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개의 문] 2 Doors, 2011

영화 [두 개의 문] 2 Doors, 2011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무엇인가?

15_2기억으로서의 영화
어떤 영화들은 관객에게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집단이 가지는 공통감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개인이 가지는 개별적 경험의 투사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맞아 떨어지면 영화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된다. 아마도 최근의〈건축학개론〉(이용주 감독,2012) 열풍이 그 싱싱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 영화는 90년대를 ‘추억의 시절’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러와 그때 젊은 날을 보냈던 집단에게 그 시대에 대한 모종의 공통감을 만들어 냈다. 동시에 그 영화는 개 별 관객들이 각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의 기억을 현존화하여 느끼도록 이끈다 첫사랑의 이루어질 수 없음,그것이 뿜어 내는 뭔가 아련하고 한편으로 순수한 감정…, 뭐 이런 것들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첫사랑의 ‘개념에 대한 공통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기억은 길을 잃는다
이렇게 영화는 경험과 개념을 뒤섞어 전달한다. 영화〈친구〉(곽경택 감독 2001)는 부산의 경험이면 서도 부산의 개념이다. 줄곧 부산에서 살아온 나로 서는〈친구〉속의 공간이 꽤나 낯설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뚝 떨어져있는 공간들을 연속된 공간으로 이어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안에는 심지어 내가 태어난 집도 배경으로 잠깐 나오지만 그 공간 이 실제로는 버스로 스무 정거장쯤 떨어져 있는 곳 과 연속되어 있는 공간으로 제시될 때 나의 공간적 개념은 혼동을 느끼게 된다. 이 혼동은 내 경험의 확고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확고함은〈친구〉가 제시하는 부산의 인물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수용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화를 인지적,감성적 부조화를 느끼지 않으면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쪽의 결핍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험은 영화가 제시하는 개념을 거부할 만큼 충분해서는 안 된다. 또는 우리의 개념은 영화가계시하는 경험을 수용하는 것을 방해할 만큼 확고해서는 안 된다.

환상과 진실
결국 우리가 영화에서 마주하는 것은 절름발이 인식이다. 그 부조화의 틈을 비집고 영화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그것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진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환상이 채우게 된다. <건축학 개론〉은 나에게 그런 첫사랑이 없었음을,즉 나의 결핍을 확인시키지 않고 나에게 있었을 법한 첫사랑의 감정을 경험의 형식으로 계시한다.

친구>는 어디에서나 존재할 법한 인물군상들을 부산사람의 특징으로 개념화하여 제시한다. 그래서 결국 영화는 환상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진실을 말할 수 없는가? 이런 고민 속에서 영화가 진실을 제시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장르가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또한 결국은 무엇을 프레임 안에 담느냐는 선택의 문제이고 그 선택은 결국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역시나 감독이 가진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 계를 가진다. 그렇게 보면 결국 다큐멘터리 또한 영화일 뿐이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지난 2009년에 벌어진 서울 용산참사를 다루고 있는 김일란,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은 독특한 다큐멘터리다. 이 감독들은 다른 다큐멘터리들이 시도하는 ‘발로뛰어 얻어낸 새로운 발견’따위에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자료들은 이미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익히 보아 왔던 것이며 새로운 화면이라고 해봐야 당시 경찰 특공대가 찍은 급박한 진압상황 몇 컷 정도에 불과 하다. 경찰 측의 진술들은 철거민 측 변호사가 이미 확보한 공식 자료이며,재판에서의 증인 진술 녹취도 열람 신청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영화는 영화를 넘어선다
게다가 <두 개의 문〉은 우리가 알고 있음직한 것들 또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만을 펼쳐놓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놀랍게도 경찰특공대의 진술을 중심으로 사건들을 조합하며 진실에 육박하려 한다. 반대쪽 당사자인 철거민은 말이 없다. 이것은 현실의 발화구도와 동일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섬뜩한 리얼리즘이다. 또 이 사건에 대해 세상이 그러하듯 누구도 카메라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심지어는 철거민의 편에 서 있는 인터뷰이 (inter viewee)들도 마치 수십 년 전의 일을 회고 하듯 때로는 웃어 가며 담담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 발화들이 조합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난다.

사건 관련자들은 자신의 입장에 입각하여 사건을 진술하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진실을 향해 수렴된다 처음에 그 진실은 두 개의 문이라는 형상을 하고 그 현장에 있었고 그것을 처음발견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경찰특공대였다. 그 이후로도 사건의 진실은 도처에서 출몰하고 있었고 이미 늘 발화되고 있었으며 그래서 우리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결국 이 영화는‘사건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면서 동시에 ‘진실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진실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의 말처럼 “해설을 통한 설명의 형태로 스스로를 숨기면서 드러낸다.”그리하여 진실은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며,그래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두 개의 문〉은 관객과 인물들이 이미 보았다고 확신하는 것,관념의 작용을 통해 판단되었다고 확신 하는 것 그 자체를 질문한다 나는 처음에 영화의 수용이 가지는 원초적 한계,즉 경험과 관념의 부조 화라는 영화의 조건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경험 했으되 알지 못했던 것을 깨우쳐 주는 것,관념에 의해 불구가 된 경험을 회복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영화다. 그래서 영화는 존재와 인식의 모든 것이다.

김충국 부산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나 언어와 교육의 한계를 깨닫고 영화로 전향하였다. 그러나 영화를 배우고 설명하는 일도 결국은 언어와 교육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후 좌절하고 있는 중이다 B급 정서를 담은 유치한 영화를 좋아하며 한국영화의 침체기에 대한 관심이 많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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