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의 숨겨진 속살

광안리는 정말 재밌고 근사한 곳이다.

젊음, 새로움, 다소의 불량함, 뒤죽박죽, 세련된 해변휴양지 등 사람마다 떠올리는 이미지도 천차만별일테지만 꼭 그만큼 실제로도 다양한 느낌이 공존하는 곳이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대개 부산이라고하면 해운대를 떠올리지만 정작 부산 사람들은 광안리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호텔이나 세련된 시설들이 편의를 돕는 대신, 이곳에서는 날 것 그대로의 부산과 바닷가 특유의 짠내 나는 문화를 물씬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뜻 맞는 지인들과 함께 작년부터 <안녕 광안리>라는 지역 문화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대간, 문화간 장벽 없는 공존
기왕 광안리를 소개할 기회가 생겼으니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광안리는 그야말로 세대간, 문화 간, 그 밖의 모든 장벽이 허물어지는, 좀 심하게 말하면 그야말로 잡탕 같은 공간이다. 비키니를 입고 선탠 중인 글래머러스한 외국 여자 옆에서 속옷 바람으로 손자와 물놀이 하는 동네 할아버지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커피를 들고 서로 촬영을 하며 깔깔대는 젊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동네 아주머니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기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때면 여기저기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가족들끼리 수박을 깨먹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민락동 쪽 해변에 있는 바 ‘써즈데이파티’나 ‘퍼지네이블’ 등에 가면 부산의 젊은이들이 오마하, 밴쿠버, 시카고 그 밖의 세계 여러 도시에서 자유롭게 떠돌다 우연처럼 이곳에 온 수많은 외국인 ‘탕아’들과 뒤섞여 다트를 즐기기도 하고 흥겹게 웃으며 함께 취해가는 걸 볼 수도 있다. 낯선 이방인이라도 언제든 환영이니 시간만 된다면 함께 해도 좋다. 특히 해가 지면 해변에 있는 편의점 바깥에서 캔 맥주 몇 개를 놓고 밤새 술을 마시며 때론 진지한 얘기를, 때론 유쾌하게 떠드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미난 경험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서로를 처음 보는 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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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에서 물질하는 해녀" width="195" height="280" /> 광안리에서 물질하는 해녀

소박한 해녀와 첨단의 해양스포츠
광안리엔 광안대교는 물론, 불꽃축제, 어방축제, 그리고 회를 비롯한 여러 맛 있는 음식과 독특한 술집들이 있다. 하 지만 광안리의 매력은 좀 더 소박하고 일상적인 데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곤 한다. 가령 최근 선댄스영화제에서 제주 4.3사건을 다룬 한국영화 <지슬>의 수상 소식을 듣고 흥분했을 때도 내 머리 속엔 가장 먼저 광안리의 해녀 할머니들이 떠올랐더랬다. 엥? 광안리에 해녀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여전히 민락동 쪽 해변에서는 일상적으로 물질을 하는 해녀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2011년 가을 호에서 해녀 분들과의 인터뷰를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었다. 그런데 반대쪽 해변, 즉 삼익비치아파트 쪽 방 파제에는 해양스포츠센터가 있어서 가장 최첨단의 해양스포츠를 손 쉽게 즐길 수 있기도 하니 참 재밌는 일인 것이다. 수영을 못해도, 물을 무서워해도, 그 누구라도 반나절이면 바다 위에서 웨이크보드, 모터보트, 바나나보트, 스킨스쿠버, 래프팅 등 여러 스포츠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특히 나조차 놀랐던 사실이지만 언젠가부터 광안리에는 곧잘 바디보드를 들고 나타나 <폭풍 속으로>와 같은 멋진 외국영화에서나 보던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04-510대의 놀이기구에서 오래된 장수탕까지
그럼에도 물이 무서워서 도저히 해양스포츠는 무리라고 판단한다면 민락회센터 뒤편 광안랜드로 가보는 것도 괜찮다. 놀이기구도 몇 없고 그나마도 다 오래된 것이지만 이곳은 팍팍한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일탈을 꿈꾸는 귀여운 부산 10대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놀이기구들을 돌리며 끊임 없이 시시한 농담을 해대는 DJ들을 향해 10대 여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 고 그녀들을 향해 다시 DJ 오빠가 외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여중생 여러분! 조금만 기다려, 맞은 편 오빠 다섯 명 보내줄게.” 그러면 맞은편에 있던 남자 중학생들은 모른 척 볼이 빨개지곤 한다. 조금 떨어진 미월드도 훌륭한 놀이공원이지만 오래되고 사실은 볼품없다 해도 좋을 이곳에 광안리의 10대들이 모이는 것은, 그들에게 시설의 훌륭함보 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는 모양일 테다.

해양스포츠든, 놀이기구를 타고 놀았든, 아니면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거나 모래놀이를 했든, 아직 해질녘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면 근처 목욕탕에서 잠깐 피로를 풀어보는 것도 좋다. 놀랍게도 광안리 해변 바로 뒷골목 쪽엔 싸면서도 구식이라 오히려 근사한 목욕탕들이 꽤 있다. 장수탕처럼 2,000원 하는 저렴한 동네 목욕탕부터 수영장, 찜질방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목욕탕까지 그 종류도 광안리답게 다양하고 잡탕이다. 특히 이 목욕탕들의 구석에 가면 자동으로 등을 밀어주는 요상한 기계를 만 날 수 있는데 이 기계는 부산에만 있다는 점도 팁.

04-4독일과 한국 작가의 그라피티 만남
피로를 풀고 나오면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상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편안한 기분을 간직한 채 어둑해지는 광안리를 잠시 걷다보면 호메로스호텔 맞은편에서 ‘거리의 화가들’과 만날 수 도 있다. 아주 추운 겨울 2~3개월을 제외하면 매일 저녁 8시 정도부터 나와 새벽까지 광안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그림으로 기록해준다. 이들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세팅해 놓은 시설도 그 자체로 예쁘고 그림 역시 훌륭하지만 어쩌면 손님 입장 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화가들이 건네는 대화일 지도 모른다. 부산과 광안리에 대한 여러 단순한 정보에서부터, 추억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광안리에 이처럼 예술의 향기를 감돌게 하는데는 작년 여름 그려진 두 개의 멋진 그라피티 작품도 한 몫 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해외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등 광안리의 명물이 되고 있는 이 두 작품은 독일의 세계적 아티스트 ECB 와 한국의 유명한 그라피티 작가 구헌주의 작품이다. 민락동 주차타워 외벽의 ECB 작품은 광안대교에서 차를 타고 지나면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스케일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고 광남초등학교 후문 벽에 있는 구헌주의 작품은 엄청난 스케일과 그 그림이 자아내는 맑은 기운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세운다.

04-9우연처럼, 당신과 마주하고 싶은 곳
늦은 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딱 한 군데만 더 들렀다 가자. 수변공원 쪽으로 가다보면 갑자기 시장처럼 시끌벅적해지며 나타나는 포장마차 촌. 해변 테라스에 앉아 마시는 맥주 한 잔도 시원하고 좋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연인과 좀 더 진한 얘기를 나누며 혼곤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이 포장마차 촌에서 조개나 장어, 혹은 뜨끈한 국물을 시켜놓고 소주 한 잔 나누는 것도 끝내줄 것이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이곳은 포장마차 촌이 시작되는 골목 입구에서부터 장어 굽는 냄새를 비롯해 그 특유의 따스한 기운 때문에 술 한 잔 입에 안대고도 취기가 감돈다. 근처 회 센터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사가도 좋다. 단골집이 없더라도 초장 값과 구이 값 정도만 내면 알아서 잘 요리해준다. 그냥 들어가서 먹고 싶은 걸 얘기 해도 당연히 오케이. 너무 무리하면 다음날이 걱정되니 중간 중간 커다란 양동이 같은 곳에 푸짐하게 끓여 나오는 뽀얗고 맑은 가리비국 물도 잊지 말고 마셔주자. 출출하면 매운탕이나 해물라면 한 그릇으로 마무리해도 좋겠다. 조만간 우연처럼 이 글을 읽는 당신과 광안리 어딘가에서 불쑥 마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부터 여기서 살아온 나이지만 솔직히 나는 여전히 광안리를 잘 모른다. 그리고 솔직히 바로 그 점 때문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 마디로는 정의가 안 되는 곳, 일관성 없고 어딘가 잡탕이란 느낌만 드는 곳, 아기 자기하고 모자이크 같고 일견 제멋대로인 듯 하지만 꾸밈없고 자유로워 가끔 무작정 가서 그냥 걷다오고 싶은 곳. 작년 여름 호에 글을 기고 해줬던 Aeron은 광안리에 대한 글의 마지막을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해줬다. 뭐랄까. 딱 내 마음 같아서 글을 마무리하며 옮겨본다. “해운대가 실리콘을 삽입한 가짜들이 모이는 한국의 베니스라면 광안리는 일체의 치장이나 가식을 거부하는 보헤미안들의 공간, 라바로 셀로네타(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해변) 같은 곳이다. 광안리를 방문하면 언제든 당신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Gun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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