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권하는 사회 [인사이드 아웃] – 문은혜 자유기고가

기쁨 권하는 사회 [인사이드 아웃] – 문은혜 자유기고가

‘기쁨’과 ‘슬픔’이 함께 포옹하는 장면, 우리 안의 페르소나와 쉐도우가 대면하는 장면일 것이다.

피로사회에서 기쁨과 행복이라는 마취제

현대사회는 피로하다. 자기계발의 신화는 더 바쁘게, 열심히 일하면 당신은 결국 행복해질 것이라고 유혹한다. 성공이 남아 있는 유일한 규율이다. 현재의 아픔을 견디고, 성실히 노력하면 언젠가 그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힐링의 담론은 부드럽게 속삭인다. 자기계발을 권하는 광기의 시대는 경쟁을 부추겨, 서로를 신뢰하지 않게 만든다. 인간관계가 무너진 불신사회에서 성공과 행복만을 추구하며 달려가는 우리는 피로하다.

올해 베스트셀러로 이름 올린 아들러 심리학 열풍도 비슷한 맥락에 놓인다. 아들러 심리학은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 없이, 지금 여기에서부터 행복을 선택, 추구하라고 말한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이란 부제가 붙은 <미움 받을 용기>는 ‘행복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이 결정한다’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행복은 과거의 결과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핵심기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여기, 아들러의 대척점에 놓인 프로이드의 충실한 아들 피트 닥터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있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은 핵심기억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영화 속 라일리는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오기 전 행복한 핵심기억들로 만들어진 5개의 성격 섬을 지니고 있다. 덮개기억으로 중요한 인격을 이루는 섬들은 라일리의 개성을 나타낸다. 엉뚱함, 하키, 우정, 정직, 가족이라는 키워드의 섬들은 라일리의 행복하고 슬펐던 감정이 담긴 핵심기억을 대표한다.
각 감정의 고유한 색깔이 담긴 기억구슬은 객관적인 경험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프로이드는 ‘원초적 장면은 재현될 수 없으며, 기억은 재구성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기억은 일반적으로 강력한 정동(Affekt)을 일으킨 인상으로 덧입혀지며,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아픔 등을 일으킨 상황으로 중요한 사건을 매개로 한다. 덮개기억은 어린 시절의 의식이 있는 기억이 아니라 어린 시절로 소급된 환상이 투사되어 재구성된 기억이다.

기억은 왜곡되고 변형된다. 이것은 마치 다섯 감정이 대표하는 색깔,
‘기쁨(Joy)’의 노랑, ‘슬픔(Sadness)’의 파랑, ‘까칠(Disgust)’의 초록, ‘소심(Fear)’의 보라, ‘버럭(Anger)’의 빨강으로 기억구슬을 물들이는 작업과 같다. ‘기쁨’이 라일리의 핵심기억을 돌아보며, 라일리에게 ‘슬픔’의 핵심기억 역시 필요함을 깨닫는 장면에서 소급되고 변형되는 덮개기억의 작용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핵심기억은 특별한 경험이 일정한 감정과 고착되어 성격을 이루는 요소로 작용하며 영향을 미친다.

고통을 대하는 자세-슬픔의 가치에 관하여
현대인은 외로움, 슬픔의 시간을 오롯이 견디지 못한다. 세상은 긍정의 힘을 가지라고 다그친다. 고통의 순간이 올 때, 우리는 낙관적인 관점으로 바꾸려고 발버둥 친다. 영화 초반부터 ‘기쁨’은 ‘슬픔’이 무슨역할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기쁨’은 ‘감정 컨트롤 본부’ 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 후, 동그라미 안에서 움직이지 말라며 ‘슬픔’을 가두기도 한다. 기쁨을 뜻하는 노란 핵심기억을 ‘슬픔’이 파랑으로 물들이려고 하자 저지하기도 하고, “라일리는 행복해야 해!”라고 끊임없이 말하며 ‘슬픔’을 버리고 혼자 본부로 돌아가려는 모습도 보인다.

15-10그러나 억압된 것은 결국 되돌아온다. 억압당한 기억, 억압당한 감정은 증상으로 반복되며 고통을 가중시킨다. 고통을 감당하지 못할 때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슬픔이며, 애도라는 양식이다. 라일리의 상상친구, 빙봉이 로켓을 잃고 상실감에 울고 있을 때, ‘기쁨’은 고통의 문제를 재빨리 전환시키려고 노력하며, 상실감을 잊게 만들기 위해 행복한 기대감들을 떠올려보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빙봉에게 정말 위로가 되었던 것은 ‘슬픔’의 경청하는 태도와 공감어린 따뜻한 말이었다.

사람들은 상실감, 고통을 대처하는데 서투르다. 슬픔이 말을 걸 때, 우리는 슬픔을 외면하며 황급히 자리를 옮긴다. ‘시간이 흐르면 다 잊힐 거야’,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강해져라’, ‘상실감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라’ 등이 우리가 배웠던 잘못된 통념들이다. 슬픔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충분히 슬퍼해야 하고, 충분히 애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억압된 슬픔은 결국 되돌아오고, 아프도록 반복된다. 귀환하지 못하고 억압된 정동들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고통에 응답하는 능동성, 타인의 얼굴을 환대하는 따뜻함, 이것이 바로 슬픔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 꿈 제작소
프로이드는 ‘꿈이란 억압된 욕망의 성취’라고 정의한다. 꿈의 작업은 압축, 전치, 재현가능성, 2차 수정 등을 통해 변형된다. 꿈의 해석은 본래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시도, 즉 꿈의 작업을 기호적 텍스트로 풀어 역방향의 탈 변형하는 시도다. 라일리의 꿈 제작소는 현실왜곡필터를 끼우고 꿈 촬영에 들어간다. 세트장은 샌프란시스코의 새로운 학교, 선생님이 들어오시며 갑작스러운 쪽지시험 시간이 시작된다. 라일리는 대답을 하다가 치아가 우수수 빠지고, 바지를 벗은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꿈을 꾼다.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에서 심리적으로 중요한 최근의 체험에서 남은 잔재, 인상이 꿈의 재료라고 설명한다. 벌거벗고 당황하는 꿈이나 소중한 사람이 죽는 꿈, 시험을 치르는 꿈은 전형적인 꿈의 형태다. 불안과 긴장감이 가져온 잔재이며, 불쾌한 기억을 강박적으로 반복해 죽음충동에 이르려는 억압된 욕망, 마조히즘의 성취이기도 하다. 라일리의 꿈은 정신적 외상에 고착되어 자신을 불안하게 했던 그 교실현장 속으로 반복해서 귀환할 것이다.

15-11어그러진 감정, 조율하기
당신은 당신의 상상친구, 빙봉을 기억하는가? ‘기쁨’과 ‘슬픔’은 기억미로 속에서 길을 헤매다가 라일리의 어릴 적 상상친구, 빙봉을 만난다. 솜사탕으로 이루어진 몸은 고양이와 코끼리와 돌고래를 닮았다. 어린 시절 우리는 외로움, 슬픔의 시간을 상상친구 빙봉과 함께 보냈다. 그 빙봉은 이제 기억의 낭떠러지, 쓰레기장에서 사라졌다. 그 곳에는 색깔이 사라져 알아볼 수 없는 잊혀진 새까만 기억구슬뿐이다. 빙봉을 떠나보내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다채로운 감정의 이름들을 잊어버린다. 성공과 행복을 향해 치닫는 성공중독사회에서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고 마음이 마비되어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어느 단계에서 멈추어버린 상태를 감정교착상태라고 부른다.

우리에겐 잊어버린 정동, 다채로운 이름의 정서를 표현하는 얼굴들이 있다. 그리움, 놀람, 당황, 만족, 상냥함, 비웃음, 부러움, 설렘, 수줍음, 수치, 신남, 간절함, 자긍, 자만, 절규, 짜증, 포근함, 흐뭇함 등. 기쁨과 행복만을 권하는 사회에서 감정의 무너진 무게중심을, 어그러진 감정을 조율하자. 에스키모인들은 슬픔과 걱정이 몰려올 때 한없이 거닌다고 한다. 거닐다가 평안이 몰려오는 그 지점에 막대기를 꼽고 돌아온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기쁨’과 ‘슬픔’이 함께 포옹하는 장면, 우리 안의 페르소나와 쉐도우가 대면하는 장면일 것이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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