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물려주고픈 아버지들의 바람은 그들의 땅에 스민 탐욕과 살육의 역사마저 자식세대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며 끊이지 않는 폭력의 연대기를 이루었다.
빚더미에 앉은 두 형제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로부터 땅을 물려받는다. 무능한 그들은 은행에 갚아야 할 막대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이 조악한 땅마저 빼앗길 처지다. 공교롭게도 불모지와 다름없던 초라한 앞마당에서 석유가 발견된다.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가던 두 형제는 대를 걸쳐 이어져온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 남겨진 가족과 후대의 풍요로운 앞날을 도모하고자 무법자의 길을 자처하게 된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최근 제작된 일련의 미국영화들에서 두드러지게 다루어지는 금융자본주의의 폐해, 그리고 이렇듯 엄혹한 현실로 인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터전마저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미국 내 소시민들의 불안을 반영한 영화다. 이러한 불안의 정서를 공유한 여러 영화들은 분노와 무력감의 양태로 현 세태를 그리고 있는데, <로스트 인 더스트>를 연출한 데이빗 맥킨지는 가족과 그들의 거처를 수호하기 위해 은행강도를 도모하게 된 두 형제의 활극을 서부극의 세계 가운데 구현하고자 하였다.
영화에서 그려진 텍사스의 시골마을은 권태와 환멸이 지배하는 무력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토비(크리스 파인 분)와 태너(벤 포스터 분) 두 형제는 빚을 갚기 위해 복면을 쓰고 조그만 은행들을 순회하며 강도짓을 벌인다. 그들의 행각을 두고 ‘은행을 털며 연명하는 한심한 시절은 지났노라’ 이죽거린 노인의 말마따나, 그들은 치밀하게 계획하고 움직이는 범죄자들이라기보다 마치 고색창연한 서부영화 속 무법자들을 연상시키는 시대착오적 면모를 드러낸다. 이 영화에 동시대적 분위기를 흩뜨리는 것은 비단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쓴 두 형제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강도행각을 뒤쫓는 마커스(제프 브리지스 분)는 퇴직을 앞둔 노회한 보안관으로 인디언계 혈통의 동료를 향해 인종차별적 농담도 서슴지 않는 구시대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토비와 태너, 그리고 마커스는 형제의 강도행각을 매개로 황량한 텍사스 벌판의 한가운데서 예견된 만남을 대비하지만, 영화의 중반에 이르자면 그들의 대치는 범죄자와 공권력의 이원적 대립과는 다소 무관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은 화염에 휩싸인 들판의 화마(火災)를 피해 당황한 소떼들을 내모는 카우보이들의 황망한 모습이다. 영화의 줄거리와 별다른 연관이 없는 이 장면에서, 권태에 찌든 카우보이는 영문을 모르는 보안관을 향해 불만을 토로한다. “21세기에 불길을 피해 소떼나 몰고 다니다니, 이런 염병할 짓을 내 자식들은 왜 마다하는 건지 모르겠소.” 지평선 너머로 번진 들판의 화염은 그 자체가 거대한 장관을 이루는 광경이며, 어쩌면 서부극이라는 장르의 퇴조 이후로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장엄한 스펙터클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국, 남부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불현듯 도착한 이 ‘서부극적’ 풍경은 숭고함과 거리가 먼, 당혹과 혼란에 가까운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감상은 곧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여러 장치들이 향하는 퇴행의 정조를 암시한다.
<로스트 인 더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앞서 언급한 장면만큼이나 ‘퇴행적’이다. 복면을 뒤집어쓴 채 자루에 푼돈을 쓸어 담으며 은행을 빠져나오는 두 형제의 강도행각, CCTV 하나 제대로 설치되어있지 않은 허름한 범행현장에 당도하여 오로지 직관에 의한 수사를 고집하려하는 늙은 보안관, 그리고 공권력을 신뢰하지 않고 스스로 자경단원이 되어 강도를 쫓으려 하는 어설픈 마초들의 모습들은, 적어도 우리가 미루어 짐작하는 현대 미국의 풍경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라스트 홈>이나 <빅 쇼트>와 같은 영화들에서 다루어진 바 있는 동시대적 문제의식은 주인공들이 처한 현실, 혹은 ‘채무 구제’라는 입간판이 커다랗게 버티고 선 소도시의 황량한 풍경으로 재현되고 있지만, 고립무원과도 같이 영화 속 군상들을 집어삼킨 회색의 정경은 내러티브가 버티고 선 특정한 시간성을 무참히 지워버린다.
이 영화에서 ‘서부적 사나이’로 표상되는 인물은 벤과 마커스다. 인디언 계통의 동료 보안관 알베르토를 향해 조롱 섞인 농담을 던지기 일쑤인 마커스는 인디언 토착민을 탄압하였던 자신의 뿌리를 구태여 부정하지 않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벤은 스스로 코만치족의 가치, 즉 ‘평원의 제왕’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지으려 하는 인물이다. 두 남자는 보안관과 범죄자라는 사회적 지위와 아울러, 표방하는 가치 또한 극명히 상충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현 시대의 조류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면모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알베르토는 자신의 혈통을 두고 불쾌한 농담을 지껄이는 상관 마커스에게 대꾸한다. 백여 년 전 자신의 조상들을 무참히 살육하였던 존재는 백인 군대였지만, 이제는 모두가 한낱 자본의 지배를 받을 뿐이라고. 그들은 강도일당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낡아빠진 은행건물을 무심히 응시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곧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엄혹한 체제에 대한 깊은 무력감을 담고 있다. 동생과 더불어 카지노에 당도한 벤이 우연히 마주하게 된 또 다른 인디언계 남성 역시 엇비슷한 암시를 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평원의 제왕’이었던 아파치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을 몰살하여 땅을 차지한 백인들 또한 이제는 빚더미에 짓눌린 채 카지노와 은행의 노예가 되어 요원하기 그지없는 잭팟을 노리며 살아간다. 개척하고 정복하라는 서부의 지상명령이 사라진 이곳에서, 서부적 가치를 지닌 채 도태되어버린 사내들은 이제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벤은 ‘영원한 적’이자 ‘평원의 제왕’인 아파치족으로서 제 존재를 규정짓는다. 평원은 토착민이었던 아파치족의 고향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려 하는 침략자들에 대해 잔혹한 적으로서 군림하였다. 석유가 발견된 어머니의 땅, 자식세대들의 유산을 오롯이 물려주기 위해 무법자 벤은 ‘서부의 사나이’이자 ‘영원한 적’으로서 저주받은 현 세대의 굴레를 끝장내려 한다. 벤의 동생 토비는 형제의 강도행각을 눈치 챈 마커스에게 말한다. “가난은 전염병과 같아서 대를 이어 전해지며 사람을 괴롭히죠. 하지만 내 자식들은 안돼요.” 빈곤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물려주고픈 아버지들의 바람은 그들의 땅에 스민 탐욕과 살육의 역사마저 자식세대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며 끊이지 않는 폭력의 연대기를 이루었다. 그것은 강고해 보이는 체제의 영속성을 초월한 피의 유산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서부개척의 역사는 과거지사가 되었을지언정, 아버지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서부의 사나이들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역사였다.
![문성훈의 리와인드 [모래 위에 새겨진 폭력의 역사 <로스트 인 더스트>]](https://fb.snsmodoo.com/wp-content/uploads/2016/12/문성훈의-리와인드1-690x4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