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必 인터뷰- 목표는 시나리오 작가 데뷔 , 김휘 감독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 사업 통해 시나리오 작가 양성에 발벗고나선 김휘 감독

 

시나리오 피칭부터 트리트먼트까지…


김휘(46) 영화감독. 얼핏 들어서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윤제균 감독의 1,000만 영화 <해운대>(2009) 시나리오를 썼고,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이웃사람>(2012)을 연출했다는 부연설명이 붙는다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의 손을 거쳐간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색즉시공2>(2007) 각색과 프로듀서, <하모니>(2009) 각색, <심야의 FM>(2010) 각본, <시체가 돌아왔다>(2012) 각색, <무서운 이야기2>(2013) 연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부산 출신인 그는 2년 전인 2012년 부산에 터전을 잡았다. 부산에 사무실을 얻고 영화사 히트박스를 운영하며 콘텐츠 기획 관련 작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영화제작을 위해 K프로덕션이란 새로운 간판도 추가로 달았다. 그리고 올해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부산의 영화인재를 키우겠다고 직접 나섰다. 부산에서 제3의 영화인생을 설계하는 김 감독을 부산영상벤처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Q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긴지 2년 정도 됐다. 서울에서 한창 잘나가는 영화 감독이 부산으로 제작사를 옮겨 지역 영화계도 꽤 놀랐다. 부산에서 2년간 어떻게 지냈나.
A ‘히트박스’를 부산으로 옮긴 것은 2012 년이지만 사실상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대학 특강도 다니고, 지역 영화인도 만나고, <무서운 이야기2>도 찍고 바쁘게 지냈다. 올해는 스릴러,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기획하는 시기다. 아이템을 개 발해 시나리오를 만드는 작업을 거쳐 내년이나 내후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제작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K프로덕션도 설립했다

Q 원래는 부산에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 그것도 꽤 다양한 일에 손을 댔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초창기 시절 홍보팀장으로 일했고, 부산독립영화협회에도 관여했다. 또 부산에서 영화작업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이 궁금하다.
A 처음 시작은 연극이었다. 연극에 매료돼 극단 부산무대에서 연극을 배웠다. 그리고 서울 대학로에서 1년 반 쯤 극단 생활도 했다. 그러다 군대를 가게 됐고 제대 후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경성대 연극영화과(93학번)에 입학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당시 경성대 교수와 학생들이 주축이 됐던 ‘영화제작소 동녘’에 몸담아 영화작업에 참여했다. 부산독립영화협회 일도 그래서 관여하게 됐고…. 처음에는 영화연출을 목표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동료들과 영화작업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PD 일을 자주 맡았다. 그래서 이래저래 행정 일을 하다 자연스레 이곳저곳 알게 됐다.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장을 맡아 그곳에서 6년간 일을 했다. 당시에는 영화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이 힘을 모아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드는데 ‘으샤으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또 홍보팀장 일을 하면서 마케팅 쪽에 눈을 뜨게 돼 도움이 됐다. 먹고살기 위해 라디오 방송 진행, 극단 아르바이트 등 정말 많은 일을 했다. 그때 여러 가지 일을 했던 경험이 지금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2012년 영화 촬영 현장

2012년 영화 <이웃사람> 촬영 현장

Q 연극에서 영화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가 있었나.
A 서울 대학로 극단 시절 단원들이 모두 영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영화 진흥공사 등에 자주 다니며 영화를 많이 봤다. 그러던 중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1990)이란 영화를 보게 됐는데 너무 좋았다. 당시 한국영화계도 뉴웨이브 바람이 불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영화가 단순히 환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되면서 영화에 빠졌다.

Q 젊은 시절 의욕적으로 부산에서 영화 일을 하다가 2000년대 중반 서울로 올라갔다. 물론 많은 지역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서울로 갔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A 부산에서의 생활을 다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갔을 때가 2005년 12월 15일이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서울로 가게 된 것은 부산에서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손실이 컸기 때문이었다. 단편영화작업에 PD로 여러 번 참여했지만 직접 영화를 연출할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야심차게 영화를 준비했다. 부산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스태프를 모으고, 투자자를 찾아다니면서 영화제작 준비를 했다.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촬영 전 약속했던 투자자가 계획을 철회하는 바람에 영화가 엎어졌다. 금전적인 손실도 컸지만 상실감이 컸다. 그때 준비했던 영화는 부산의 영화, 즉 ‘로컬 시네마’를 표방했다. 멀티플렉스가 한창 생기던 시절이었는데 부산·울산·경남지역 관객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어 10개 상영관에서만 개봉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용도 철저하게 부산에 맞췄다. 미국은 ‘뉴욕영화’가 있지 않은가. 예술성 짙은 뉴욕영화는 지역에서 호응과 지지를 얻어 미국 전역으로 개봉을 확대하기도 한다. 그걸 모델로 했다. 부산의 로컬 시네마를 만들겠다는 목표였는데 실패해서 손실이 컸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게 됐다.

Q 서울영화계에 뛰어들어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윤제균 감독과 다수 작업했던데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나.
A 윤제균 감독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친하게 지낸 친구가 10명쯤 있는데 윤 감독이 그중 한명이다. 서울에 올라가서 처음 일한 곳이 두사부필름이었다. 친구 덕을 많이 봤다. <1번가의 기적>(2007), <색즉시공2> 프로듀서를 맡았고 이후 여러 작품의 시나 리오와 각색,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며 연출 준비도 했다. 그렇게 7년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의 노하우와 경륜이 쌓인 것 같다. 어쩌면 ‘경력’을 쌓기 위해 전투적으로 일했던 것 같다. 부산에서 영화를 찍을 때 경력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무슨 영화를 했느냐’였는데 그때는 “이러이러한 영화를 했습니다.”라고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시나리오, 각색, 프로듀서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경력을 쌓는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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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이웃사람>(2012)

Q 첫 연출작 <이웃사람>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A 처음 연출 데뷔를 준비했던 작품은 <7광구>(2011)였다. 폐쇄된 공간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지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공포를 체험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 고 싶었다. 원래 스릴러를 좋아한다. 그런데 투자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기획 의도가 바뀌었다. 그래서 빠졌다. <이웃사람>은 원작을 워낙 재미있게 보긴했지만 처음에는 고사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인연이 돼 결국 연출을 맡았다. 데뷔는 했지만 아직 ‘내 영화’를 갖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시나리오로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영화감독으로 아직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Q 서울 진출 7년만에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자로 인지도를 쌓았다. 그만하면 성공한 것 아닌가.
A 순전히 ‘운발’이다(웃음). 친구를 잘 둔 덕도 있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갈 때만 해도 ‘나는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다. 서울에서 부산에 연고를 둔 사람들과 인연이 닿아 계속 같이 작업을 했다. <심야의 FM>은 부산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때 경험을 떠올려서 쓴 작품이다. 방송국에 서있는데 바로 앞에 아파트가 보이길래 ‘자기가 일하는 방송국에서 집이 보이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생중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이후 부산 출신 영화제작자를 만났는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 일을 하면서 계속 느끼는 것인데 ‘콘텐츠’로 성공하려면 ‘운’이 있어야 한다. 물론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이 더해지긴 하지만, 진짜 운이란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나도 운이 좋은 편이다.

Q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긴 이유가 궁금하다. 서울에서 한창 자리 잡을 시기인데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이유로 온 것은 아닐 테고….
A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간 것은 영화 경험과 경력을 쌓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굳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영화사를 옮겼다고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또 부산에서도 충분히 영화제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지리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문제는 ‘콘텐츠’다.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부산에서의 실패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때는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주변 탓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년간 서울에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즉 이야기가 어떻게 다듬어지고 대규모 자본과 결합해 ‘영화’란 상품이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지켜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부산에서 만들려고 했던 영화가 이야기만 재미있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투자자를 데려올 수 있었을 것이고 또는 다른 영화사에 팔수도 있었을 것이다.

Q 올해 부산영상위원회와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영화 작업도 빠듯할 것 같은데 시나리오 교육에 눈을 돌린 이유가 뭔가.
A 앞서 말했듯이 부산에 내려와 가장 필요한 것이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였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 학원을 운영해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부산영상위원회와 뜻이 맞아 같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부산에 있는 인재들과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공동의 작업을 해보고 싶다. 1~2년 정도 해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전문적인 시나리오 과정을 운영해볼까 한다. 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콘텐츠 팜 (Content Farm)’과 같은 집단을 생각하고 있다.

Q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을 끌어나갈 계획인가.
A 다음 달부터 6개월 과정으로, 소수정예로 운영한다. 1차에 15명 정도 선발해 기본교육 강좌를 진행하고 2차는 1차 수강생 중 인재를 선발해서 실무 강좌를 받게 한다. 시나리오 피칭부터 캐릭터 잡는 방법, 극 전개 과정, 트리트먼트까지 세세하게 가르칠 것이다. 목표는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데뷔를 시키는 것이다. 당장 필드에 내놔도 일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낼 생각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다듬는 과정을 계속해서 실제 영화 제작까지 연결되도록 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재미있는 이야기만 나온다면 실력있는 각색자가 붙어 상업적 감각을 더하고, 그 러면 제작사가 붙을 것이고 자연스레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할 수 있다. 물론 교육을 통해 발굴된 시나리오의 1차 선택자는 내가 될 것 같다(웃음). 1~2년 정도 제대로 운영하면 보다 수준 높고 전문적인 창작집단이나 시나리오 작가 풀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Q ‘콘텐츠’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특히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 성공 이후 ‘영화도시’를 표방하며 많은 돈을 들여 각종 인프라를 만들어 놨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를 제대로 채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지역 영화계도 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해 결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A 맞다. 2005년 서울에 갔다가 7년 만에 부산으로 내려왔지만 서울로 올라갈 당시와 크게 사정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영화와 관련된 대형 인프라들은 만들어졌지만 콘텐츠를 생산할 주체도, 생산자를 키울 시스템도 전무하다. 멋진 대형마트를 차려놓았지만 정작 물건을 팔 사람도, 팔 물건도 없는 셈이다. 소비자가 살만한 물건을 만들고, 이것을 잘 진열해서 팔아야 마트도 살 수 있지 않겠나. 부산에서 영화산업을 이야기하려면 콘텐츠를 기획, 개발, 생산할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영화 자본은 지역적 경계가 없다. 부산에서도 서울 못지 않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 배우나 스태프가 없으면 데려오면 된다. 하지만 콘텐츠는 얘기가 다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여기에 관심을 갖는 제작자가 따라붙고, 영화제작을 하게 되면 인력들은 자연스레 유입된다. 그렇게 번 돈은 다시 지역으로 들어오고. 그렇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Q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바라본 부산영화계는 어떤가.
A 부산에도 유능하고 재능있는 영화인들이 많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만 하다 보니 관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대중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물론 지역에서 고집 있게 자신의 영화세계를 만들어가는 예술영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부산에서 영화산업을 이야기하려면 상업영화로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 개발할 능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여러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너무 자기 영 화에 강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 영화를 하다보면 ‘내 시나리오, 내 영화’에 대한 생각이 강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계에서 ‘경력’도 꽤 중요하다. 다양한 역할로 영화작업에 참여하며 경험을 하다 보면 나중에 경력이 쌓이고 자기 영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후배 영화인들에게 이점을 가르쳐주고 싶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할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서울은 시나리오를 쓰면 이 것이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끊임없이 조언해줄 사람이 많다는 것 이다. 부산에 프로듀서, 기획자가 부족하다보니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 결국 자기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든다. 너무 ‘자기 영화’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고 틀을 깨면 더 좋은 영화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부산의 영상산업도 마찬가지다. ‘영화도시’란 담론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채워갈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영상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기획·개발 워크숍’사업은 영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회이자 시작이 될 수 있다.

Q 시나리오 작가 발굴 외에 또 계획하는 것이 있나.
A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궁극적으로 영화, 연극 등 장르를 뛰어넘어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에 관심이 많다. 이 부분도 도전해보고 싶다. 경성대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과도 연락하며 무엇을 하면 재미있을지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그중 하나가 부산에 연고를 둔 배우나 연출자를 데려와 연극 무대에 세우면 어떨까 한다. 이른바 부산의 ‘로컬 스타’를 키워보자는 것이다. 부산 공연기획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 하면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지 어깨너머로 배웠다. 부산의 인재를 발굴하고, 그것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것. 궁극적으로 그것이 영화도시 부산에 필요하지 않을까.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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