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영도다리에서 만납세! 먼저 가 있기요! 가족들 잘 지키기요!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에서 중공군 공습을 피해 부산으로 피난 내려온 12살 덕수는 국제시장에 터 잡고 산 지 어느덧 60여 년이 흘러 75세의 할아버지가 되어있다. 흥남 철수 당시 아수라장 속에서 덕수 자신이 손을 놓쳐 잃어버린 5살 막내 여동생을 찾으러 간 아버지가 헤어지면서 손을 꼭 잡고 했던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혹시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영도다리에서 만납세! 먼저 가 있기요! 가족들 잘 지키기요!” 그렇게 헤어진 아버지와 잃어버린 여동생을 기다리며, 어린 가장이 된 덕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서독 광부로, 베트남전에 파병군으로 지원하며 가난하고 아팠던 한국의 현대사를 치열하게 지나온다.1)

부산에서는 2013년 9월 3일부터 12월 10일까지 체류하면서 총 49일간 촬영하였다
윤제균 표 부산영화
영화 <국제시장>의 연출을 맡은 윤제균 감독은 부산 출신 감독으로, 2001년부터 지금까지 9편의 장편극영화를 제작 또는 연출한 대한민국 핵심 중견감독 중 한 명이다. 이미 부산에서 <해운대>(2009)(관객 수 1,132만 명)와 <1번가의 기적>(2007)(관객 수 408 만 명), 두 편의 장편영화를 찍었다. 세 번째 부산촬영영화인 <국제시장>은 그가 7, 8년 전부터 기획한 영화로, 아버지 세대를 떠올리며 그들의 땀과 희생을 재미있고, 감동적인 윤제균 스타일로 그려나갈 것이라고 한다. 해외 촬영분량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면을 부산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하여 부산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되었다.
부산에서는 2013년 9월 3일부터 12월 10일까지 체류하면서 총 49일을 촬영하였고 주 촬영지는 국제시장, 자갈치, 다대포해수욕장, 감천항, 기장 도예촌 부지, 요트경기장, 기장서부리 한옥,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코모도호텔, 초장동 주택, 용두산 공원 등이다.
이 영화는 영화제작 시스템적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한국영화 최초로 전 제작진에게 4대 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촬영일수별 임금을 지급한다는 요지의 고용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향후 이 작품의 고용 시스템 운용사례가 정책적으로 분석되어 한국영화 제작진 고용체계에 잘 적용된다면, 실력 있는 영화장인들이 더 많이 배출되어 영화콘텐츠 휴먼웨어 강국의 탄탄한 체계를 갖추는 큰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시장이었다." width="578" height="405" srcset="https://fb.snsmodoo.com/wp-content/uploads/2015/09/09_41.jpg 578w, https://fb.snsmodoo.com/wp-content/uploads/2015/09/09_41-300x210.jpg 300w" sizes="(max-width: 578px) 100vw, 578px" /> 영화 <국제시장> 제작팀의 지원요청 사항 중 가장 중요한 장소는 부산으로 피난 온 주인공 덕수가 성장하고 살아가게 되는 50~80년대 국제시장이었다.
60년 전의 ‘국제시장’
2013년 2월 26일 영화 <국제시장> 제작팀으로부터 로케이션지원 신청서가 접수되었다. 지원요청 사항 중 가장 중요한 장소는 부산으로 피난 온 주인공 덕수가 성장하고 살아가게 되는 50~80년대 국제시장이었다. 이를 재현할 세트 공간, 즉 6개월간 이용할 수 있는 3,000평 규모의 평지가 필요했고, 이 공간이 구해지지 않으면 부산에 베이스캠프를 꾸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1950년대의 국제시장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다음 글을 보면 대략 그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국제시장은 일제 말 미군의 폭격을 대비하여 소개된 곳이었고, 해방 당시에는 만여 평이 넘는 공터였다. 도심지에 만여 평의 넓은 공터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들이 한 푼이라도 더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유 물건들을 내다 파는 시장으로 변하였다. (중략) 해방 직후 국제시장은 ‘돗대기시장’으로 불렸다.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로부터 장사꾼들이 서로 먼저 사려고 쟁탈 한다는 일본어인 ‘取る’에서 ‘돗다 하는 곳’, ‘돗다 시장’으로 일본어의 색채를 더 띠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국제시장에서 유통되었던 상품은 1950년 6월을 기준으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셔츠와 옷, 통조림, 기계 부속품과 청과, 양곡, 잡화 등 약 60여 종이었다. 하루 거래액도 평균 5천만원대에 이르렀고, 시장을 출입하는 인원은 2만 5천여 명이었다.2)
제작사는 부산의 공간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만일을 대비해 전주시에 위치한 오픈세트장까지 최후의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로케이션 지원의 선두주자인 부산영상위원회가 공간이 없어서 부산영화를 다른 도시로 보낸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먼저 평지가 가장 많은 강서구 산업단지부지와 매립지가 많은 영도동 삼혁신지구,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 등을 알아보았으나 모두 토지를 조성 중이거나, 조성이 완료된 토지는 분양과 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부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동부산관광단지 내 ‘별장형 콘도 부지’를 제작팀에 소개했다. 당시 윤제균 감독은 독일 헌팅 중이어서 사진과 전화 보고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우리는 즉시 별장형 콘도 부지를 세트장 부지로 확정하고 협조 절차를 진행했다. 영화촬영유치가 시책 사업이므로 토지조성 주체인 부산도시공사와 실비로 부지이용이 가능하도록 실무절차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독일 헌팅을 마치고 온 감독과 헤드급 제작진들이 세트조성 예정 부지를 찾은 뒤, “촬영이 어려울 것 같다.”며 다른 장소를 강력히 요청해 온 것이다.

다대포해수욕장과 감천항에서 대규모 보조출연자를 동원하여 흥남철수작전 장면을 촬영했다
부지가 바다와 가까운 곳이다 보니, 한여름 태풍이 불 경우 강풍에 의한 세트 파손이 우려되고 평소에도 강풍으로 인해 동시녹음이 어렵다는 것 이었다. 그래서 최종확인 헌팅 당일 부산시에 긴급하게 S.O.S를 요청했고 모든 부지 정보를 샅샅이 뒤지고 뒤져 기장군에 조성 중이었던 ‘도예촌 예정부지’를 찾게 되었다. 원래 이곳은 <국제시장> 로케이션지원 신청 접수 당시 제작팀과 함께 세트부지 후보로 검토했던 곳이었지만, 막 산을 깎고 나서 평탄화작업도 되어 있지 않았고 차량 통행도 어려워 일찌감치 후보에서 제외시켰던 터였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찾아가 보았던 ‘도예촌 예정부지’는 평탄화 작업과 함께 진입로도 마련되어 있었다. 부지를 둘러싼 사위는 산봉우리와 벌판이어서 바람도 잔잔했다. 세트건립 부지로 ‘콜!’ 지체할 새 없이 기장군으로부터 세트건립허가를 받고 류성희 미술감독의 지휘 하에 세트시공을 시작했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올드보이> (2003), <괴물>(2006), <박쥐>(2009), <달콤한 인생>(2005), <고지전>(2011) 등을 작업한 영화미술 분야의 ‘장인급’ 영화인이다.
공사가 끝난 후 촬영이 없는 날 혼자 그곳을 찾았다. 세트장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마치 영화 <환상특급Twilight Zone: The Movie>(1983) 을 보는 듯했다. 1980년대 말 TV에서 방영한 이 외화는 상상의 문을 통해 환상과 현실 사이의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갑자기 시공간을 초월해 나치나 KKK단에 쫓기는 등 이상한 일들을 체험하게 되는 내용이다. 여기가 바로 그랬다. 1953년을 완벽하게 되살린 그 공간은 과거로 나를 데려 갔다. 흙바닥으로 된 시장은 나무 상자로 대충 만든 하꼬방 노점상들, 소매치기들이 잠복하며 먹잇감을 노렸을 법한 뒷골목들, 돼지국밥집, 2본 동시 재개봉 극장, 이동식 구두닦이 가게, 고무신 가게, 건재약방 등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폭격에서는 자유로우나 평생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숨기며 생존을 위해 오늘 여기만을 바라보며 팔도의 민초들이 뛰어다니던 그곳, 1953년 전쟁 난리통 속의 광복동과 남포동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모든 관계자들이 촬영 후에도 <국제시장> 세트를 계속 보존하기를 원했으나
유지관리 예산 등의 한계로 12월 10일 폭파 신을 끝으로 모두 철거됐다.
모든 관계자들이 촬영 후에도 <국제시장> 세트를 계속 보존하기를 원했으나 유지관리 예산 등의 한계로 12월 10일 폭파 신을 끝으로 모두 철거 됐다. 부산 로케이션 사상 최고의 멋진 오픈 세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지만, 스크린 속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다. 그리고 내년 7월 개봉 후, 영화가 흥행한다면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국제시장의 가치를 인정받고 우리 존재의 시작이었던 아버지 세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추억할 수 있는 1950년대 국제시장 세트가 다시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마치 테마파크처럼.
한편 <국제시장>은 기장 도예촌 오픈세트 외에도 다대포해수욕장과 감천항에서 대규모 보조출연자가 동원된 흥남철수작전 장면을,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1983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하던 KBS 방송국 앞 광장 장면 등을 촬영했다. 개봉은 2014년 여름이다.
1) <국제시장 작품 기획서>, JK필름, 2013.
2) 차철욱, 한국전쟁 피난민과 국제시장의 로컬리티,
<한국민족문화>38, 2010. 11,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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