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가면의 영화, 폭로의 영화 /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2005

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가면의 영화, 폭로의 영화 /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2005

다 같은 가면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학문과 일상생활의 목적은 ‘가면을 벗겨내는 것(Debunking Mask)’이다.

타인과 구별되는 나만의 독특한 특질을 말 할 때 이를 흔히 ‘인성’, 즉 ‘퍼스낼리티’라고 한다. 그런데 인성은 성격이라는 말과 혼동 될 수 있으므로, 즉 우리말로 정확히 옮기기 힘들어서 외래어인 ‘버스’처럼 그냥 ‘퍼스낼 리티’로 쓴다. 퍼스낼리티(Personality)의 어 원은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페르소나는 연출자의 의도를 마치 자신의 그것처럼 체화하고 있는 배우들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예컨대 “지아 장 커 감독의 페르소나는 자오 타오이고, 박찬욱 감독의 그것은 송강호이다.”라고 말할 때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 다. 그리고 연극무대에서 사용하는 가면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페르소나의 의미는 의외로 역설적이고 상반되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의미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가면’ 또는 ‘탈’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꿰뚫어 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문이 생긴다. ‘타인과 구별되는 나만의 독특한 특질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라는. 즉  ‘나의 퍼스낼리티는 본성이나 본능을 감춘 위선적인 것이라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면을 쓰고서도 올 곧고 얼이 바른 말을 정문일침처럼 말할 수 있다고?’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들은 페르소나가 지니고 있는 두 가지 의미를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 또는 맥락적으로 생각하면 의외로 이에 대한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선 가방 끈 긴 설명을 통해 이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2005)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2005)

퍼스낼리티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유전자 속에 박혀있는 것이 아니다. 즉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사회화는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나 집단의 규범과 가치 등을 내면화 또는 학습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원초적 본능’ 위에는 ‘사회적’이라는 탈이 덧씌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퍼스낼리티는 즉 개인적인 것 더하기 사회적인 그 무엇이다. 그러나 사회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쓰게 되는 탈이나 가면은 양 가적인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계몽적인 탈 이다. 예컨대 어릴 적부터 우리는 파란 불 에는 건너고 빨간 불에는 멈추라는 학습(즉 사회화)을 받아왔다. 나의 원초적 본능은 신호등과 관계없이 눈치껏 길을 건너고 싶겠지만, 교통규범은 지킬수록 현금은 굳고, 생명은 연장된다. 즉 좋은 가면인 셈이다. 둘 째, 그러나 공동체나 국가가 나에게 씌워둔 규범이나 가치관 등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 이고 이를 아직 내가 알아채지 못할 경우의 탈이나 가면은 나로 하여금 잘못된 것들에 대해, ‘꿰뚫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된다.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이나 데니스 간젤 감독의 <디 벨 레Die Welle>(2008)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 을 것이다.

위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이제 영화를 통 해 페르소나(가면)의 의미를 찾아보자. 직간접적으로 가면과 연관된 영화들은 쉽게 찾 아볼 수 있다. <조로><각시탈><변검><패왕 별희><마스크><오페라의 유령><가면 속의 아리아> 등이 떠오를 것이다. 이들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페르소나, 즉 가면이 던져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이들 영화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들 영화에서 나타나는 가면의 의미는 위선적이거나 위악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가면을 통한 내면의 발로 혹은 가면을 통한 더 큰 위악적 탈을 쓴 인물이나 제도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읽힐 것이다. 위정자들의 민낯이 가식적일 때 시민들은 오히려 가면을 쓰게 된 다. 그러므로 영화 속의 가면은 나 또는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남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질이 될 뿐만 아니라 불합리와 모순에 대 해 꿰뚫어 말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이 된다. 즉 가면이 불합리한 현실로부터 의 도피 수단이 되거나 자신의 진면목을 감추는 위장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 설적으로 또는 효과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주요한 장치가 되는 셈이다.

이는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브이 포 벤데 타>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브이 포 벤데타>는 가이 포크스(Guy Fawkes, 1570~1606)의 의회 폭파계획(1605년 11월 5 일)이 발각되면서 그가 공개처형 당하는 장 면이 반전되면서 시작된다. 이 첫 장면에서 가이 포크스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다. 그 런데 가이 포크스가 교수대에서 처형당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군중들의 반응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귀족들과 왕권을 지지하는 일종의 양반들은 어서 처형 하라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고, 광장을 메운 대다수의 서민들은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드러내고 있다. 미셸 푸코는 그의 <감시와 처벌> 어딘가에서 이 시기 범법자에 대한 공개적 처벌은 시민들에게 군주의 절대 권력을 재확인 시켜주는 상징적 의식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당성이 없는 권력이 의로운 사람에게 행하는 처벌은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예컨대 포크스의 원래 이름이 ‘귀도(Guido)’ 에서 ‘가이(Guy)’로 바뀌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상 영어에서 흔히 쓰이는 ‘가이’ 는 보통 명사이다. 그리고 현재 영어에서 쓰고 있는 ‘가이’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이라는 말은 우리 주위의 필부필부를 뜻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연대와 실천과 선택적 친화력을 갖는 말이 되기도 하다. 즉 귀도라는 고유명사에서 가이라는 보통명사로 의 전환 과정은 포크스의 정신이 저변으로 확산되고 복류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면, 포크스의 공개처형을 통해 군주(제임스 1세)의 통치권 에 대한 경외심을 고취하려던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공개처형의 장면이 저항과 폭동의 장면으로 전도되고, 급기야 권력은 조롱 거리가 되고 무력한 희생자는 영웅으로 부상한다. <브이 포 벤데타>는 이러한 전환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시민들은 다함께 가면들을 착용하게 된다. 이는 권력에 맞선 자신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려는 일차적인 목적 뿐만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동지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는 효과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시민들의 가면은 익명성과, 유희성, 그리고 저항성을 내포하게 되면서 위정자(들)의 허위의식과 가식이라는 더 큰 가면을 들추 어내려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가면이라도 다 같은 가면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학문과 일상생활의 목적은 ‘가면을 벗겨내는 것(Debunking Mask)’이다. 앞서 페르소나 는 가면이라는 뜻과 꿰뚫어 말한다는 의미가 함께 담긴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가면의 영화인 동시에 폭로의 영화인 셈이다. 어디 영화뿐이겠는가.

b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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