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이 영화를 접하는 방식 이 변화하면서 이제 영화제들이 회고전과 특별전의 전략과 목적에 대해 재평가해 볼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에서 회고전(Retrospectives)과 특별전(Special Sections)이 없다면 그 재미가 덜할 것이다. 회고전과 특별전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영화제의 성격과 개성을 규정하는 주요 방식 중의 하나인데, 전설적인 1997년 김기영 감독 회고전은 당시 신생 영화제였던 부산국제 영화제가 뜻밖의 영화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제라는 명성을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후 이어진 유현목, 신상옥, 김수영, 이만희 감독들의 회고전으로 부산국제 영화제는 더욱 더 활기를 띠었다.
성공적인 회고전은 영화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일 수 있지만, 회고전을 잘 해낸다는 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회고전의 프로그래밍과 마케팅에는 특별한 기술의 조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현 시대에서 영화제 회고전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기술 혁신과 습관의 변화로 인해 사람들이 영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게 되면서 영화제들도 당연히 이에 영향을 받게 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회고전이라는 것은 관객들에게 다른 방법으로는 보기 어려운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가졌었다. 일본 영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화애호가에게 이마무라 쇼헤이 (Imamura Shohei) 감독의 회고전이란〈돼지와 군함〉(Pigs and Battleships, 1962년)이나〈인류학 입문〉
(The Pomographers, 1966년)과 같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의미한다.
애호가에게 이런 기회는 이전에 있었다 하더라도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에, 이 영화들을 보기 위해서라면 먼 곳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갈 의향이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희소성이라는 것이 회고전이나 특별전을 보게 하는 주요 동기가 되었는데,관객들은 아마도 “이번 기회에 돼지와 군함을 보지 않으면 언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잖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012년에도 여전히 다양한 이유로 이마무라 감독의 회고전에 대해 기뻐할지 모르겠으나, 상황은 다소 달라졌다. 무엇보다 과다한 선택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희소성이라는 것은 더 이상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돼지와 군함〉〈인류학입문〉 두 작품 모두 크라테리온 (Cnterion) 사에서 원본 복원판 DVD가 출시 되었고, 이마무라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VOD나 아이륜즈 (iTunes)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 다. 물론 이마무라 감독의 작품 중 덜 알려진 작품들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만약 이마무라 감독의 전 작품을 보기로 결심했다면 회고전 상영을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사의 특정 시대에 대한 전문가를 제외 하고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저 좋은 영화를 찾는다. 그리고 영화 팬들에게는 언제나 좋은 영화가 넘쳐난다. 영화제에서는 회고전 외에도 수십 수백 개의 영화를 볼 수 있고,집에서도 일 년 내내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선택의 방법이 있다.
시대 변화의 물결에 따라 영화제 회고전의 의미 또한 변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회고전을 “영화를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설명하는 부분에 있어 다소 회의적이다. 그것이 사실 일지도 모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회고전을 기획 하는데 있어서는 그보다 더 나은 이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회고전 상영작들이 매우 수준 높은/훌륭한 작품들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평균 수준의 영화제에서도 수준 높은/훌륭한 작품들은 넘쳐나니까 회고전의 작품이 희소성을 가지고 수준이 아주 높은 것은 좋을 일이나,이를 넘어 회고전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많은 국제 영화제를 둘러보는 것은 아니지만,꾸준히 흥미로운 회고전을 개최하는 영화제의 하나로 스페인의 산세바스찬 국제영화제 (San Sebasti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를 꼽고 싶다. (비고: 나는 이 영화제에서 프로그램 컨설턴트 역할을 맡고 있지만, 지금까지 회고전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에서는 매년 세 개의 회고전을 여는데,최근에는 2000-2010년대 다큐멘터리 40편에 대한 특별전,20세기 일본 느와르 영화 회고전 43편,자크 드미 (Jacques Demy) 감독 회고전 21편이 마련되었었다.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의 두꺼운 프로그램 안내 책자들도 출판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중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특별전이 특히 흥미로웠는데,다큐멘터리의 형태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또 가장 중요한 현대적 추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상영된 다큐멘터리 대다수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었는데, 이는 관객에게 희귀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다큐멘터리의 현주소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들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회고전은 논쟁을 제시했고, 프로그램에 선택된 영화들은 그 안에서 각각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좋은 회고전이란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과 태도, 토론을 이끌어 내는 것
회고전을 기획하는데 있어 이러한 생각과 창의성이 있기에 회고전들이 흥미로울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큐멘터리 회고전을 더욱 열심히 보게 되었는데,이는 이 회고전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주는 방식으로 소개 되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회고전이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데 있어 특별한 감정(mood)이나 태도(mindset) 또는 관점 (perspective)을 만들어 내고,또 이를 바탕으로 토론을 활발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어떤 식으로 관객들에게 회고전이 보여 지는지가 특히 중요하다. 일부 정치인들이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보다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일부 프로그래머들도 더욱 효과적으로 회고전의 요점을 소개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회고전의 제목조차도 관객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토론을 일으켜내면서 회고전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회고전의 메시지 전달과 마케팅에 대한 시도는 기자의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당신이 만약 회고전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한다면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이 있는가? 혹시 한 두 문장으로 요약되는 거라면, 그걸로는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회고전에는 역사적 관점도 담겨 있는데,회고전에 상영되는 영화들이 현재 영화들에 대해 비교 또는 대조의 영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코리안 뉴웨이브(Korea New Wave, 1988-1996년) 혹은 1970년대 영화들이 현재 한국 영화들과 비교할 때 아주 재미있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에 지금이 이 영화들을 재조명해 볼만한 아주 흥미로운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냥 우연 일지도 모르지만,올해 부산국제 영화제의 신영균-사극 드라마에서 특히 왕 역할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한 배우-회고전이 영화〈광해,왕이 된 남자〉와 재미 있는 비교를 이룰 것이다
최근 대중이 영화를 접하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이제 영화제들이 회고전과 특별전의 전략과 목적에 대해 재평가해 볼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희귀한 영화를 볼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는 확실히 칭찬할 만하지만, 그밖의 다른 목적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고전은 영화제 내 다른 상영작들 사이에서 그 존재의 의미를 잃어 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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