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에서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으로 대한민국 가장 인기 좋은 배우의 이미지도 굳혔다. 그를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다.
고창석(41)이라는 배우가 있다. 2008년 영화 <영화는 영화다>(장훈 감독)를 통해 얼굴을 살짝 알렸고 지난해 <의형제>(장훈 감독)에서 베트남 보스역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올해 <퀵>(조범구 감독)과 <고지전>(장훈 감독)에 잇따라 출연해 대박을 터뜨렸다. 이제는 웬만한 영화에는 모두 얼굴을 내미는 바쁜 배우가 됐다. 무엇보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에서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으로 대한민국 가장 인기 좋은 배우의 이미지도 굳혔다. 그를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다.
>> 고창석에게 부산은?
고창석은 부산 출신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28년 동안 살았다. 그래서 부산을 가장 사랑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아직도 그의 말투나 억양에는 부산 냄새가 강하게 배어 있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6일 BIFF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을 밟자 고향 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의 얼굴에서는 감격이 읽혔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고창석은 올해 처음으로 BIFF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것 뿐만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BIFF에 놀러온 적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그는 철저하게 무명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만사를 제쳐놓고 부산으로 달려왔다. 전날 밤까지 충북 단양에서 새롭게 시작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김주호 감독)를 찍었지만 피로한 기색도 없었다. 고향 부산은 그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고창석에게 고향 부산을 무리하게 들이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가 오늘날의 배우로 성장하게 된 발판은 아이러니하게 고향 부산을 떠난 뒤다. 1998년. 서른을 앞둔 고창석은 큰 결심을 했다. 연기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서울예술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부산을 떠난 것은 이때다. 그에게 부산의 기억은 다양하다. 형과 누나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평범한 고창석과는 언제나 비교가 됐다. 그가 서울예술대 진학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뜻을 밝혔을 때 돌아온 답은 이랬다. “차라리 그래라!” 그렇다고 고창석이 사고만 치는 문제아는 아니었다. 그는 열심히 살았다. 부산외대 다닐 때는 풍물을 치고 탈출을 추는 동아리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그는 탈춤을 아주 잘 췄다. 당시 고창석과 함께 활동을 했던 한 영화인의 경험담이다. 그리고 총학생회 간부로 ‘운동권’에 몸을 담기도 했다. 그 뒤 고창석은 민중가요 노래극단에서 사회운동을 했다.
그의 무대는 연극판이 아니라 노래극단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부산 연극계 사람들을 거의 모른다. 확대해 보면 부산 문화계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아쉽게도 고창석을 키운 건 부산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창석의 부산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촬영이 없는 날이나 답답할 때가 있으면 훌쩍 부산으로 내려온다. 그의 부모님은 해운대에 살고 있다.
>> 고창석에게 영화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바쁘지 않느냐?”였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바쁘지 않다”고 대답했다. 설명이 기가 막혔다.
“영화는 많아야 일주일에 3~4일 촬영한다. 빡세기는 하지만 바쁘지는 않다.” 맞다. 일주일에 3~4일 출근하는 회사는 요즘 말로 표현하면 ‘신의 직장’이다. 그렇다면 영화외의 작업은 왜 하지 않을까. 보통 조연으로 뜨면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돈이 되고 결정적으로 몫돈을 만질 수 있는 광고로도 연결된다. 그는 2009년 부산 기장군에서 주로 촬영한 <드림> 한 편의 드라마에만 출연했다. “특별히 드라마 출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잘 맞지 않을 뿐이다. 먹고 살수만 있다면 영화에만 출연하고 싶다. 요즘에는 뮤지컬 출연 얘기도 나오는데 영화에서 자리를 굳힌 뒤에 다른 곳으로 진출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는 영화배우가 꿈이었을까. 아니다. 그의 꿈은 영화배우도 연극배우도 아니었다. 20대때 그는 배우가 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30대때 고창석은 영화배우가 될 것이라는 꿈을 꾸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창석은 이제 영화계에 빠지지 않는 배우가 됐다. 이쯤되면 비결이 궁금할 법도 하다. 비결은 없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무언가가 되겠다고 악다구니 쓰지 않고 그대로 흘러왔다. 그 물결대로 살아와 지금 내 자리를 보니 영화배우가 돼 있었다.”
이 정도면 삶에 달관한 사람같다. 그러나 나름 비법은 있었다.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우연한 기회에 풍물패로 활동했고 운동도 했다. 그냥 따라간 것이 아니라 열심히 했다. 그리고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고 서울 대학로의 연극 무대에서 목숨을 걸 정도로 열정을 갖고 연기를 했다. 어느날 ‘영화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준비된 그는 스크린 앞에 섰다. 따지고 보면 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명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을 제대로 거친 것이다. 다른 배우들처럼 특별한 가치관도 없다. “<고지전>은 그 시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고, <퀵>은 할리우드틱한 영화를 체험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영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세계와 접하는 것이 즐겁다. 특별히 영화에 대한 주관을 세우고 출연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퀵>의 마지막 부분은 달리는 열차안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그런데 고창석은 영화 찍으면서 열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최근 유행하는 버추얼 스튜디오의 블루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고창석이 말한 ‘할리우드틱한 영화’는 색다른 촬영 기법을 말한다.
>> 고창석에게 가족은?
그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부인 이정은 씨와 초등학교 4학년인 딸 예원 양이다. 부인은 부산에서 활동할 당시 만났다. 둘은 서울예대에 나란히 시험을 쳐서 동반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내조와 육아에 전념했던 부인은 지금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와 그동안 미뤘던 열정을 분출시키고 있다. 이제는 고창석이 외조를 해야 할 때. 그가 생각하는 외조는 거창한 것이 없었다. “연습 끝나고 가지는 회식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외조지, 지금 내가 특별하게 해줄 것은 없다.”
지금은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하면서 여유롭게 웃어 넘긴다. 고창석은 대학로에서 한참 연극에 빠졌을 때 결혼을 한 상태였고 더구나 딸 예원 양까지 태어난 뒤였다. 혼자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그는 가정을 가진 가장이었다. 매일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다행히 그 시간을 이겨냈다. 딸 예원 양은 ‘1박2일’을 통해 전국민에게 알려졌고 덕분에 고창석은‘딸 바보’라는 기분 좋은 별명을 가지게 됐다. 그는 서울 마포의 성미산마을에 산다. 공동육아 등 이웃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딸 예원 양에게 나눔에 대해 몸소 실천하면서 교육한다. 그는 딸에게 배우를 하라고 권할 생각도 말릴 생각도 없다. 딸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자세다. 다만 딸이 커가면서 친구가 되는 것이 고마울 뿐이란다. 고창석은 예원 양에게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그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소형인 ‘모닝’. 유명해진 그가 딸에게 “아빠도 좋은 차로 바꿀까?”라며 넌지시 물었는데 예원 양은 “그냥 타!”라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단다. 부인과 딸은 고창석이 영화배우로 마음놓고 활약할 수 있는 지원군이다.
>> 고창석에게 동료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신예 감독들과 작업을 많이 했다. <영화는 영화다><의형제><고지전>을 함께 했던 장훈 감독과 <혈투>를 만들었던 박훈정 감독 등이 고창석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스스로 “가능성 있는 감독들과 작업을 많이 했고 그들이 앞으로 영화를 많이 만들 것이기 때문에 몇 년 동안은 출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 열매들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 <의형제>를 제의받았을 때 그가 출연할 장면은 한 씬 뿐이었다. 작은 역할에도 열심히 한 그에게 장훈 감독은 촬영분을 늘렸고 결국 세 씬에 등장했다. 영화가 성공하면서 고창석은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까지 올랐다. “그때 겨우 세 씬 나왔는데 조연상 후보가 됐다고 선배들한테 야단 아닌 야단 많이 맞았다.” 그는 지금도 장훈 감독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일까. “며칠 전에도 장훈 감독과 만나 소주 한 잔하면서 작품 이야기를 많이 했다. 편안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다가 영화 출연도 결정되고 그런다. 하하.” 고창석은 최근 친한 동료를 얻었다. ‘1박2일’촬영을 하면서 같은 부산 출신인 김정태와 친해졌다. 지금은 따로 만나 술 한잔씩 하고 시간이 나면 촬영장에 응원갈 정도로 가까워졌다. 또 ‘1박2일’에 같이 출연했던 배우 성동일과도 허물없이 지낼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그런데 이제 불편한 것이 하나 생겼다. 얼굴이 알려지면서 예전과 달리 편하게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그는 스크린 안에서나 밖에서나 똑같은 고창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