 마당도 모두 사라졌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감상적인 회고이다. 그러나 사적 기억 이 새겨진 공간들의 끝없는 삭제가 다만 개인적인 푸념의 문제에 지나 지 않는 것일까? 몇 해 전 서울 인사동 일대의 소위 피맛골 재개발이 시 작될 때 논란이 있었다. 피맛골은 짧게는 십 수년, 길게는 50년 이상 된 식당과 술집들이 오롯이 모여 있는 오래된 거리였다. 홍성태 교수는 “도심재개발 계획이 문화재 복원과 환경친화를 앞세웠을 뿐 본질적으 로는 서울시의 원형 파괴라는 점”을 비판했다. 하지만 결국 개발 계획 은 실행되었고, 전통과 기원의 공간임을 내세운 장소에서 오래된 것은 삭제되고, 새로운 것이 더 오래된 것의 외피를 두르고 나타났다. 이것은 물론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늦게 잡아도 1970년대 이후로 계 속된 현상이며, 우리는 개발이 약속하는 달콤한 실리와 무언가의 지속 적인 사라짐 사이에서 숨 가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곤 궁 앞에서 개발의 계율에 감상적인 기분으로 무조건 저항할 수 없다 해 도, 그 사라짐의 체감된 공허감이 그에 비례해 더욱 깊어지는 것도 어 쩔 수 없다. 하지만 국제적 영상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시의 경우에는 사 소해 보이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제 10주년을 경과한 부산영상위원회는 잘 갖춰지고 원활히 지원되 는 스튜디오와 다양한 로케이션 서비스를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스튜 디오는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적 지원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겠지만, 로 케이션도 앞으로 계속 영화인들에게 그렇게 매력적일 수 있을까? 영화 는 어떤 의미에서 기억의 장소 혹은 장소의 기억이다. 예컨대 내가 감 독이라면 성장기를 영화에 담으려 할 때, 어쩔 수 없이 내 기억이 새겨 진 공간을 찾고 싶겠지만, 지금 그것이 부산에서 가능할까? <친구>에 기록된 부산의 공간들 중에서 지금 얼마나 그대로 남아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게 될까? <밀양>의 이야기를 부산에서 찍는 것이 가능했 을까? 혹은 봉준호는 왜 <마더>를 전국 20여 개 지역에서 나눠서 찍어야 했을까? 유럽영화를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은 예컨대 19세기 나 20세기 초를 무대로 한 영화들도 종종 세트 없이 로케이션으로 촬 영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는 1960년대를 찍으려 해도 세트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전혀 다른 각도의 질문도 가능하다. <아바타> 처럼 모든 공간을 가상으로 창조하는 영화들이 일반화된다면 로케이션 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어떤 대답을 말하기 위해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어느 곳보다 빠르고 전면적으로 시간이 새겨진 공간을 지워가고 있는 이 땅 에서 기억의 장소로서의 영화가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혹은 디지털 시대에 실재 공간들의 지역성 혹은 그것에 새겨진 시간의 기억 이 점점 무의미해진다면 그래서 우리의 개발 계율과 그것이 어떤 의미 에서건 화합한다면 그건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인가? 우리는 그런 테 크놀로지의 완비에만 열중하면 되는 걸까?
2009년 2학기에 맡게 된 영화비평 강좌에서 한 학생은 영화 <해운대> 에 대해“ 이 영화에 부산이 어디 있는가. 지역민들이 살 비비고 울며 웃 는 생활공간이 어디 있는가”라는 질문을 토대로 쓴 비판적인 리포트를 제출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영화의 미학적 측면에 좀 더 집중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의 질문은 계속 머리를 맴돈다. 영화에서 장소가 최소한 의 윤곽 혹은 추상적 지명으로만 남고 모든 빈틈은 디지털 테크놀로지 로 메워지는 시대가 오면 부산 로케이션은 이제 영화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애매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이 질문을 생각하며 2010년을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