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이야기 천만관객영화를 통해 부산 읽기- 김필남 영화평론가

하지만 천만관객영화 11편 중 8편이 역사를 다루고 있고, 6편이 부산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천만관객영화와 부산
영화진흥위원회 역대 박스오피스 공식통계 기준에 따르면, 천만관객영화(국내 기준)는 <명량>(2014), <국제시장>(2014), <괴물>(2006),
<도둑들>, <7번방의 선물>(2013),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왕의 남자>(2005), <태극기 휘날리며>(2004), <해운대>(2009), <변호인>, <실미도>(2003) 총 11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11편의 영화중에서 부산에서 촬영된 영화가 6편이나 천만관객을 모았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연출가의 능력, 시나리오의 탁월함 또는 부산시의 정책과 적극적인 후원 등의 문제로만 소급하여 보기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취향과 그날의 분위기 등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천만관객을 불러 모은다는 것은 각 연령층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공통적 감성’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천만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천만관객영화 11편 중, 특히 부산에서 촬영되었다는 공통분모를 가진 영화 <국제시장><도둑들><태극기 휘날리며><해운대><변호인><실미도>는 어떻게 관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을까? 그것은 과연 부산이라는 지역(성)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좌절과 실패의 지역
부산에서 촬영된 천만관객영화들 중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관객들이 역사영화에 매료된다는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영화는 지배담론과 공적인 역사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지배기억과 대항기억의 경합을 통해 늘 재구성된다(<꽃잎>(1996)과 <화려한 휴가>(2007)가 보여주는 5.18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재현한다. 또는 이순신을 재해석 한 <명량> 등). 즉 영화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새로운 역사 쓰기)로 재현 가능해진다. 그것은 팩션이면서 과거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점은 역사영화가 단지 즐거움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성찰적인 과거인식이 전제되어 등장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부산에서 촬영된 역사영화는 ‘지역’을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영화를 살펴보면 1950년 한국전쟁에서 두 형제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 1970년 북파목적의 비밀부대를 다룬 <실미도>, 1980년 부산 부마항쟁의 <변호인>, 한국전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는 <국제시장>을 들 수 있다. 이들 영화는 공통적으로 과거의 역사를 중요 장치로 사용하면서 지역을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으로 취급하고 있다. 대체로 영화에서 지역을 명명할 때 피난 도시(<태극기 휘날리며>), 죽음의 도시(<실미도>), 저항의 도시(<변호인>), 생활의 도시(<국제시장>)로 불려온다.

역사적으로 지역은 수없이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다. 1948년 제주4.3 사건, 1960년 3.15의거, 4.19혁명,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5.18민주화운동 등. 지역은 독재에 저항하며 늘 중심과 대립각을 세웠으며, 현재도 광주나 경남 등은 투쟁과 저항의 수난사를 가진 도시로 명명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역사적 또는 어떤 한 사건을 영화화할 때 지역은 저항과 수난사를 경험한 도시로 재현되고 있음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화려한 휴가>, <이리>(2008), <살인의 추억>(2003), <밀양>(2007) 등).

부산에서 촬영된 천만관객영화가 아닌 영화 <명량><왕의 남자><광해, 왕이 된 남자>의 경우 명령을 내리는 ‘리더(왕)’가 주인공인데, 이들은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겪지만 결국 ‘적’을 무찌르고 승리한다. 이 영화들은 지역에 의미를 두지 않고 역사 상황 속에서 인물의 고뇌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동적 서사에 관심을 둔다. 팩션, 즉 사실과 창의력의 만남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변호인><국제시장>의 경우 역사적 사건 속에 지역 그리고 지역에 살고 있는 인물의 삶을 의미화 하고 있다.

부산에서 촬영된 천만관객영화 속 인물들은 리더가 아닌,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으로 ‘어쩔 수 없이’ 역사 속으로 끌려온 사람들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지역민들의 삶이 무난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쟁과 독재정권, 87년 체제로 이어지는 수난사를 겪은 지역은 피난민들을 끌어안는 도시(한국전쟁기의 ‘부산’)가 되거나, 탱크에 짓밟히며(5.18 ‘광주’)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도시가 되기에 지역민들의 경우도 살아남기 위해 거칠고 억척스러움으로 명명되기 일쑤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발적 선택이든, 누군가의 강요든 시련을 겪는다. 물론 이 고난의 과정은 대부분 감동적 서사를 이끌어내지만 이들은 대체로 시련 끝 행복이라는 도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일상이 무너짐을 경험한다. 국가(=역사)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개인은 어찌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패를 경험하는 인물이 사는 공간 ‘지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산에서 촬영된 천만관객영화는 그 공간이 지역임을 최대한 알려주거나(<변호인>) 혹은 서울에서 떠나 그곳이 외딴 섬임을 주지시키고(<실미도>), 지역성이 드러나는 인물(사투리를 사용하거나, 부산 향토음식점을 운영하는 인물 등)들을 통해 서사가 진행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서울과는 다른 지역의 서사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변방’에 두는 작업과 동일하다. 부마사건으로 고통 받는 대학생, 집을 떠나 지역으로 피난 온 가족, 외딴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31인. 이 인물들은 독재정권에 저항하거나, 왜 자신이 비극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인물들의 좌절을 경험하는 지역은 폐허 도시, 서로가 믿지 못하는 불신의 도시로 전락했음을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하게 말해 서울(중심)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실패할 수 없다. 서울은 좌절이 아니라, 성공의 도시여야 한다. 서울의 좌절(실패)은 국가의 좌절과 다를 바 없기에, 서울은 과거가 아닌 미래(첨단도시)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에도 역사는 중심화 되지 않고 픽션에 치중한다. 반면 지역은 서울에 의해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도시, 변방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중심’에서 밀려난 아버지들의 서사
그런데 관객들은 좌절과 실패의 서사를 보고자 극장에 가지 않는다. 극장의 불이 꺼진 순간부터 관객은 영화 속 주인공에게 동일시(몰입)의 감정을 느낀다. 이 주인공은 실패가 아니라 감동적 서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말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좌절과 실패의 서사처럼 보이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영웅’을 경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물론 그것은 <명량>의 이순신이나 <광해>나 <왕의 남자>에서 보여주는 왕들의 서사를 통해 통쾌함을 전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서 촬영된 천만관객영화들은 이들 영화와는 반대 선상에 있다. 명령을 내리는 ‘왕’의 서사가 아닌, 지역에 살고 있는 바로 ‘우리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우리네 ‘아버지’를 닮아 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언젠가는 영웅이었으나 현재는 힘을 잃은 중년층의 이야기다. 중년층이라 하면 중심에서 멀어져 주변부로 밀려난 세대, 좌절과 실패가 일상이 된 삶을 뜻한다. 과거에는 짱짱했지만, 지금은 힘없고 나약한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부산에서 촬영된 천만관객영화 중 <국제시장>과 <변호인>의 주인공이 이에 속한다. 고난한 시대일수록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는 법 아니던가. 그러나 이 두 편의 영화 속 영웅은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아닌 ‘소시민’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네 아버지와 다르지 않고, 옆집 아저씨이며, 누군가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순신과 같은 민족적 영웅은 아니지만 바로 나의 영웅, 우리들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 <국제시장>의 경우 다른 영화들이 어떤 한 특정 시기를 다루는 것과 달리 주인공 ‘덕수’가 한국전쟁(50년), 베트남전쟁(70년)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를 겪은 후 부산 국제시장에 뿌리를 내린다. 이때 갖은 고초를 겪고 겨우 자리를 잡은 덕수는 이 시대 아버지의 표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일보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가치를 찬미하는 낭만적 이해와 그 일이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모든 국민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정형화 하고 있다. 그리고 허구든 과거든 이 모든 것은 현재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역사적 사실을 현실에 이식하고 이로써 그 의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현재에도 자주 볼 수 있는데(<명량>의 이순신이 보여주는 것) 이는 영화가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덕수가 살고 있는 부산은 모든 사건에서 밀려나고 죽음을 기다리는 장소로 등장한다. <국제시장>의 첫 장면, 카메라는 국제시장 · 자갈치 · 영도의 전경을 비춘 후 덕수 부부를 클로즈업 한다. 노인 덕수는 자신의 꿈이 선장이었음을 아내에게 말한다. 꿈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덕수는 굵직한 역사를 관통하며 끈질기게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덕수는 한때 자신의 일터였던 국제시장을 손녀의 손을 잡고 배회한다. 손녀에게 옛 기억을 들려주는 그는 현재에 있지만 과거(역사)의 기억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과거는 배고프고 힘든 시기였음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사실 덕수가 돌아가고 싶은 것은 과거가 행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노동을 하는 것, 노동을 통해 가족의 ‘중심’에 들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한 것은 사회와 가족의 중심에서 밀려나 그가 힘없고 나약한 노인임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심에서 밀려난 아버지, 한때는 영웅이었던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공간이 바로 ‘부산’이다. 물론 이 공간은 부산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느 곳이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서울만은 될 수 없다. 서울은 과거가 아닌 현재, 미래의 도시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을 지우는 영화
천만관객영화로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지는 부산을 그린 영화 <해운대>와 아시아 지역을 넘나들며 누군가를 속고 속이는 영화 <도둑들>도 있다. <해운대>의 경우 부산 해운대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지역성을 과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부산을 ‘쓸어버리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영화이다. 그런데 쓰나미가 휩쓸고 간 것은 부산(성)이 아니라, 최첨단 고층빌딩들의 무너짐이다. <해운대>는 부산의 파국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부산이 보여주는 최첨단(미래)의 이미지를 밀어버리고, 다시 부산(부산성, 복고)을 복구하려는 의지처럼 보인다.

영화 <도둑들>의 경우 부산은 아시아를 관통-연결하는 지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어디든 누구든(‘도둑’이라고 해도) 자유롭게 떠나고 다시 올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항)인 것이다. 그래서 <도둑들>의 부산 촬영지로는 제5부두, 여객터미널, 선착장 등이 등장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 드러나는 장소가 부산임을 인지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부산은 단지 풍경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을 뿐 부산도시가 의미화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영화들 모두 부산은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둑들>에서 보여주는 ‘풍경’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천만관객영화 속 부산은 이미 정형화된 이미지(복고 도시, 사투리)로 그려지며, 다른 지역으로 대체 가능한 ‘변방’의 의미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천만관객영화들은 역사 · 지역 · 소시민의 삶을 내세움으로써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이를 흥행에 성공한 이유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천만관객영화 11편 중 8편이 역사를 다루고 있고, 6편이 부산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모든 이유에 해답을 찾을 수 없지만, 이런 시선으로 천만관객영화를 읽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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