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석 평론가의 한국영화단상-귀환하는 여자들, 몰락하는 남자들 – [산다], [무뢰한], 영화부산

정한석 평론가의 한국영화단상-귀환하는 여자들, 몰락하는 남자들 – [산다], [무뢰한], 영화부산

<산다>,<무뢰한>두 편의 영화는 함께 말할만한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두 영화에는 동시에 돌아온 무언가가 있다.

<산다>는 정철(박정범 분)이라는 한 하층민 사 내의 고통스런 가난의 나날들을 그려내고 있 다. 이 사내는 일용직 노동자인데 받아야 할 임금을 떼어먹혔고 살던 집은 무너져서 거의 폐허가 되어있다. 부모들은 무언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같고 그에게는 보살펴야 할 누나와 어린 조카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누나는 지금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전쟁이다.

<무뢰한>은 정재곤(김남길 분)이라는 강력계의 지독한 일선 형사의 이야기다. 그는 살해범 한 명을 체포하기 위해 이영준이라는 가명을 쓰면서 김혜경(전도연 분)이라는 술집 종업원의 주변에 위장 취업해 있다. 김혜경은 한 때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빚더미에 올라 앉아있으며 살인범의 동조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녀를 감시하던 정재곤은 김혜경을 사랑하게 되고 그의 정체를 모른채 김혜경도 그를 사랑하게 된다.

<산다>와 <무뢰한>, 이 두 편의 영화를 한 자리에서 함께 말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 일까. 그러자고 제안한다면 우선은 의아해 보일 것이다. 한 주 차이로 개봉한 것(<산다>는 5월 21일에, <무뢰한>은 5월 27일에 개봉했다)을 제외하면 두 영화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 편의 영화는 함께 말할만한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두 영화에는 동시에 돌아온 무언가가 있다.

누이와 창녀. 한국문학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에서도 이 두 부류의 여성 인물형은 오래되고 강력한 개념이다. 동시에 그만큼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오기도 했다. 예컨대 <서편제>(1993)에서의 누이는 전통의 애절한 계승자로, <꽃잎>(1996)에서의 누이는 민족의 뼈아픈 희생자로 대표되었다. 한편, 1970년대의 변종 장르로서 호스티스멜로영화가 그 얼마나 성행했는지를 우린 잘 알고 있다. 누이와 창녀는 대속과 비속으로 여성을 이분화한 개념으로써 종종 비판받아 왔으며 이에 관한 연구들도 적지 않다. 그 누이와 창녀, 즉 정철의 누나와 김혜경이 <산다>와 <무뢰한>에 한 주 차이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귀환을 두고 두말없이 퇴보라고 지적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일이 될 것 같다. 더러는 두 영화에 특수하게 새겨진 세부들을 무시하게 되면서 오히려 단순화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두 영화에 새겨져 있는 사태를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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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산다>(2015)

<산다>에서 정철의 누나에게는 영화적으로 특별한 역할 한 가지가 부여된다. 그녀가 서사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대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정철인데도 그에게는 중요한 서사가 오히려 별로 많지 않다. 정철 자신의 서사가 적을 뿐만 아니라 애인과의 갈등도 누나와의 그것보다 더 미약하다. 큰 사건은 비교적 누나 쪽에서 발생하고 정철은 그 때문에 곤란함에 처하거나 수습하는 입장에 처한다. 정철의 누나는 아프기 때문에 사건을 일으키곤 하는 것인데 아픈 곳은 신체의 외부 어떤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다. 그녀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정철의 누나의 후천성 정신질환의 이유를 서사적으로 끝내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까 그녀는 서사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데도 서사적으로는 끝내 해명되지 않고, 오로지 이 영화가 앓고 있는 고통스러운 분위기의 상태, 즉 가난과 죄와 불행 등등, 그 증상의 차원에서만 끝까지 존재한다.

반면에 <무뢰한>의 김혜경은 철저하게 서사성이 아니라 장르성이 파생시킨 인물형이다. 말하자면 장르적 환영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장르적 환영의 대표물인 김혜경이 영화 속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온통 장르적 환영으로 둘러 쳐진 이 영화 속에서 오로지 그녀만이 현실세계의 어떤 분명한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역설이 펼쳐진다. 그건 전도연의 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캐릭터의 성공적인 구축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엔 아마 복잡한 작동이 더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김혜경이라는 인물이 여성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전통에 빚지고 생겨났는데도 역설적으로 영화 속에서는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인물이고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성멜로 드라마적 남성 주인공인 정재곤의 환영은 오히려 더욱 강해진다는 그 결과다.

그렇다면 남성 주인공들, 그들은 그녀들과 얽혀서 어떤 미묘한 반응과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이때 흥미로운 점이 있다. 두 영화의 감독은 각각의 남성 주인공들에게 특정한 상태를 부여한다. 박정범은 정철이 육체적으로 학대당하거나 대치하는 장면들을 많이 배치하고 있다. 오승욱은 정재곤의 본래의 사회적 지위를 훼손하거나 왜곡하거나 망각하게 하는데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산다>의 정철은 누나가 일으킨 사건을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사람들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두들겨 맞거나 그러다 가끔씩 화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다. 영화 속에는 그밖에도 정철이 구타당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산다> 에 관하여 말할 때 노동하는 정철의 몸이 아름 답다고 말할 순 있다. 하지만 그의 노동 행위가 언제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그는 더 많은 급료를 받아내기 위해 나이든 동료들을 몰아내고 젊은 동료들을 끌어들여 노동하기도 한다. 그것이 그의 참혹한 현실이라 해도 그때의 그의 노동은 아름답지 않다. 그때 노동하는 그의 몸은 정직하지 않다. 반면에 정철이 육체적으로 학대당하거나 더는 못 참고 폭발하거나 그러다 또 다시 학대당할 때, 바로 그 때의 정철의 몸에는, 어딘지 모르게 서러운 정직함이 서려 있다.

(2015)

<무뢰한>(2015)

반면에 <무뢰한>의 주인공 정재곤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상당 부분 손상당한다. 형사란 직업은 늘 범죄자를 가까이 하다보니 범죄자와의 구분도 종종 사라진다는 뉘앙스의 대사가 영화에도 등장한다. 말하자면 영화는 시종일관 정재곤을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인생 혹은 하층민의 사내로 인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그가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형사로 보여 선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의 비장한 사랑이 인정받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상처 위의 상처”라고 김혜경이 정재곤의 몸에 난 상처에 대해서 가여워 할 때, 관객은 순간 그것이 범인을 잡다가 난 형사의 직업적 상처가 아니라, 저 어딘가 험한 밑바닥의 싸움터에서 새겨진 비루한 한 사내의 상처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 착각 위에 둘의 사랑은 더 강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짝과 부엌칼의 라스트 신’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두 영화의 라스트 신을 통하여 두 남자의 갈 길은 각자의 방식대로 마무리되지만,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길 속에는, 보호의 테마가 공통으로 새겨진다. <산다>의 정철은 떼어 먹힌 임금 대신 뺏어왔던 남의 집 문짝을 들고 가서는 다시 달아준다. <무뢰한>의 정재곤은 김혜경이 찌른 칼을 맞고는 마을을 걸어 내려온다.

정철이 문짝을 들고 골목길을 걸어가 그것을 떼어온 그 집에 다시 달아줄 때 영화 속 그의 마지막 노동은 선하다. 시종일관 학대받고 다 투던 그의 육체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차원에서의 노동이 행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는 보호자로서의 자리로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정철이 누나를 계속 굳건히 지킬 것이라 고 영화 속에서 다짐하지는 않지만 그가 자신과 거의 상관없는 남의 집 아이에게 이렇 게 보호의 행위를 베풀 때 우린 그가 누나를 끝내 보호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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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에서는 김혜경이 정재곤의 배에 칼을 꽂고 정재곤은 그렇게 마을길을 돌아 내 려온다. 우리는 이 장면의 앞뒤를 바꾸어 이해해야만 한다. 김혜경의 칼을 맞은 다음 정재곤이 경찰들에게 그냥 가라고 손짓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사실은 김혜경에게 칼을 맞고도 경찰들에게 그냥 가라고 손짓하는 정재곤을 기어이 보여주기 위해 칼을 찌르는 김혜경의 장면이 있는 것이다. 정재곤은 김혜경을 보호하고 싶어 한다. 또 하나의 상처 위의 상처, 어쩌면 죽음으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그 상처 위의 상처가 생기는 순간이다. 몸을 던져 그녀를 보호하려는 이 사내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맺고 싶어 한다.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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