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20년, 부산영상위원회 16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영화도시, 부산’을 위해 보였던 행보에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갈등들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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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부산영상위원회의 창립 이래 촬영을 지원한 영화와 영상물이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900편을 기록했다(편집자주_2015년 현재 966편 완료). 20년도 채 되지 않은 부산영상위원회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원한 영화 편수로만 부산영상위원회의 성과에 대해 왈가불가할 수 없다. 그럼에도 2000년대 초반부터 부산영상위원회의 행보, 즉 영화촬영 유치와 행정지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영화도시 부산’이라는 브랜드를 확립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900여 편이라는 숫자를 통해 부산영상위원회의 성공 또는 실패를 논한다는 사실은 우습다. 하지만 당장에 분석·통계자료 등을 통해서만 실적물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관료)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러니 900편의 영화들을 통해 부산영상위원회의 16년을 추적할 수 있으며 짧은 기간 동안 달성한 이 성과를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때, 부산영상위원회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만족하고 안주한다면 영화도시 부산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전국의 지자체에서 영화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들었다. 부산영상위원회도 타 지역과의 차별성 및 전략적 관점이 필요한 시기가 온게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해서 부산영상위원회도 잘 이해하고 있는듯 보인다. 부산영상위원회는 2009년 부산영상후반작업시설까지 원스톱 촬영이 가능한 인프라 시설을 갖추었고, 2012년에는 급변하는 디지털 촬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On-set Pre-visualization 시스템을 갖춘 3D프로덕션센터 ‘디지털베이(Digital Bay)’를 개관하기도 했다. 또한 기존의 영화촬영스튜디오를 리모델링하여 가상현실을 재현하는 버추얼스튜디오 시스템도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해 영화 <몽타주>(2012)와 MBC드라마 <7급 공무원>(2013) 등의 촬영을 완료했다. 이를 통해 부산영상위원회가 더 이상 부산에서 촬영하는 영화들의 촬영지원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도시 부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 보인다.
이제 부산에서 영화나 영상물(CF·뮤직비디오·드라마 등)을 촬영하고(소비) 떠난다는 것은 옛말이다. 부산은 영화도시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부산시의 물적 지원뿐 아니라 부산에서 영화후반작업이나 스튜디오 작업 등의 기술적인 작업도 가능해졌고, 그 외에 중앙동에 위치한 ‘모퉁이극장’은 실험영화의 저변확대와 관객들의 영화 안목을 넓히기 위하여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와 신예작가의 작품을 상영했다.(‘엑시코너스’, 8.27~8.30) 부산의 소규모 모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독립영화를 초청해 시민들과 함께 보는 등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공간초록’ 등) 부산일보사의 경우 ‘부일영화연구소’를 출범해(2015.09.01) 부산영화산업포럼 등을 개최하는 등 영화도시 부산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지자체뿐 아니라 영화관련 단체, 시네필(시민) 등이 주축이 되어 365일 매일 영화가 촬영되고, 상영되고, 논의할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활동으로 읽힌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과 활동이 지속된다면 영화학도들이 부산을 떠나지 않고 부산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영화학도들 모두를 수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기는 하지만…
이 지점에서 ‘영화도시 부산’을 만들고자 현장에서 발로 뛴 부산영상위원회의 활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도시 부산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부산 곳곳을 영화촬영지로 만드는 것이다. 먼저 2000~2004년까지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촬영지원한 작품을 살펴보자. 사실 이 시기는 한 해에 20편 안팎으로 적은 수의 영화를 촬영지원했고, 올로케이션 작품도 일년에 2~4편 내외다.1) 이 숫자만 보면 부산영상위원회는 2005년(30편의 영화 촬영지원) 이전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헤매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2006년에는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촬영지원한 영화가 43편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나고, 그 중 14편의 영화가 올로케이션 촬영이다. 2007년도의 경우도 2006년과 비슷한 편수를 촬영지원하며 부산영상위의 역할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2005년까지 2~3편밖에 없던 올로케이션 지원이 단 일년 만에 3배 이상 높아진 데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이후 10년을 맞이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의 지지와 더불어 안정기에 접어든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명실 공히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성공이 ‘영화도시 부산’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한층 높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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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현재까지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촬영지원한 작품 900여 편을 검토하면 부산과 영화에 대한 사유가 변화하기 시작한 때가 2005년 이후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시기부터 ‘부산지역영화’ 3) 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부산 공간을 사유하는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2006년에는 영화 촬영지원 사업을 한국영화에만 한정하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띤다. <착신아리 파이널着信アリ ファイナル>(일본, 2006), <키사라즈 캐츠아이木更津キャッツアイ>(일본, 2006), <소년 부산을 만나다ボーイ・ミーツ・プサン>(일본, 2007)를 시작으로, 2007년에는 <히어로ヒ-ロ->(일본, 2007),<꽃의 그림자花影>(일본, 2007), 2008년 <그리움의 종착역Endstation Der Sehnsuchte, Home From Home>(독일/한국, 2009), <춤추는 닌자의 전설The Legend Of The Dancing Ninja>(미국/한국, 2009) 등 현재까지도 꾸준히 해외작품 촬영을 지원하고 있다. 다음으로 부산에서 촬영한 영상물에 주목할 수 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30~40편 정도의 영상물이 부산에서 꾸준히 촬영되다가 2013년도에는 54편, 2014년 57편으로 영상물 촬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 중에서도 몇 편의 광고는 부산공간과 상품의 특징적인 면을 결부시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특히, 2008년과 2014년 부산에서 촬영된 광고들은 주목할 만하다. 2008년도 맥주(하이트), 청바지(뱅뱅), 도넛(던킨), 치킨(맥시카나) 등의 광고들이 해운대와 송정 해수욕장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부산을 떠올리면 해수욕장이 생각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부산에서 광고촬영을 한 상품 중에서 부산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허나, 위 상품들은 부산 바다를 배경으로 ‘젊음’이라는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청년들은 뜨거운 여름의 해수욕장에서 치킨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주변에는 청바지를 입은 연인들이 산책 중이다. 건강함과 발랄함을 표현하기 위해 이들 광고는 한여름의 부산 바다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자이)의 세련되고 우아함을 강조하는 데 있어서도 최첨단 도시 해운대는 빛을 발한다.
2010년 이후부터 ‘부산=청춘(젊음)’의 이미지는 더욱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자동차’ 광고에서 잘 드러난다. 2010년 기아자동차 광고로 시작해, 2014년 ‘르노삼성 SM3/QM5’, ‘기아 K5/K7’(기아 K7 광고는 교량에서 달리는 자동차 뒤로 멋진 곡선의 현수교와 마린시티의 고층 빌딩이 배경으로 등장), ‘쉐보레 스파크’, ‘현대 투싼’, ‘토요타 캠리’를 비롯한 국내외 자동차 광고들이 촬영을 했거나 촬영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 자동차 광고들에 등장하는 공간이 바로 ‘광안대교’이다. 광안대교가 자동차 광고 촬영지로 인기를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다-젊음(스피드)-자동차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 길게 뻗어 있는 도로, 마린시티 등의 고층빌딩 등이 이국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자동차 광고가 원하는 이미지를 두루 갖췄다고 평가를 받는다.4) 실제로 광안대교는 2003년 개통이후 부산의 최대 자랑거리인 동시에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더불어 광고를 찍기 위해서 자치단체의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부산은 부산영상위원회를 통해 그 절차가 신속히 이루어지는 점도 광안대교를 촬영장소로 찾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올해부터 광안대교와 더불어 새로운 촬영지로 떠오른 곳이 있다. 지난해 5월 개통한 부산항대교로 2014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만 자동차 광고 4편을 촬영했다고 한다.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는 빠른 스피드를 느낄 수 있는 직선과 곡선의 이미지, 이국적인 풍광 등으로 앞으로도 광고촬영지로 각광받을 것이라 판단된다.
이외에도 가수 싸이 <대디>와 위너의 <컬러링> 등의 뮤직비디오에서 수영만 요트경기장과 동백섬 등이 노출되면서 10~20대들이 관심을 가지는 장소가 되었다. 스토리가 중심인 영화의 경우 부산 중구지역(남포동, 좌천동, 부산항 등지)이 영화 촬영지로 주로 활용되고 있다면, 단시간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아야 하는 CF나 뮤직비디오 등의 영상물에는 해운대 마린시티와 센텀시티 같은 고층빌딩이 밀집된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 이미지, 즉 ‘젊음’이 적극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다르게 포착하기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부산영상위원회는 2005년 이후부터 변화를 꾀한다. 그것은 앞으로 일회성에 그치는 촬영지로 부산공간을 소비할 수 없음을 인식했다는 뜻이고, 다음으로 부산과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사유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2009년부터 그 면모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2009년,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촬영지원한 30편의 영화 중 올로케이션 작품은 단 한 편도 없다. 그러나 이 ‘없음’이 필자에게는 약 3년 간 영상 매체에서 무자비하게 소비되던 부산공간을 더 이상 동어반복(실제로 현재까지도 부산공간에서 20회 이상 촬영한 영화들을 검토하면 남성영화가 많다. <비열한 거리>(2006), <무적자>(2010), <범죄자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신세계>(2013))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물론 영화 속에서 무분별하게 노출된 부산공간(부산중구 쪽)이 대중(관객)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으로 비쳐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해외지원 사업과 영상물 등의 촬영을 지원하면서 그 변화를 맞이했다면, 영화에서 보다 내실을 맞이한 시기는 2009년부터다. 이 시기 부산에서 촬영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없지만 부산영상위원회는 ‘지역영화’의 미래를 위해 지역영화 혹은 지역의 감독과 영화학도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이는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촬영지원한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바람>(2009), <부산>(2009), <영도다리>(2010), <이파네마 소년>(2010), <심장이 뛰네>(2011), <수상한 이웃들>(2011), <데드라인 블루>(2010) 등이 부산지역영화로 명명된다. 그 후 부산영상위원회는 매해 2~3편씩의 부산지역영화의 촬영을 지원하고 있다.5)
이 영화들은 스토리나 영화 기술적인 면 이외에도 부산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민과 방황을 다루거나(<바람>(2009), <도다리-리덕스>(2012), <디렉터스 컷>(2014)) 인물의 내면을 디테일하게 포착하고 있거나(<이방인들>(2012)), 장르적인 면에서도 다양한 시도(<심장이 뛰네>(2010), <수상한 이웃들>(2011))를 펼치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부산을 소비하던 상업영화들과 달리 부산지역영화는 다양한 시선으로 부산공간과 인물들을 통찰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있어 보인다.
‘부산지역영화’나 ‘영화도시 부산’을 논할 때, 이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론과 논리로 무장해 자신이 하는 비판과 옹호야말로 정답인 듯 상대에게 논리를 강요했다. 그것이 마치 영화도시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듯. 하지만 그 전에 기억해야 한다. 그 비판과 옹호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지역의 영화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차후에는 필요하지만 당장은 불필요한 작업이다. 부산의 아니, 한국의 영화산업, 영화예술을 위해서 현재 어떤 기획(미래 전략)이 필요한가를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제작되고, 어디서든 영화를 논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이를 위해 영화학교를 개설하는 등 교육사업(아카데미)이 생겨나고, 마켓을 만들고, 영화 포럼이 곳곳에서 개최되어야 하지 않을까.
부산국제영화제 20년, 부산영상위원회 16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영화도시, 부산’을 위해 보였던 행보에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갈등들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이 영화에 가진 관심(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 <다이빙 벨>(2014)을 향했던 시선)은 아직 여전하다. 이를 기억한다면, 부산영상위원회 16년의 기록은 아직 걸음마 단계가 아닐까 싶다.
1) 부산영상위원회는 2000년 장편영화 10편을 부산에서 촬영지원했고 올로케이션 작품은 <범일동 블루스><나비><천사몽><친구>가 있다. 2001년에는 13편의 장편영화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달마야 놀자> 2편을 올로케이션 지원하며 영화 찍기 좋은 도시 부산을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진다. 2002년의 경우 19편으로 촬영지원한 작품이 늘었고 올로케이션 촬영으로 <H><플라스틱 트리>
가 있다. 2003년도는 <듀얼 인 부산><FACE><돌려차기><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올로케이션 작품 4편이 주목받았으며 부분 촬영지원 작품도 24편이나 된다. 2004년은 03년도에 비해 18작품으로 줄었지만 올로케이션 지원을 받은 <우리 형>이나 <달마야 서울 가자>가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다. 2005년도부터 부분, 올로케이션 지원을 받는 작품 수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다.
2) 2006년 올로케이션 작품으로 <1번가의 기적><해바라기><마음이><뷰티풀 선데이><쏜다>가 있고, 눈에 띄는 작품으로 <라디오 스타><타짜> 등을 들 수 있다. 2007년도에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촬영지원한 영화편수는 43편이고, 그중 13편의 영화가 올로케이션 작품이다. 이 시기 대표작품으로 <마이뉴 파트너><사랑><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이 있다.
3)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지역영화’를 부산에서 자생적으로 제작되는 영화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4) ‘세련된 마천루, 이국적 바다가 TV로… 부산촬영영상물 작년 57편 역대 최고’, <국제신문>, 2015.03.10
5) 2009년 이후의 대표적인 부산지역영화로 2010년 <이방인들><작별들><고래를 찾는 자전거><어디로 갈까요><카멜리아>, 2011년 <미스진은 예쁘다>, 2012년 <엘콘도르파사><디렉터스 컷>,
2014년에 <파란 입에 달린 얼굴><운동회><소시민> 등이 있다. 2013년의 경우 부산지역영화보다 올로케이션 촬영한 작품 중에 <깡철이><친구2><국제시장> 등이 눈에 띤다. 또한 <못><악사들><영도> 등을 촬영지원했는데, 이 영화들을 연출한 젊은 감독들의 작품도 눈여겨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