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어디쯤... 청사포 철길아래 방파제
나는 영화를 매우 사랑한다. 나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예컨대 나의 구상을 실현하는 나의 작업은 내가 지금 지향하고 있는 작업가설의 체계에 맞아 떨어질 것인가? 나의 주변에는 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판에 박힌 틀의 유혹,선입관의 유혹 공통성의 유혹,낯선 예술적 이념의 유혹 등등 그리고 하나의 장면을 아름답고 효과적으로,관객의 박수를 목표로 찍는 것은 사실 매우 간단한 일이다.. . 위의 유혹의 길로 한번만 들어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은 패배를 의미한다. 현대의 가장 복합한 문제들은 영화를 통해서 수백 년간 문학과 음악 미술이 다루어 본 문제의 수준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새롭게 영화 예술이 가야만 할 길을 찾아야만 한다 만일 우리들이 정확해도 분명하게 이 예술의 내적인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 예술 세계로 들어가는 고유의 열쇠를 우리들 자신에게서 발견하지 않는다면,영화의 실제 작업은 우리들 모두에게 아무런 결실도 없고 아무 희망도 없는 작업으로 전락하고 말 것임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봉인된 시간> 중에서
부드러운 공기가 감각을 살포시 열어주고, 더위가 가신 따뜻한 기운이 무성한 활기를 주는 계절, 상상력이 현실을 끊임없이 벗어나면서도 자연의 순박함으로부터는 결코 벗어나지 않는 계절,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의 고도가 한없이 높아져 있음을 깨닫게 되는 계절, 커피 맛이 예전과는 틀림없이 다른 계절이 왔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여기저기 에서 들끓어 댔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일 지열과 복사열, 거기다 내(?)열까지 뒤엉켜 온 세상이 팔팔 끓어대느라지구의 안전(?)이 참으로 걱정 되었던 터였다. 박빙의 불꽃 튀는 사생결단 한 표 몰이에 드라마틱하게 끝난 ‘경선’이 그랬고, 국민들을 한 여름의 매미 마냥 극성스럽 게 했던 아프칸 피랍사태가 그러했고, 역대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제대로 뒤집어 놓은 영화〈디워〉의 탄생 또한,지구의 온도상승에 크게 이바지 했다 하겠다. 그 덕에, 영화〈친구〉는 수년간 꽤 차고 앉았던 5위 자리를 내 주어야 했고,〈타짜〉또한〈화려한 휴가〉의 8위 탈환에 썰물처럼 밀려났다.
이러한 것들이 내게 각인시킨 단 하나의 이미지는, 한 쪽에선 호소하고, 한 쪽에선 비난이 범람하는… 팽팽한 생의 긴장이 깔린 치열한 삶의 엿봄이었다. 소통의 엇갈림, 믿음의 부재, 불신의 난무가 가져다준 혼란의 연속성이었다. 나약한 인간인지라 이맘때면,여지없이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처참히 무너지지만, 유난히 숨 고르기가 불편했던 올 여름은 이래저래 아쉬움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요 근래에 줄곧, 나들이 삼아 야간산책을 했었다.
해가 져서야 겨우 바깥출입 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순전히 더위에 이길 재간이 없는 노모(老母)와 나 때문이었다. 그곳을 산 책할 때면, 어딘가 약간 부족한 2%를 제대로 만족시켜주는 또 하 나의 즐거움이 있다. 길모퉁이 주변에서의 커피 한잔이 바로 그 2%다. 주변에 몇 군데 있는 집들 가운데 그날그날 기분과 날씨에 따라 맛있게 만들어주는 집을 찾아 들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이야 말로 그 밤 내내 빈곤 속의 풍요를 안겨다 준다. 들러 커피를 시킨다. 그날따라 빵도 먹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옆에 있는 빵집에 빵을 사러 갔다. 커피를 마시고 잠시 동안 얘기를 나눈 뒤 “커피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걷다가,한 2-3분 지났을까, 당연히 계산했겠지 하는 마음에서, 아들에게 물었다.
“커피 값,네가 계산했지?”
“아니…”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나왔다. 아이구 참. 계산도 하지 않고, 커피 잘 마셨다고 웃으며 인사하고 우린 와 버린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갔다 올께.”
다시 돌아가서, 커피 값 계산 안 했다고 쑥스럽게 말하고는 계산을 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한 줄 알고,그냥 가버렸다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상대방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곳에서 커피 열 잔 마시면 한 잔은 공짜인 쿠폰이 있는데,그분이 그걸 주신다. 거절한다는 게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서 고마운 마음으로 그것도 받았다.
우리가 커피 값을 치르지 않고 나온 배경을 말하자면 이렇다.
‘세 사람이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 아들은 거기 있고, 나는 빵이 먹고 싶다는 아들과 노모를 위해 조금 옆 빵집에 다녀왔다. 갔다와 보니 커피가 나와 있었다. 커피를 준 사람(직원 1)이 바쁘다. 어딘가를 가더니, 커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한 무더기 가지고 온다. 그리고는 다시 어디론가 간다.
아들은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다녀온다. 그 사이, 우리에게 커피를 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직원2)이 그 곳에 온다.
아들이 화장실에 다년 온 뒤 잠시 얘기하고는,이곳 커피가 참 맛있다고, 그곳 사람(직원2)에게 말하고는 기분 좋게 인사하고는 나온다.’
일이 그렇게 된 거다. 나는 내가 빵 사러 간 사이,아들이 내가 미리 주고 온 돈으로 값을 지불했을 거라고, 아들은 자신이 화장실 간 사이 내가 커피 값을 계산했을 거라고, 직원1은 커피만 주고는 정신 없이 다른 일 하느라고 그곳을 왔다 갔다 하더니,어디론가 또 간다. 직원2가 왔는데 자연스레 기분 좋게 나가는 우리를 보고는, 계산했을 거라고 믿고는 아무 말이 없다. 그분도 역시 바쁘다.
상황 종료 후, 서로가 서로를 믿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괜찮았다.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잘못은 잘못으로 느껴지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에게 믿는 마음은 이렇게 서로를 안도 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믿음은 또한 무심함의 이면이기도 하다. 나는 굳이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죽어라 일한다는 말을 해선 안될 것 같다. 직업이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 성향과 취향에 잘 맞는 로케이션매니저로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일을 업(業)으로 하고 산다.
늘상 즐기며하는 산책이지만, 내 눈과 머리는 때때로 공적인 시야에 갇히게 되기도 하며, 또한 업무 중에도 나는 나대로 마음껏 상상하는 영화적 즐거움을 몰래 누릴때도 있다. 산책을 하든, 커 피를 한 잔 마시든,촬영지를 찾아나서는 일이든, 무엇을 하든 간에 대체로 내 삶 전체가 시종일관 나 홀로 단편영화를 만들어 대곤 하는 것이다. 오늘 찾은 이 곳 역시, 부산에서 처음 소개되는 로케이션지로서 공간의 구도나,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볼 때,더 없이 좋은 촬영지가 아닐까 한다.
전면의 망망대해(法法大海)와 걸릴 것 하나 없는 뒷배경이 늘어진 방파제와 포구들과 조화를 이루며 영화〈무간도〉를 떠올리게 한다.
열심히 발 품 팔아 찾아 낸 장소이니 만큼 발굴의 기쁨을 함께 누릴 감독이 얼른 알아봐 주길 고대한다. 장르에 따라 다양한 그림을 선사할 매력적인 장소로서,부산다움을 간직하면서도,부산을 벗어나 영화의 미학적 요소들을 충분히 제공할 그런 장소가 아닐까 한다.
최근 들어 한국영화의 소재들이 급속히 진화{進化)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제작과정 의 구구절절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헤아릴 바 아닌 나로서는 아쉬움과 불만이 떠나질 않는다. 상업 성과 대중성을 지향하며 열심히 만든 영화들은 상업성과 대중성을 지양해야 하는 모순 앞에서 관객들에게 처참히 외면당할 때가 허다하다. 거기에는 영화적 모순성이 숨어 있다.
너무나 뻔한 것이 주는 친근감과 공감,너무 뻔해 느끼는 식상함 과의 간극 조절이 한국영화 제작의 혼란을 초래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서든, 시를 통해서든, 결국은 자연의 이치와 자연과의 합일 속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음악이나 시는 자연의 내적 질서를 향해 다가가는 인간이 발명해 낸 아니,인간이 자연을 모방한 가장 뛰어난 발견물임에 틀림이 없다. 음악에 대한, 시에 대한 참다운 향유는 자연에 다가가는 것 이고, 나아가 저 쉴러가 이야기하는 지극한 순박함으로의 길인 것이다.
이성을 통해 발견해서 감성을 통해 발현되는 그것… 진정한 예술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체온은 따뜻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광기와 열정으로 끓어오르는 그 무엇도 인간이 가진 또 다른 체온인 것이다.”
이곳은 어디쯤… 청사포 철길아래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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